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허운연 기자
  • 입력 2023.12.26 15:29

노동계 "이틀 연속 21.5시간 일 시켜도 적법?…시대착오적 판결"

대법원 청사. (출처=대법원 홈페이지)
대법원 청사. (출처=대법원 홈페이지)

[뉴스웍스=허운연 기자] 대법원이 연장근로시간 위반 여부를 가릴 때 '일 단위'가 아닌 '주 단위'로 판단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정부는 '존중한다'는 입장이지만 노동계는 반발했다.

현행 근로기준법상 법정근로시간은 1일 8시간, 1주 40시간이다. 40시간에 최대 12시간까지 연장근로가 가능해 주당 총 52시간까지 일할 수 있다. 다만 12시간 초과 근무를 두고 하루 8시간 이후 근무를 더한 시간이 12시간을 넘지 않아야 된다는 해석과 주 40시간 이후 12시간을 넘지 않으면 된다는 해석이 엇갈렸다. 

26일 고용부에 따르면 지난 7일 대법원은 연장근로시간 위반 여부 판단 시 1일 8시간을 초과했는지가 아닌 1주간의 근로시간 중 40시간을 초과하는 근로시간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그간 행정해석으로만 규율됐던 연장근로시간 한도 계산을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을 최초로 제시했다. 

이번 판결로 인해 하루 8시간을 초과해 일한 시간이 12시간을 넘어도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볼 수 없다. 예를 들어 한 주에 4일간 12시간씩 일했다면 주 근로시간이 48시간으로 52시간에 저촉되지 않는다. 하루 8시간 넘게 일한 시간이 16시간이지만 이번 판결에 따라 일 단위는 고려하지 않아도 된다.

하급심에서는 일 8시간을 초과 연장근로시간을 계산한 뒤 이를 합한 값이 1주에 12시간을 초과했는지 여부를 판단했지만 대법원은 "1주간 12시간을 한도로 근로시간을 연장할 수 있다고 규정한 것은 1일 연장근로 한도를 별도로 규제한다는 의미가 아니다"라며 원심판결을 파기환송했다.

이번 판결에 대해 고용부는 "현행 근로시간 법체계는 물론 경직적 근로시간제도로 인한 산업 현장의 어려움을 심도깊게 고민해 도출한 판결로 이해하고 존중한다"고 말했다. 

특히 "바쁠 때 더 일하고 덜 바쁠 때 충분히 쉴 수 있도록 근로시간의 유연성을 뒷받침할 수 있는 합리적인 판결"이라며 "행정해석과 판결의 차이로 현장에서 혼선이 발생하지 않도록 전문가 등 의견을 수렴해 조속히 행정해석 변경을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또 "향후 근로시간 개편 관련 노사정 사회적 대화 시 이번 대법원 판결의 취지를 반영해 근로시간의 유연성과 건강권이 조화를 이루는 충실한 대안이 마련되도록 적극 지원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노총이 지난 11월 11일일 서울 여의도 여의대로에서 '전국노동자대회'를 벌이고 있다. (사진제공=한국노총)
한국노총이 지난 11월 11일일 서울 여의도 여의대로에서 '전국노동자대회'를 벌이고 있다. (사진제공=한국노총)

한편 노동계는 유감을 표명했다. 민주노총은 이날 논평을 통해 "대법원이 현행 근로기준법이 주당 연장근로 상한선만 명시하고 하루 연장 근로시간 상한선을 명시하지 않은 입법 공백을 틈타 장시간 노동을 가능하게 하는 판결을 내놨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런 판단이면 일주일의 총노동 시간이 52시간을 초과하지 않으면 이틀 연속 하루 최장 21.5시간(24시간 중 휴게 2.5시간 제외)을 몰아서 일을 시키는 것도, 하루 15시간씩 3일을 몰아서 일을 시키는 것도 가능해진다"며 "법이 일 단위로 법정근로시간을 규제하고 있는 이유는 육체적 한계를 넘는 과도한 노동력 지출을 금지하기 위한 것인데 대법원 판결처럼 한다면 일 단위로 법정근로시간을 정한 법 취지를 무너뜨리는 결과를 낳는다"고 지적했다. 

한국노총도 전날 "이번 판결은 1일 8시간을 법정노동시간으로 정한 취지를 무색하게 만들고 그동안 현장에 자리 잡은 연장근로수당 산정방식과도 배치되는 것으로 시대착오적이며 쓸데없는 혼란을 자초한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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