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동연기자
  • 입력 2017.01.02 17:10

출시 30주년 맞은 지난해 처음으로 ‘내수 판매왕’ 올랐지만...

[뉴스웍스=이동연기자] 나는 현대자동차가 만든 1톤 트럭입니다. 내가 서른살 생애 처음으로 1등을 했습니다.

지난해 국내에서 9만6950대가 팔려 내수 판매왕 자리에 올랐습니다. 아쉽게 3000대가 모자라 ‘10만대 클럽’ 가입은 문턱에서 좌절됐지만 내가 단일 차종으로 연간 판매 1위를 한 건 현대·기아차가 통계를 낸 2000년 이후 처음이랍니다. 원래 베스트셀링카는 승용차들만의 리그였는데 상용차인 내가 1위에 오른 건 이례적인 일이긴 합니다.

그런데 맘껏 기뻐할 순 없네요. 내가 잘 팔린다는 건 그리 좋은 신호는 아니니까요. 흑흑.

내 별명은 ‘서민의 아이콘’입니다. 나는 태어나던 순간부터, 그러니까 1986년 현대자동차가 나를 출시하며 내건 슬로건대로 “자영업 종사자를 돕겠다”는 소명을 안고 태어났지요. 길거리에서 채소나 과일, 양말, 생활용품 등을 팔거나 푸드트럭, 이삿짐차, 택배차량 등으로 이용되는 대부분의 소형트럭들이 바로 나입니다.

자영업자들의 생계형 이동수단으로 주로 애용하다 보니 내 판매추이로 실물 경기체감도를 가늠해볼 수 있지요. 경기가 나쁘면 잘 팔리고 호황이면 잘 안 팔리는 내 판매량은 ‘경기의 바로미터’로 인식될 정도여서 포터지수라는 말까지 생겨났습니다.

그래서인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끝난 2000년대 이후부터는 늘 판매량 ‘톱5’를 유지해왔습니다. 수요가 넘치다 보니 난 중고도 비싼 몸이랍니다. 신차 가격은 1430만~1940만원이지만 출고된지 1~2년 된 중고차는 100만원, 5년 된 중고차는 300만~400만원이 저렴한 정도에 그칩니다.

해외에서도 나를 알아줍니다. 1990년에 첫 수출을 시작했는데 1995년 수출 1만대, 1997년 2만대, 2008년엔 4만대를 돌파했습니다.

올해는 내 신상에 변화가 생기는데 좀 걱정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제 유럽의 배기가스 규제기준인 ‘유로6’를 적용해야 하기 때문에 미세먼지는 50%, 질소산화물은 80% 이상 줄이는 배출가스 저감장치를 탑재해야 합니다. 이렇게 차량 사양을 변경하게 되면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답니다.

그렇지 않아도 점점 생계 유지가 힘겨운 자영업자들이 가격이 올라 나를 데려가기 더 어려워질까 걱정이 앞섭니다. 앞으로 한국보다는 해외에서 더 잘 팔렸으면 하는 게 내 바람입니다.

저작권자 © 뉴스웍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