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허운연 기자
  • 입력 2024.01.27 12:44

전문가 "처벌 아니라 사고 예방이 핵심"

지난 26일 오후 서울 시내의 공사 현장에서 근로자가 일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지난 26일 오후 서울 시내의 공사 현장에서 근로자가 일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뉴스웍스=채윤정 기자]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범위가 27일부터 근로자 5인 이상 50인 미만 업체까지로 확대됐다. 

특히 대전·충남지역에선 총사업장의 13% 가량이 이 적용을 받게 돼 재계의 우려와 노동계의 환영 목소리가 엇갈렸다. 

중대재해처벌법은 근로자가 1명 이상 사망하는 등 중대재해가 발생한 경우, 사고 예방 의무를 다하지 않은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에게 1년 이상 징역이나 10억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이 법은 지난 2022년 시행됐으나 5인 이상 50인 미만이 근무하는 소규모 사업장은 '준비 부족'을 이유로 2년간의 유예기간을 뒀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대전의 2022년 기준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은 2만254곳, 충남은 3만1368곳으로 대전·충남지역 전체 사업장의 약 12%에 해당한다. 근로자 50인 이상 사업장까지 포함하면 27일부터 전체 사업장의 약 13%가 이 법의 적용을 받게 되는 것이다. 

지역 경제계에선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이 법 적용 유예기간 종료 직전까지 고금리와 경기침체에 따른 어려움을 호소하며 기간 연장을 요구하고 나섰다. 

대전 세종 충남경제단체협의회는 전날 성명을 통해 "소규모 사업장은 만성적 인력난과 자금난 등으로 중처법 대응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안전관리 인력과 예산이 부족해 폐업과 일자리 감축의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밝혔다. 

대전에서 섬유제조업체를 운영하는 김모씨(61)는 "최근 주문이 없어 한 달에 열흘 이상 공장을 멈췄다. 직원들 월급 주는 날이 무서울 지경"이라며 "이러한 상황에서 중처법이 요구하는 대로 인프라를 갖추란 건 폐업하란 소리"라며 울분을 터뜨렸다. 

요식업·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소상공인 중엔 자신이 중처법 대상인지조차 모르는 경우도 많았다.

대전에서 한 화로구이집을 운영하는 사장 정모씨(45)는 "중처법은 건설 현장이나 공장에만 해당하는 게 아니냐"며 "일반 음식점도 해당하는지 몰랐다"는 반응을 보였다. 다만 그는 "음식점에선 죽거나 크게 다칠 일이 별로 없으니 화재 위험 예방에 좀 더 신경을 쓰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역 노동계에선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확대 적용을 환영하고 있다.

민주노총 대전지역본부 관계자는 "중처법은 사업주가 근로자 생명과 안전을 중요하게 여기도록 사회 분위기를 바꾸는 법"이라며 "대기업뿐만 아니라 전체 사업장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까지 참여해야 흐름을 바꿀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강한 처벌 사례가 있어야 사업주도 경각심을 가질 텐데, 정부와 사법기관이 '늦장 대응' '솜방망이 처벌'로 일관하면서 법의 실효성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토로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작년 9월까지 최근 2년간 충청권 산업재해 사망자는 166명이다. 그러나 이 중 검찰이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를 적용해 사업주를 기소한 사례는 극히 드물다. 특히 처벌까지 이뤄진 경우는 전국에서 3건 밖에 없다. 

대전·충남지역에선 2022년 9월 근로자 7명이 사망한 대전 현대아울렛 화재가 대표적인 중처법 적용 사례지만, 최고 경영책임자가 아닌 점장과 안전관리 담당자 등 5명이 기소돼 재판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중대재해처벌법의 핵심은 사업주 처벌이 아닌 근로자의 산업재해 예방이 돼야 한다"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동열 대전보건대 재난 소방·건설안전과 교수는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확대 시행과 관련해 "기존 산업안전보건법에 더해 유예기간까지 뒀지만 영세 사업장은 법이 정한 기준을 충족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며 "정부가 적극 나서 재계와 노동계의 간극을 좁히고 중소기업 현장까지 안전 인프라가 잘 정착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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