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재천기자
  • 입력 2016.11.22 13:34

[뉴스웍스=이재천기자] 박근혜 대통령과 비선 실세로 불리는 최순실씨를 둘러싼 국정농단 사건으로 인해 한국의 여권(女權) 신장이 장애물에 가로막히게 됐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가 21일(현지시간) 한국의 첫 여성 대통령인 박 대통령을 둘러싼 스캔들로 한국의 양성 평등이 더욱 악화될 우려가 있다고 보도했다.

NYT는 “박 대통령을 둘러싼 스캔들은 많은 한국인 여성들이 여성을 지도자로 뽑는 것이 적합하지 않다는 논리로 이용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갖게 했다”며 “그렇잖아도 한국은 글로벌 양성평등 순위가 하위권인데 앞으로 여성이 권좌에 오르는데 대한 저항이 훨씬 더 커질 것으로 여성들은 걱정하고 있다”고 썼다.

최근 서울 시내에서 박대통령 하야 촉구 시위에 참가한 김연정(22)씨는 NYT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그동안 터무니없는 남성 정치인들을 숱하게 보아왔다. 그런데도 남성들은 지금 뒤에서 우리를 비웃고 있다. ‘그것봐! 여자 대통령을 뽑아 놓으니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거야, 라고 말하는 거 같은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NYT는 지난 12일 100만 명의 시위대 속에는 중고 여학생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고 전했다. NYT는 박 대통령의 모교인 성심여고에 다닌다는 한 여학생이 군중들 앞에 나와 “(박근혜) 당신은 우리를 수치스럽게 만들었다. 우리는 당신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걸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라고 분노를 표출했다고 전했다.

NYT는 박 대통령의 변호인인 유영호 변호사가 지난 15일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이기 전에 여성으로서의 사생활이 있다는 것도 고려해 달라”라고 말한 것을 전하며 “여성이라는 점을 방패로 삼았다”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NYT는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여성단체들이 반발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16일 논평을 내고 “대통령으로서의 법을 위반한 수사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여성으로서의 사생활을 고려할 지점이 무엇인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여성은 약하고 특별하게 보호받아야 하거나 배려 받아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성차별적이고 성별고정관념을 강화하는 발언이다”라고 비판했었다.

NYT는 또 박 대통령이 한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지만 한국사회에서 여권을 상징하는 인물로 여겨진 적이 없다고 보도했다. 국회의원 시절에도 여권 신장을 위한 의정활동을 한 사례를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의 이미지 자체도 ‘여성’과는 거리가 있다고 NYT는 지적했다. 박 대통령은 대선 선거 운동 기간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을 그리워하는 노년층 보수표를 겨냥했고, 실제 많은 한국인들은 박 대통령을 여성 대통령이기보다는 아버지의 현대적인 버전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더 강하다고 신문은 전했다.

저작권자 © 뉴스웍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