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상우 기자
  • 입력 2024.01.25 10:59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 등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 회원들이 2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원청 CJ대한통운의 노조법상 사용자성 여부에 관한 2심 판결 선고'가 1심과 같은 판결을 받자 환한 얼굴을 하고 있다. 고법은 CJ대한통운이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을 상대로 낸 부당노동행위구제재심판정취소 소송에서 1심과 마찬가지로 CJ대한통운이 택배기사노조와의 단체교섭을 거부한 것은 부당하다는 항소심 판결을 내렸다. (사진=뉴스1)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 등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 회원들이 2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원청 CJ대한통운의 노조법상 사용자성 여부에 관한 2심 판결 선고'가 1심과 같은 판결을 받자 환한 얼굴을 하고 있다. 고법은 CJ대한통운이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을 상대로 낸 부당노동행위구제재심판정취소 소송에서 1심과 마찬가지로 CJ대한통운이 택배기사노조와의 단체교섭을 거부한 것은 부당하다는 항소심 판결을 내렸다. (사진=뉴스1)

[뉴스웍스=김상우 기자] CJ대한통운이 택배노동조합(택배노조)과의 단체교섭 거부가 부당하다는 항소심 판결에 "택배 산업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판결"이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즉각 대법원 상고를 준비하고 2심의 잘못된 판단을 바로 잡겠다는 의지다.   

다만, 업계 일각에서는 이러한 대응 방식이 감정에 치우치지 않았냐는 지적도 나온다. 통상 법원 판단에 대해 기업마다 ‘법원의 판단을 존중한다’는 입장 표명을 하고 있어, 이를 생략한 것이 자칫 ‘괘씸죄’의 빌미를 줄 수 있다는 시각이다.

25일 법조계 및 관련 업계에 따르면, 전날 서울고법 행정6-3부는 CJ대한통운이 중앙노동위원회(중앙노동위) 위원장을 상대로 낸 부당노동행위구제 재심판정 취소소송에서 1심과 마찬가지로 원고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번 사건은 지난 2020년 3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택배노조는 계약을 맺은 대리점이 아닌, 원청인 CJ대한통운을 대상으로 교섭을 요구한 바 있다. CJ대한통운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택배노조는 그해 9월 서울지방노동위원회(서울지노위)에 부당노동행위 구제 신청을 냈다. 하급 심의기관인 서울지노위는 그해 11월 사건을 각하 처리했고, 택배노조 측은 이에 불복해 2021년 1월 중앙노동위에 재심을 신청했다.

중앙노동위는 2021년 6월 택배노조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CJ대한통운이 택배노조와 단체교섭에 응하지 않는 것은 부당노동행위로 규정한 것이다. 직접적 계약관계를 맺지 않은 특수형태근로종사자에 대한 원청의 사용자성을 폭넓게 인정한 결과다. 이에 CJ대한통운은 불복 의사를 밝히며 2021년 7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CJ대한통운이 택배 노동자의 실질적 사용자 지위를 갖고 있다며 택배노조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노동조합법이 의미하는 사용자가 근로자와 명시적·묵시적 근로계약 관계에 있는 이들은 물론, 근로자를 고용한 사업주로 규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즉, 권한·책임을 일정 정도 담당하고 근로자를 실질적으로 지배 및 결정할 수 있는 자도 사용자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이는 CJ대한통운이 사용자가 아니라며 단체교섭을 거부한 것이 정당한 사유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CJ대한통운의 경기 안성 ‘MP허브터미널’ 모습. (사진제공=CJ대한통운)
CJ대한통운의 경기 안성 ‘MP허브터미널’ 모습. (사진제공=CJ대한통운)

이날 2심 재판부 역시 1심과 마찬가지로 원청의 사용자성을 광의적으로 본 1심의 판단을 인정했다.

CJ대한통운은 2심 판결에 대해 즉각 입장을 발표하고 “기존 대법원 판례에 반한 무리한 법리 해석과 택배 산업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판결에 동의하기 어렵다”며 “판결문이 송부되는 대로 면밀하게 검토한 뒤 상고할 계획”이라고 부당함을 강조했다.

CJ대한통운 택배대리점연합(대리점연합)도 성명을 통해 “택배 산업의 현실을 외면하고 전국 2000여 개 대리점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행위”라며 “택배사는 하도급법·파견법을 위반하는 것이며, 원청과 교섭으로 계약 조건을 변경하면 대리점과 택배기사 간 계약은 종잇장에 불과하게 된다”고 CJ대한통운과 동일한 입장을 보였다.

택배노조는 판결에 대해 “CJ대한통운은 시간을 끌기보다 대법원 상고를 포기하고 판결을 수용해 즉시 택배노조와 단체교섭을 진행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며 “만약 상고한다면 노조는 즉시 교섭응낙 가처분신청을 통해 단체교섭을 강제할 수 있는 적극적 조치를 취하고 강력한 투쟁에 돌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업계 안팎에서는 CJ대한통운이 억울함을 강하게 호소했지만, 입장 표명 방식이 기본적인 ‘룰’을 깨뜨리지 않았냐는 지적이다. 법조계에서는 사법부의 존중 원칙을 앞세워 ‘법원의 모든 판단은 존중받아 마땅하다’는 일종의 불문율을 가지고 있다. 자칫 CJ대한통운이 대법원 상고에서 괘씸죄를 적용받는다면 불리함을 각오해야 한다는 해석이다.

괘씸죄는 법전에 없는 죄명이지만 사건 판결 과정에서 본인의 억울함만 호소할 경우, 판결에서 불리하게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는 관습법과 비슷한 개념이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판사의 재량으로 법정형을 감경해주거나 높일 수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도 괘씸죄의 다른 형태로 볼 수 있다.

국내 저비용항공사(LCC)인 진에어는 지난 2018년 조현민 전 진에어 부사장의 일명 ‘물컵 갑질’ 사건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자 정부로부터 괘씸죄를 적용받은 바 있다. 이후 노선 취항 및 신규 항공기 도입 금지 등의 각종 제재에 오랫동안 경영 어려움을 겪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억울함을 떠나서 일단 법원의 판결은 존중하지 않는다는 의사 전달은 법원의 권위에 도전한다는 뉘앙스를 내포한다”며 “국내 사법 정서상 괘씸죄를 물어도 될만한 사유이기에 이번 CJ대한통운의 대응은 다소 미숙한 처사라는 느낌도 든다”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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