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10.05 15:08
남산의 가을 길 모습이다. 떨어져 뒹구는 낙엽으로 가을은 완연한 제 모습을 드러낸다. 그 가을을 알리는 한자 표현은 퍽 많은 편이다.

남쪽 해역에 닥친 태풍 지나면 가을의 기운은 바야흐로 깊어진다. 만산홍엽(滿山紅葉)의 가을 정취가 이제 곧 우리 눈에 가득 들어올 테다. 가을을 표현하는 말은 퍽 많이 발달했다. 온 산을 물들이는 붉은 잎사귀는 그 많은 표현 중의 극히 작은 하나다.

개인적으로는 이 말 좋아한다. ‘한 밤 중 오동나무 잎사귀에 떨어지는 비’다. 한자로는 ‘梧桐葉上三更雨(오동엽상삼경우)’다. 여러 시인들이 즐겨 썼던 말이다. 보통은 오동나무 잎사귀와 밤중에 내리는 비를 병렬하는 경우가 많다. 오동은 잎이 매우 크다. 그래서 위에 떨어지는 빗소리는 유독 크게 들린다.

가을비 내린 뒤에는 날은 더 서늘해져 온 식생의 잎사귀들이 낙엽으로 땅에 뒹군다. 가을의 깊어짐, 곧 닥칠 추위까지 예고하는 비가 오동나무 잎에 떨어짐으로써 감성의 폭을 키운다. 그러니 옛 시인들이 즐겨 읊었던 소재가 오동나무와 그 위에 떨어지는 가을비다.

봄에는 바람, 가을에는 달이 시후(時候)의 특성을 잘 드러낸다. 그래서 춘풍추월(春風秋月)의 단어로 자주 병렬한다. 계절의 흐름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성어다. 떨어지는 잎사귀는 가을의 상징이다. 엽락지추(葉落知秋), 일엽지추(一葉知秋) 등은 잎사귀 떨어지는 것을 보고 가을의 도래를 짐작한다는 말이다.

미세한 조짐을 두고 크게 번지는 무엇인가를 미리 알아보는 행위를 가리키기도 한다. 전조(前兆)를 제대로 읽는 현자(賢者)의 능력이랄 수 있다. 서쪽에서 부는 바람 또한 가을의 중요한 표현이다. 서풍낙엽(西風落葉)이라는 성어는 그래서 차가운 바람에 휘날리는 잎사귀, 즉 가을의 쓸쓸한 정경을 표현한다. 그와 비슷한 성어는 서풍잔조(西風殘照)다. 서녘에서 부는 차가운 바람, 지는 해를 가리킨다. 겨울로 향하는 세월의 기울어짐을 말한다.

추풍낙엽(秋風落葉)은 가을바람에 맥없이 떨어지는 잎사귀다. 담은 뜻은 일정한 세력의 등장 앞에 맥을 못 추고 물러서는 경우다. 춘화추실(春花秋實)이라는 말도 있다. 봄은 꽃이요, 가을은 열매라는 뜻이다. 때에 맞는 일, 또는 그런 상황을 일컫기도 한다.

추수동장(秋收冬藏)이라는 말도 자주 등장한다. 봄에 싹을 틔워 여름에 자란 식생의 열매를 거두는 가을이 계절이다. 그를 추수(秋收)로 적었고, 뒤에 닥치는 겨울에 대비해 거둔 것을 차곡차곡 쌓아두는 일을 동장(冬藏)으로 표현했다. 계절의 흐름에 맞춰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가리킨다.

오곡풍등(五穀豐登)은 가을을 찬미하는 성어다. 잘 여문 온갖 곡식이 풍성하게 쌓인 상황을 일컫는다. 맑은 가을 하늘에 상쾌하기 그지없는 날씨를 일컫는 말은 추고기상(秋高氣爽)이다. 우리가 자주 쓰는 성어는 천고마비(天高馬肥)다. 그 뒤에 따르는 성어는 등화가친(燈火可親)이다.

가을 하늘 높고 말이 살찌니 등불을 가까이 해서 책을 읽으라는 권유다. 우리와 일본은 그런 버전으로 사용하지만, 실제 원전의 뜻은 엉뚱하다. 가을날씨가 차가워져 강이 얼어붙으면 유목민족의 말이 넘어온다는 뜻이었다. 전쟁이 벌어질지 모르니 미리 그에 대비해야 한다는 권고였다. 전쟁이 빗발치듯 닥쳤던 중국의 살벌한 환경에서 나온 말이다.

동물들은 보통 가을에 털갈이를 한다. 다가오는 추운 겨울을 버티기 위해서다. 이 무렵의 동물 털은 그래서 가늘다. 새로 나는 털이어서 그렇다. 그를 추호(秋毫)라고 적는다. 무릇 살아있는 모든 생명들이 기울이는 살고자하는 노력이다. 우리도 이 가을에는 살 방도를 제대로 생각해야 한다. 다툼의 좁은 틀을 벗고 함께 살고자 기울이는 노력이 이제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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