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상우 기자
  • 입력 2023.12.31 11:25

[뉴스웍스=김상우 기자] 제2차 세계대전 때 악명을 떨친 독일 해군의 ‘U-보트’는 비대칭전력의 공포감과 동시에 한계성을 입증한 사례다.

당시 독일 해군은 영국과 프랑스보다 해군 전력이 크게 뒤떨어져 해상전투에 맞대응하기 곤란한 처지였다. 고심 끝에 병력과 자원이 적게 들어가는 잠수함 U-보트를 전면에 내세웠고, U-보트는 영국을 그로기 상태까지 몰아붙일 정도로 위력을 발휘했다.

1940년 U-보트가 대서양에서 수장시킨 연합군 선박은 무려 274척, 139만5000톤에 달했다. 탐지 기술이 미흡했던 연합군은 U-보트가 쏘는 어뢰를 피할 방도가 없었다.

하지만 연합군은 독일군의 암호해독으로 사전 공격을 간파하고, 항공기 정찰 강화로 U-보트의 해상 진입을 봉쇄하는 방어책을 찾아냈다. 독일군은 연합군의 이러한 전술에 한 수 더 내다볼 수 있어야 했지만, 당시 지상군을 우선했던 전략에 따라 U-보트는 지원을 받지 못한 채 전선에서 사라지고 만다.

최근 하림그룹은 HMM 인수를 둘러싼 세간의 의심을 불식시키고자 해명 자료를 발표했다. HMM이 보유한 10조원 이상의 유보금(배당 가능 약 9조원)을 함부로 쓰는 것이 아니냐는 시선에 발끈한 것이다. 업계 안팎에서는 하림그룹이 HMM 인수에 성공하면 유보금을 배당에 책정하거나, 혹은 인수비용 빚과 이자비용 충당금으로 사용하지 않겠냔 우려를 제기했다.

하림그룹은 “선대 규모나 경쟁력에서 HMM을 훨씬 앞서는 글로벌 해운사들은 현금 보유를 높여 불황에 대비하고 있기에, 유보금은 기본적으로 배당 최소화가 바람직하다”고 해명했다. 이는 유보금을 배당으로 돌리지 않겠다고 못 박은 것이 아닌, 최대한 적게 쓰겠다는 말이다. 세간의 우려를 일부 인정했다는 뉘앙스가 풍기는 등 해명이라고 하기엔 알쏭달쏭한 구석이 있다.

여기에 영구채 전환 유예 요청에 대해선 “수정 의견 제안은 협상 과정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산업은행이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이전부터 “영구채 전환 유예는 없다”라는 강경한 태도를 보였음에도 협상의 여지가 충분하다는 인식이다. 특혜 시비가 불거질 여지를 남겨놓고 있다.

특히 하림그룹은 HMM의 몸값 추산치 6조4000억원에서 인수금융 조달이 적잖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신한·우리·KB국민은행과 미래에셋증권·NH투자증권 등으로부터 총 3조원이 넘는 인수금융 대출 확약서를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최근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E) 부실 문제로 금융권이 집단 공황에 빠질지 모른다는 공포감에, 금융권이 무슨 배짱으로 인수금융을 턱턱 내줄 수 있는지 배경이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자칫하면 부동산 PE 부실 여파와 하림그룹 리스크까지 더해져 금융권을 뒤흔들지 모를 일이다.

이와 함께 HMM 매각을 주도한 산업은행 안영구 부행장이 내년 초 퇴임한다는 것도 문책성이 아니냐는 관측을 낳게 하고 있다. 돌아가는 일련의 흐름을 보면 HMM 매각 과정이 부자연스럽다는 것은 눈치채고 남을 일이다.

앞서 언급한 U-보트의 승전보는 오래가지 않았다. 전쟁을 승리로 이끌 것으로 기대했지만, 명백한 한계와 약점이 드러나는 순간에 고꾸라졌다.

정부는 하림그룹을 둘러싼 우려의 목소리를 잠재울 의무가 있다. 그러기 위해선 투명성 확보를 요구해야 마땅하다. 2017년 세계 7위 해운사인 한진해운의 파산은 정부의 ‘자살골’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한 번은 몰라도, 두 번의 자살골은 국민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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