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4.02.09 11:19
영화 '도그데이즈'와 ‘웡카’. (사진제공=CJ ENM·워너브러더스코리아)
영화 '도그데이즈'와 ‘웡카’. (사진제공=CJ ENM·워너브러더스코리아)

[뉴스웍스=정승양 대기자] 설 연휴는 해마다 주요 배급사들이 블록버스터급 대작을 띄워 치열한 경쟁을 벌일 정도로 극장가의 대목으로 꼽혀왔다.

지난해 설 연휴만해도 임순례 감독, 황정민·현빈 주연의 '교섭'과 이해영 감독, 설경구·이하늬·박소담 주연의 '유령'이 맞붙었다. 각각 168억원과 137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대작들이다.

하지만 '교섭'과 '유령'의 누적 관객 수는 각각 172만명과 66만명에 그쳐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했다. 팬데믹으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가 확산되면서 대목 영화관의 개봉 전략에도 ‘뉴노멀’이 시작됐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런 흐름을 반영한 탓일까. 이번 설 극장가는 중소 규모의 한국 영화 3편과 블록버스터 외화 2편이 경쟁하는 구도가 될 전망이다. 설 연휴 대목을 노리고 개봉하는 한국영화 대작들이 사라지면서 전통적인 성수기가 무색해진 분위기다.

올 설 연휴를 노리고 극장에 걸리는 한국영화 3편은 김덕민 감독의 '도그데이즈', 하준원 감독의 '데드맨', 김용균 감독의 '소풍'이 꼽힌다. 모두 지난 7일 개봉됐고 제작비가 100억원에 못 미치는 영화들이라는 공통점도 있다.

'도그데이즈'(배급사 CJ ENM)는 하루도 바람 잘 날 없는 동물병원에서 강아지로 인해 얽히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세계적인 건축가 민서(윤여정)와 배달원 진우(탕준상), 싱글남 직장인 민상(유해진)과 동물병원장 진영(김서형), 젊은 부부 정아(김윤진)와 선용(정성화), 수정이라는 여성의 남자친구 현(이현우)과 전 남자친구(다니엘 헤니) 등의 이야기가 옴니버스식으로 전개된다.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이 반려견을 통해 성숙하고 발전해가는 이야기다.

'영끌'로 2층짜리 건물을 사들인 유해진은 자신의 건물 1층에 입주한 동물병원에서 개 짖는 소리가 나거나 마당에서 개똥이 밟히는 것을 못 참고 동물병원장 김서형과 늘 티격태격하지만, 강아지를 매개로 진영과 가까워진다. 반려견 완다와 단둘이 사는 건축가 윤여정은 직설적인 화법으로 웃음을 자아내거나 감동을 준다.

'데드맨'(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은 빚더미로 궁지에 몰려 자기명의를 빌려주고 돈을 벌던 ‘바지 사장’ 만재(조진웅 분)가 이름을 되찾으려 횡령사건의 배후를 추적하는 스릴러물이다. 적인지 아군인지 미스터리한 인물로 정계를 쥐락펴락하는 카리스마 넘치는 지략가로 등장하는 정치 컨설턴트 심여사(김희애)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 그를 돕는다.

봉준호 감독의 '괴물'(2006) 각본을 공동 집필했던 하 감독의 연출 데뷔작이기도 하다. 하 감독이 돈을 받고 이름을 판 사람들을 5년 동안 취재해 직접 시나리오를 썼다.

'소풍'(배급사 롯데엔터테인먼트)은 나문희·김영옥·박근형이 주연한 저예산 영화다. 사돈지간이기도 한 두 친구가 60년 만에 함께 고향 경남 남해로 여행을 떠나며, 만년의 삶을 옥죄는 온갖 걱정거리로부터 벗어나 삶을 반추하는 이야기를 풀었다.

서울에서 아들 부부와 살아가는 70대 할머니 은심(나문희 분)은 파킨슨병에 걸려 손 떨림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데다 오래전 세상을 떠난 엄마가 보이곤 해 마음이 어수선하다. 그러던 중 고향 친구이자 사돈지간이기도 한 금순(김영옥)이 찾아오고, 은심은 금순에게 "같이 고향에 가자"고 제안한다. 그렇게 둘은 바닷가 마을에 내려가 어릴 적 은심이 짝사랑하던 상대이자 오랫동안 고향을 지킨 친구 태호(박근형)를 만나면서 옛 추억에 빠져든다. 노년의 고통과 죽음에 관한 진지한 고민도 담았다.

설 연휴를 공략하는 외화로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인 판타지 '웡카'와 액션 영화 '아가일'이 눈에 띈다.

지난달 31일 개봉한 폴 킹 감독의 '웡카'는 할리우드 톱스타 티모테 샬라메가 주연한 뮤지컬 영화로, 영상과 음악도 빼어나 북미 지역에서도 흥행했다. 영국 작가 로알드 달의 소설 속 캐릭터인 세계 최고의 초콜릿 공장주 웡카의 소년 시절 이야기를 그린다.

‘아가일’은 ‘킹스맨’ 시리즈로 스파이 액션을 보여줬던 매튜 본 감독의 연출로 스파이 소설 작가인 여성이 킬러들의 추격을 받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킹스맨’ 특유의 B급 정서가 돋보이는 연출로 유쾌하게 즐길 수 있다는 평.  반면 139분이라는 긴 러닝타임과 과잉으로 비쳐질 수 있는 연출은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다는 평도 받고 있다.

명절 특수에 한국영화 대작들이 실종된 배경과 관련해 한 영화계는 코로나19 팬데믹의 여파가 남아 있는 데다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가 시청자를 끌어들이면서 극장에서 흥행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상황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또 꼭 대목에 개봉하지 않아도 흥행할 수 있다는 판단도 깔려 있다고 봤다. 지난해 천만 영화 반열에 오른 '범죄도시 3'와 '서울의 봄' 개봉 시기도 각각 5월과 11월이었다.

한편 설 연휴 극장가에는 기존 인기작들도 내걸린다.

실화를 모티브로 한 범죄 추적극으로 지난달 24일 개봉한 뒤 관객 100만을 돌파한 라미란 주연의 '시민덕희'와 지난달 10일 개봉한 최동훈 감독의 SF 판타지 '외계+인’ 2부 등이 연휴기간 극장상영을 이어간다. 또 지난달 24일 개봉한 뤼크 베송 감독의 '도그맨'도 관객을 맞는다. 인간 사회에서 버림받아 개들 속에서 자란 남성의 이야기인 이 영화에는 약 120마리의 개가 출연한다.

제76회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으로 쥐스틴 트리에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추락의 해부'는 남편의 추락사로 한순간에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유명 작가 ‘산드라’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법정 공방을 통해 인생에 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저작권자 © 뉴스웍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