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17.01.21 10:00

국가를 형성하기위해 중요한 것은 다양한 계층이 자기 영역에서 맡은 일들을 원만히 수행하는데 달려 있다. 공무원, 노동자, 농민, 정치인, 언론인, 상공인, 각 방면의 엔지니어들 과 인텔리들...누구나 말이다.

북한에서는 흔히 ‘인텔리’라는 용어를 사용해서 공부한 사람들을 구분한다. 이것은 러시아어의 인텔리겐챠(intelligentsia)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통 지식인이라는 용어와 혼용돼 있다. 1990년대 들어 김정일은 ‘혁명과 건설에서 인텔리들의 역할을 더욱 높이자’는 연설에서 북한에서 인텔리의 범주에 들어가는 사람들을 규명한다. 거기에는 교원, 연구원, 문학작가, 예술인, 의사, 언론출판종사자, 기술자 등의 정신노동을 하는 사람들이 포함돼있다.

근대에 들어와 인텔리가 구분되기 시작한 건 프랑스다. 19세기 말엽 프랑스 지식인들의 ‘비판적 의식’과 ‘도덕적 정열’을 함축해 정의롭지않은 사회에 대항하지 못하는 많은 근로계층과 구별을 위해 나온 것이 바로 인텔리다. 지식인사회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에드워드 쉴즈(Edward Shils)에 의하면 지식인은 반드시 ‘비판적인 집단’만을 구분하는 용어는 아니며 거기에는 ‘인간, 사회, 자연 및 우주에 관한 일반적 범주와 추상적 준거를 지닌 상징들을 다른 사회 성원들보다 상대적으로 자주 사용하는 사람들의 집합’이라고 규정한다.

북한에서 ‘인텔리’는 수용소 담벼락 위를 걷는다

그렇다면 북한에서의 지식인의 현주소는 어디일까

북한은 사회주의 체제의 변화과정 속에서 권력자들이 지식인을 통제하고 구(舊)지식인들을 흡수하는 과정에서 철저한 사상 개조과정을 거친다. 그들은 자기 전문영역과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발판을 갖지 못한 채 당과 수령에 대해 절대적인 충성을 강요당한다. 그렇다 보니 과학적, 기술적인 가능성과 한계를 주장하지 못하고 ‘명령’과 ‘지시’아래에서만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것을 입증할 수 있는 것이 정치범수용소이다. 거기에는 ‘당과 수령의 은혜를 배반한 사람들’과 함께 많은 지식인들이 수용돼 있으며 이들은 자기 분야의 학문적 가능성을 주장하는 가운데 ‘반동’이나 ‘종파’로 몰려 수감된 사람들이다.

지식인은 사람을 만나 대화를 하는 과정에서 ‘자기학문에 대한 우월감’을 과시하면서 주어진 현 체제를 비판하기도 한다. 북한의 인텔리들 가운데 이런 대화가 문제가돼 평생 수용소 생활을 해야하는 나락으로 떨어진 경우가 적지 않다.

탈북자들 가운데 수용소에 갇혔던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북한 정치범수용소의 40-50%에 달하는 수감자들이 현대 북한체제에 ‘반기’를 들었다는 죄명을 쓰고 억울하게 갇힌 사례가 꽤 된다. 그들은 대부분이 북한사회의 인텔리들이다.

해방전 해외 유학파의 '몰락'

북한의 인텔리들은 김일성의 ‘주체’확립과정에서 ‘낡은 사상적 잔재’와 ‘기술신비주의’자들이라는 올가미에 갇혀 지내게 된다. 이 과정에서 북한사회는 해방 전 해외에 나가 공부한 사람들을 철저하게 배격한다. 주체사상 확립에 해(害)가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중공업우선정책과 경공업, 농업동시발전전략과정에서 당의 주장을 따르지 않으면 ‘소극성’과 ‘보수주의’의 꼬리표를 달게되고, 사대주의, 형식주의, 도식주의자로 지탄받았다. 해방이 된 후 소련과 중국, 동유럽의 여러 사회주의 국가들에 유학을 보냈던 많은 인텔리들이 북한에 돌아와서 사상검증과정에서 당의노선과의 갈등으로 ‘반동’으로 몰락하게 된다. 

해방이후 남북이 분단되는 과정에서, 그리고 6.25전쟁 시기 월북한 많은 지식인들이 ‘남조선출신’이라는 이유로 배제되었고 1960년대 이후에는 인텔리 계층에 대한 ‘혁명화’, ‘노동계급화’의 구호가 그들의 수족을 묶어놓았다. 이후 북한은 새롭게 배출되는 신세대 인텔리들과 그들을 배양하는 대학을 중심으로 진정한 사회주의 구성원으로서의 자격을 위해 ‘혁명화과정’을 만들고 창의적인 사고와 실천을 통제하고 있다.

북한 권력자에게 인민은 '목적달성의 수단'일 뿐

북한에서 살 때 개마고원산악지대로 추방된 지식인들을 통해 들었던 이야기가 아직도 생생하다. 북한이 돌아가는 모양은 스탈린시대와 모택동시대와 너무나 꼭 닮아있다고...

스탈린의 집권과 함께 소련에서의 지식인 정책은 일대 변혁을 가져온다. 1920년대 초 소련은 ‘붉은 교수 연구소’(Red Professors Institute)를 창립하고 여기에 소련 내의 모든 사회, 역사, 철학, 자연과학분야의 전문가들과 학자들을 가입시킨다. 이후 소련은 스탈린의 지시에 의해 모든 인텔리겐챠들에게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를 강조시키고 대학과 교육기관들에서 소련공산당에 충실한 사람들을 배양시키는 일에 집중시킨다. 중국의 인테리 정책은 어떠했는가 모택동은 중국혁명의 진원지를 ‘농촌’으로 규정하고 있었다. 한편으로 중국사회에서 농민은 일반적으로 지식인에 대해 농촌과는 섞일 수 없는 물과 기름으로 여기고 있었다. 인텔리들에게 가장 큰 시련이 닥친 시기는 ‘반우파정책’과 ‘문화대혁명’기간이었다. 거의 20년의 기간 동안 중국의 인텔리들은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을 받았다. 유학파와 각 분야의 지식인, 전문가, 기술자 50만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으며, 많은 지식인들이 중국을 탈출했다.

돌아보면 20세기 잠간 동안 빛을 발했던 사회주의는 결코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승리가 아니었다. 스탈린이 그랬고 모택동이 그랬으며 김일성이 이들을 따라했던 것처럼 사회주의국가들의 권력자들에게 ‘인민’은 그냥 수단과 과정이었다. 권력자들은 언제나 자신들의 목적달성 ‘권력’을 위해 인민대중을 이용했을 뿐이다. 오늘날 사회주이 이념이 본래의 의미가 상실되고 멸망해 버린 것이 그것을 말해 준다.

 

북한 김일성종합대학교 정문 모습. 이 대학은 현재 최고 북한 인텔리 양성소로 출신성분(6촌까지확인)에 따라 입학이 일부 계층에한해 허용된다. 북한에서는 지금 최고 인텔리층은 제대군인, 노동당원, 김일성대학출신자 등 세가지 자격요건을 모두 충족해야한다. 따라서 이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거나 해방이전 유학파들은 인텔리 그룹에서 배척당하거나 정치범 수용소로 격리되기 일쑤다. <사진=동국대 북한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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