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
  • 입력 2016.11.02 14:54
중국 전원파 시풍을 개척한 시인 도연명. '음주'라는 시에서 그는 세상과 내가 한 데 섞이는 물아양망의 경지와 함께 망언(忘言)의 심경을 노래했다.

다섯 말의 쌀(五斗米)에 허리를 굽히지 않겠다는 뜻을 품고 전원으로 돌아온 도연명(陶淵明)은 이런 소회를 읊는다. “사람들 사는 곳에 집을 지었지만, 수레소리 말의 울음소리 들리지 않는다. 왜 그렇다고 할까? 마음 멀어지면 사는 곳도 으슥해지는 법이지….”

이 글의 마지막 구절은 한자로 ‘心遠地自偏(심원지자편)’이다. 풀이는 사실 각자의 몫이다. 그러나 세속의 명리(名利)를 떠난 마음의 경지는 그런 번잡함을 피할 수 있는 곳으로 몸을 돌리게 만든다. 그런 마음의 경계를 도연명은 이 같은 표현으로 적었다.

도연명의 ‘음주(飮酒)’라는 시에 나오는 내용이다. 이 시는 그의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에 속한다. 이전에도 소개했던 “동쪽 울타리에서 국화를 캐다가, 문득 저 멀리의 남산을 바라보다”라는 구절도 위 내용에 이어 바로 등장한다. 세상과 나, 물아(物我)의 분별을 모두 잊는 마음의 경계다.

이 시의 마지막 구절에 등장하는 내용이 범상치 않다. 자연에 풀어 놓은 마음자리를 설명하다가 시인은 “이 안에 진정한 뜻이 있을지니, 말을 하려 해도 이미 잊도다(此中有眞意, 欲辯已忘言)”고 한다. 말을 하려 하지만 그 말 자체를 잊는다는 얘기다.

세상과 나, 객(客)과 주(主) 등의 분별이 모두 없어지는 물아양망(物我兩忘)이다. 그런 경우에 사람의 말이 도대체 무슨 소용일까. 느껴본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으나 어렴풋하게나마 그 속내를 짐작하는 사람도 있을 테다. 할 말을 잊는 그런 경우, 즉 망언(忘言)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글귀다.

그러나 좋은 뜻이다. 어처구니가 없어 할 말을 잊는 경우가 많다. 그런 때도 역시 ‘망언’이다. 이를 테면 ‘망기소언(忘其所言)’인데, 우리말로 옮기자면 ‘말할 바를 잊다’의 상황이다. 불가(佛家)에서 흔히 일컫는 언어도단(言語道斷)도 마찬가지다.

원래의 언어도단은 절대의 깨달음을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때를 일컫는데, 세속의 상황에서는 ‘어처구니가 없어 정말 아무런 이야기조차 할 수 없다’의 뜻으로 쓴다. 도연명이 말을 잊은 망언(忘言)의 경지가 ‘기가 막혀 말도 안 나오는’ 상황으로 전의(轉義)하는 케이스와 같다.

좋아서 더 이상 다른 것은 보지 않아도 무방한 경우를 일컫는 말이 ‘관지(觀止)’다. 훌륭한 옛 글들을 모아 “최고의 옛 글을 여기에 뒀으니 다른 글은 볼 필요가 없다”는 취지로 편찬한 책 <고문관지(古文觀止)>의 이름은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우리는 지금 할 말을 잊고, 더 이상 구설(口舌)로는 표현할 수 없는 풍경과 마주하고 있다. 이제 더 이상 그보다 더 한 상황은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에서 관지(觀止)에도 해당하는 모습들이다. 청와대의 주인인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을 비롯한 비선과 공식 라인의 참모진 행태들을 지켜보고 있어서 그렇다.

이들이 권부 핵심에서 벌인 스캔들이 참 별나다. 대한민국이 맞은, 매우 보기 드문 수준의 위기다. 그를 수습하는 방안도 아주 어지럽다. 판단력과 그를 뒷받침하는 사고력도 매우 위태롭다. 어떻게 이 지경에까지 흘러들고 만 것일까.

따지고 보면 우리 모두의 실패다. 그런 점에서 말을 잊었다. 망언(忘言)이다. 말을 해보려 해도 뚝 끊기고 만다. 언어도단(言語道斷)이다. 눈을 들어 앞을 보려고 해도 더 이상 보고 싶지가 않다. 관지(觀止)다. 눈과 입, 귀까지 이제는 다 닫고 싶은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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