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허운연 기자
  • 입력 2024.03.11 15:11

감사원 "청탁금지법 위반·업무방해 등 혐의"

(자료제공=감사원)
(자료제공=감사원)

[뉴스웍스=허운연 기자] 교사가 사교육업체에 모의고사 문항을 공급하고 금품을 제공받는 '사교육 카르텔'이 적발됐다. 문항 공급 사실을 숨기고 수능이나 수능 모의평가 출제위원으로 참여한 사실도 확인됐다. 

감사원은 교원과 사교육업체 간 문항 거래 등 유착에 따른 우려가 지속 제기됨에 따라 공교육의 신뢰성 회복 및 교원의 복무기강 확립을 목표로 지난해 9월부터 12월까지 실시한 '교원 등의 사교육시장 참여 관련 복무실태 점검' 감사 결과를 11일 발표했다.

감사 결과 수능 출제과정에서 집필 중인 EBS 교재 문항 지문이 수능 문항에 출제되고, 수능 문항과 사설 모의고사 중복 검증 누락, 중복 지문 출제에 관한 이의신청을 평가원 직원들이 공모해 부당처리한 문제가 확인됐다.

대형 입시학원의 유명 강사가 만든 사설 모의고사 교재에 나온 지문이 2023학년도 수능 영어 23번에 그대로 출제되면서 논란이 발생했다.

감사원에 따르면 대학교수 A씨는 2022년 10월 2023학년도 수능 영어 출제위원으로 위촉돼 업무를 처리하면서 교재 집필 중 알게 된 모든 사실을 EBS 허락없이 유출할 수 없다는 EBS의 '보안서약서'를 위반해 자신이 감수한 EBS 교재에 실린 문항 지문인 TMI를 무단으로 사용해 23번 문항을 출제했다.

유명 학원강사 B씨는 TMI 지문의 원 출제자와 친분이 있는 다른 교원을 통해 TMI 지문으로 만든 문항을 받아 9월 말 모의고사로 발간했다.

평가원 영어팀은 수능 문항 확정 전 사설 모의고사 문항과의 중복 검증을 위해 강사 B의 수능 모의고사를 직전 2년간 계속 구매했으나 2022년에만 합리적인 이유 없이 구매하지 않아 해당 모의고사가 검증대상에서 누락됐다.

수능 이후 모의고사 문항과 동일 지문이 출제된 것에 대한 이의신청이 다수 접수됐다. 다만 평가원 담당자들은 이의심사 준비과정에서 수능 출제에 대한 공정성 논란이 발생할 것을 우려해 해당 안건을 아예 이의심사위원회 심사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공모했다. 해당 안건을 '제외 사안'으로 오인해 결의하게끔 실무위원회 위원을 기망했고, 23번 문항 관련 이의신청은 위원회에 상정되지 않고 종결 처리됐다.

한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수업을 하고 있다. 해당 사진은 본 기사와 관련 없음. (사진=뉴스웍스 DB)
한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수업을 하고 있다. 해당 사진은 본 기사와 관련 없음. (사진=뉴스웍스 DB)

한편 감사원은 수능 검토위원 경력 교원이 다른 수능 검토위원 등을 포섭해 문항공급조직을 구성한 후 사교육업체와 문항을 거래하고, 일부 교원은 사교육업체 거래 이력을 숨기고 수능 출제위원으로 참여한 것도 확인했다.

고교 교원 C는 수능과 수능 모의평가 검토위원으로 다수 참여하면서 2019년부터 사교육업체와 유명 학원강사 2명에게 수능 경향을 반영한 모의고사 문항을 제작·공급하고자 수능·모의평가 출제 합숙 중 알게 된 검토 및 출제위원 참여경력의 교원 총 8명을 포섭해 소위 문항공급조직을 구성했다. 

2019~2023년 5월까지 2000여 개 문항을 제작·공급하고 6억6000만원을 수수했다. 3억9000만원은 참여 교원에게 지급하고 나머지 2억7000만원은 자신의 문항 제작비와 알선비 명목으로 수취했다.

교원 D는 평가원 근무 중에도 교원 C와 함께 문항 거래를 계속하면서 출제위원 위촉 시마다 사교육업체 거래 사실이 없는 것처럼 '출제위원 후보자 자격심사자료'를 작성해 2022~2023년 9월까지 모의평가, 수능 출제위원으로 총 5회 참여했고, 2020~2023년 4월까지 5100만원의 금품을 받았다.

이외에도 교원이 배우자와 공모해 출판업체를 운영하면서 EBS 교재 집필진·수능 출제경력 교원 등으로부터 문항을 구입해 대형 사교육업체 등에 공급하고 금전적 이익을 수취한 경우도 확인됐다. 교원이 EBS 영어 수능연계교재 파일을 교재 출간 전에 빼돌려 변형 문항을 제작해 학원 강사에 공급하고 금품을 받은 사례도 있었다.

감사원은 "교원과 사교육업체 간 문항 거래는 수능 경향에 맞춘 양질의 문항을 공급 받으려는 사교육업체와 금전적 이익을 원하는 일부 교원 간에 금품 제공을 매개로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며 "신속한 수사가 필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지난 2월 7월 등 3차례에 걸쳐 교원, 학원 관계자 등 56명을 청탁금지법 위반, 업무방해, 배임수증재 등의 혐의로 경찰청에 수사를 요청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 외 문항 거래를 통해 금품을 수수한 것으로 확인되는 다수 교원에 대해서도 감사위원회의의 의결을 거쳐 엄중히 책임을 묻는 등 조치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뉴스웍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