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
  • 입력 2016.11.22 16:46

우리가 자주 쓰는 한자 낱말 중의 하나가 금도(襟度)다. 襟(금)이라는 글자는 옷깃을 가리킨다. 그 가운데서도 가슴 부위에 해당하는 옷깃을 지칭하는 글자다. 따라서 눈에 많이 띈다. 남에게는 숨기려고 해도 제대로 숨길 수 없는 곳이다.

이 글자는 사람의 ‘마음’을 말하기도 한다. 가슴은 마음을 품는 곳으로 옛 사람들은 생각했기 때문이다. 머리에 머무는 것은 생각이지만,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마음가짐은 대개 가슴에 깃든다고 여겼다. 포부(抱負), 이상, 뜻, 지향 등은 따라서 사람의 이런 가슴과 관련이 있다.

그 정도와 크기, 수준 등을 나타낼 때 붙는 글자가 度(도)다. 이 글자는 크기나 길이 등을 재는 의기(儀器)를 말한다. 흔히 길이와 부피, 무게 등을 지칭하는 도량형(度量衡)이라는 말에서 자주 등장하는 글자다.

그래서 금도(襟度)라고 하면 가슴의 크기다. 그냥 육체의 가슴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마음가짐의 크기를 드러내는 말이다. 남을 헤아리고, 남을 받아들일 줄 알며, 제 자신의 심정과 남의 그것을 함께 어울릴 수 있도록 하는 마음의 크기를 말한다.

마음은 어쩌면 헤아림이 근본일 수 있다. 먼 세상 한 곳의 홀로 떨어진 장소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몰라도, 남과 어쩔 수 없이 부대끼며 살아가야 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이라면 이 마음가짐의 근본 바탕인 헤아림에 밝아야 한다.

헤아림으로써 남의 눈과 마음에 비친 나를 알 수 있으며, 또한 그로써 남의 의견에 귀를 기울일 줄 안다. 따라서 금도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두에게 중요하다. 그런 금도를 제대로 갖춰야 남과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까닭이다.

남의 앞에 서서 뭇사람들을 이끄는 사람에게 이 금도는 정말 중요하다. 타인의 말을 새겨들을 줄 아는 마음가짐이 없으면 앞장을 서서 사람을 이끌어가는 일이 불가능하거나 적어도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늘 아울러 듣는 일, 겸청(兼聽)이 중요했다.

한 귀로 듣지만 다른 한 귀를 막는 이는 공평한 심사를 이루지 못한다. 그래서 두 귀로 다양한 소리를 들어야 한다. ‘두 귀’라고 했으나 실제는 여러 목소리를 다 듣는다는 뜻이다. 그 반대가 편청(偏聽)이다. 한 귀로만 일방적인 하나의 소리를 듣는 행위다.

아울러 들어 겸청을 이룬다면 머리가 맑아진다. 음습한 이해에 쏠리지 않아 공평함에 닿을 수 있다. 그 반대로 하면 어두워진다. 좁고 어두운 한 쪽의 이해가 담긴 목소리를 좇는다면 향하는 곳은 막다른 골목이다. 형평을 잃어 공정함을 놓치기 마련이다.

최순실이라는 여인이 홀연 나타나 대한민국의 근기를 흔드는 사건이 벌어졌다. 그를 믿고 의지한 대통령의 금도는 여전히 좁다. 큰 잘못이 저질러진 지금 상황을 감안하면 이제는 활짝 마음을 열어 뭇사람의 기대와 열망에 귀를 기울여야 옳다.

그럼에도 대통령의 마음가짐은 그저 좁고 어두운 곳에만 머물며 귀는 지금까지의 방식 그대로 어느 누군가의 불길한 소근거림에만 반응한다. 그래서 정국은 더 이상 드넓은 개활지를 향하지 못하고 있다. 스스로 묶어 걸려 넘어진 매듭이다. 그 잘못된 매듭을 스스로 풀어야 다음 수순도 괜찮다.

야당 탓만 할 계제가 아니다. 대통령이 스스로의 과오를 인정하며 수습에 적극 나서야 우리가 맞은 매우 심각한 어려움을 풀어갈 수 있다. 그런 금도가 보이지 않는다. 귀 기울임도 따라서 매 한 가지다. 난국(難局)은 더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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