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10.19 14:02
중국 장쑤(江蘇) 패현에 있는 한(漢)나라 건국 시조 유방(劉邦)의 상. 그는 진시황의 아방궁을 점령하자마자 진귀한 보물이었다는 진경(秦鏡)을 손에 넣었다고 전해진다.

거울 이야기는 한자 세계에서 자주 등장한다. 그런 이야기 중에 나오는 특별한 거울 하나가 있으니 바로 진경(秦鏡)이다. 중국 판도를 최초로 통일했던 진시황(秦始皇)이 그 물주(物主)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마법(魔法)의 거울이다.

사람이 그 앞에 서면 거꾸로 비춰진다. 손으로 가슴을 쓰다듬으면 오장육부(五臟六腑)가 훤히 드러난다. 다시 손을 가슴에 대면 사람의 마음마저 나타난다. 몸에 지닌 질병, 마음이 지닌 착함과 삿됨의 선악(善惡)을 비췄다고 하니 이 거울은 최고의 보물임에 틀림이 없다.

거울의 소유자인 진시황이 중국 최초 통일 제국의 권세를 누리던 곳은 현재 산시(陝西)성 소재 셴양(咸陽)이다. 그곳에 진시황은 아방궁(阿房宮)을 만들어 놓고 권력을 즐겼다. 그러나 진시황은 제국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가혹한 폭정으로 왕조의 명운을 오래 끌어가지 못했다.

그 왕궁이 한(漢) 고조 유방(劉邦)에 의해 점령당하던 날이었단다. 군대를 이끌었던 핵심 참모 소하(蕭何)는 유방에게 “일단 왕궁 전체를 봉쇄하자”고 제안한다. 아방궁의 무수한 보물을 건지기 위해서다. 소하가 먼저 압수에 나선 것은 진 왕실이 보존했던 각종 서적이다. 그 다음으로 찾아 나선 것이 진시황이 가지고 있다던 큰 거울, 즉 진경(秦鏡)이다.

진경이 몸속의 질병과 마음 상태를 들여다 볼 수 있는 보물 중의 보물이었던 까닭이다. 요술 거울에 뢴트겐이 발견한 X-레이 기능, 나아가 사람의 마음까지 읽을 수 있었다니 그 가치야 더 말할 나위가 없었을 것이다. 각종 진기한 전적과 함께 이를 찾아내기 위해 부심했던 소하의 의도가 읽혀진다.

이런 거울이 진짜 있다면 그를 손에 넣은 사람은 시쳇말로 ‘대박’이었을 테다. 내 안의 모든 것, 남이 지닌 마음의 모두를 비출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야말로 진귀한 보물 중에서도 가장 가치가 높은 보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진시황은 엉뚱하게 이를 활용했던 모양이다.

전언에 따르면 진시황은 자신에 반대하는 뜻을 지닌 사람 골라내는 데에만 이 거울을 썼다고 한다. 시황의 아들에 가서는 이 진귀한 보물의 가치는 아예 새카맣게 잊힌 채 존재감을 상실한다. 최고의 기능을 지닌 이 거울을 손에 쥐고도 그 효용을 살리지 못했으니 진나라 왕실이 오래 버텼다면 그 점이 더 이상하다.

진경은 진감(秦鑑)으로도 적는다. 사람의 쓸개까지 비춘다고 해서 조담경(照膽鏡)으로도 불린다. 이런 거울이 실제 존재했을 리는 없다. 그러나 대상을 고스란히 비추는 거울 앞에 어떻게 서야 좋을까, 그래서 스스로는 몸과 마음을 어떻게 추슬러야 좋을까를 생각해 보자는 취지의 고사일 테다.

제 아무리 좋은 거울이 있더라도 남의 잘못을 살피는 데만 쓴다면 어떨까. “제 눈의 대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눈에 있는 티끌만 본다”는 우리 속담이 그런 경우를 지칭하는 말일 것이다. 제 스스로를 관조하지 못하면 설령 남의 잘못을 알아낸다 하더라도 도덕적인 정당성을 지닐 수 없을 테다.

청와대에 걸린 거울은 어떤 거울인지 궁금하다. 그 거울의 방향이 외향(外向)으로 단단히 묶여져 있는 듯하다. 안에서 곪아터지는 상황은 전혀 헤아리지 못하고 그저 남 탓을 위한 기물(器物)로서만 작용하는 낌새다. 자성(自省)의 기능을 잃었으니 그 거울은 진정한 거울이 아닐 테다. 청와대에는 거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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