기자명 원성훈 기자
  • 입력 2023.11.16 16:55

정진석 의원에 이례적으로 구형보다 높은 실형 선고…정치 성향이 '판결 영향' 끼쳤나

대법원 청사 (출처=대법원 홈페이지)
대법원 청사 (출처=대법원 홈페이지)

[뉴스웍스=원성훈 기자] 친야(親野) 성향의 글을 SNS에 게시하며 법관윤리강령에 따른 '정치적 중립 의무를 지키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아오던 박병곤 서울중앙지법 판사(38세·사법연수원 41기)에게 대법원이 지난달 '엄중한 주의'를 촉구했다.

16일 법원행정처는 "박 판사의 임용 후 SNS 이용과 관련해 법관징계법, 법관윤리강령,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 권고의견 등에 위반되는지 여부에 대해 사실관계를 확인했다"며 "법원 감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박 판사가 SNS에 정치적 견해로 인식될 수 있는 글을 올린 행위에 대해 소속 법원장(김정중 서울중앙지법원장)을 통해 엄중한 주의를 촉구했다"고 밝혔다.

박 판사의 정치적 중립성 위반 논란은 지난 8월 박 판사가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에게 징역 6개월의 실형을 선고하면서 불거졌다. 당시 정 의원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사자명예훼손 등의 혐의를 받고 있었고 검찰은 벌금 500만원을 구형한 상태였음에 비춰보면 구형보다 선고가 형량이 더 높은 것은 극히 이례적이라는 게 법조계의 대체적 시각이다. 

이에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법관의 정치적 성향이 판결에 영향을 미쳤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여권에서는 그 근거로 박 판사가 SNS에 남긴 친야 성향의 게시물을 거론했다. 

박 판사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지난해 3월 대선에서 진 직후 "울분을 터뜨리고 절망도 하고 슬퍼도 했다가 사흘째부터는 일어나야 한다"는 글을 게시했다. 

2021년 4월에는 박영선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가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패배하자 '승패병가지상사(勝敗兵家常事). 피를 흘릴지언정 눈물은 흘리지 않는다'는 중국 드라마의 장면을 갈무리한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박 판사는 정 의원의 1심 기일 직전 이 게시글을 모두 삭제했고 선고 직후에는 자신의 SNS 계정을 비공개 상태로 전환했다.

이처럼 박 판사 정치적 중립성 등에 대해 논란이 커지자 서울중앙지법은 "법관의 정치적 성향과 사건 판결은 무관하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비판은 줄어들지 않았고, 이에 대법원은 지난 8월 중순 박 판사의 SNS 글에 대한 진상 조사에 착수했다. 약 2개월 간의 심의 끝에 대법원은 지난달 18일 박 판사에게 '엄중한 주의'를 촉구했다.

대법원이 박 판사의 SNS 활동이 법관윤리강령에 따른 정치적 중립을 위반한 소지가 있다는 점을 인정했음에도 엄중한 주의 촉구 처분에 그친 것은 법관의 SNS 활동을 규제할 만한 별도의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 창원지법에 근무했던 이정렬 전 판사가 '가카(각하)새끼 짬뽕'이란 합성 사진을 올려 '품위유지 의무 위반'으로 서면 경고를 받은 것이 법관의 SNS 활동과 관련한 거의 유일한 제재 사례다.

대법원 공직자윤리위는 지난 2012년 "SNS상에서 사회적·정치적 의견 표명을 하는 경우 자기 절제와 균형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품위를 유지해야 하고, 공정한 재판에 영향을 미칠 우려를 야기할 수 있는 외관을 만들지 않도록 신중하게 처신해야 한다"고 밝혔으나 강제성이 없는 '권고'에 그쳤다.

이 같은 법관의 SNS 사용과 정치적 중립성에 관한 문제는 지난달 국정감사에서도 지적됐다. 이에 당시 김상환 법원행정처장은 "법관의 표현의 자유를 존중하면서도 중립성의 외관을 갖춘 규범을 만들 수 있는지 논의를 준비 중"이라고 답변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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