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경보 기자
  • 입력 2018.05.10 17:08
전국금속노동조합 한국지엠지부 조합원들이 지난 3월 26일 서울 광화문 앞에서 금호타이어 해외매각 철회와 중형조선소 고용대책을 촉구하는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사진제공=한국지엠 노조>

[뉴스웍스=박경보 기자] 정부와 GM이 한국지엠의 정상화를 위해 7억7000만달러를 투입하기로 한 가운데 노동계는 정부가 경영부실 원인 규명없이 혈세를 지원한다고 반발했다. 투명하지 못한 실사로 경영실패에 면죄부를 주고 언제 터질지 모를 폭탄을 다음정권에 떠넘긴다는 지적이다.

정부와 산업은행은 10일 한국지엠에 대한 최종적인 경영정상화 방안을 내놓고 총 8000억원(7억5000만달러)를 신규 출자한다고 밝혔다.

산업은행은 “최종 실사결과 GM이 제시한 신차배정, 투자계획, 고정비 감축이 이뤄지면 경영회생 기반이 마련될 것으로 평가했다”며 “GM 본사와의 이전가격 등 거래구조도 여타 계열사와 유사한 수준이며 글로벌 기준에도 부합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같은 산업은행의 결정에 대해 노동계는 “한국정부가 GM에 KO를 당한 것”이라며 크게 비판했다.

◆ 부실경영 졸속 실사 지적…"대출형식 자금지원으로 이자비용만 증가"  

금속노조 인천지부 부평비정규직지회는 이날 오후 1시 정부 지원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GM의 부실경영에 대해 아무것도 밝혀내지 않고 노동자들에게 고통을 전담시킨 채 8000억원의 혈세를 지원한다”며 “GM이 자료제출을 거부하며 실사에 제대로 협조하지 않았는데도 이전가격과 고리대금업에 대해 문제없다는 판정을 내렸다”고 비난했다.

노조는 이어 “차입금 27억달러를 출자전환하기로 했지만 우선주로 가져가는 만큼 그동안 이자로 나가던 것이 배당금으로 바뀔 뿐”이라며 “GM이 약속한 뉴머니 36억달러도 대출형식이어서 매년 이자비용은 이전보다 증가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실질적인 GM의 투자지원 없이 산업은행만 8000억원을 쓰게 됐다는 이야기다.

또 노조는 산업은행이 신규 투자하는 대신 받아낸 비토권 역시 전혀 쓸모가 없다고 꼬집었다. 주총 의결 거부권을 이미 갖고 있는 상황에서도 철수를 운운하는 GM을 전혀 견제하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 비정상적 거래구조 해결없어 '정권 폭탄돌리기' 불과

이와 더불어 69개 시민단체와 5개 정당이 함께 모인 ‘GM횡포저지 노동자살리기 범국민대책위원회’도 정부의 부실한 실사와 자금지원 결정을 규탄했다. 범대위는 “정부가 실사결과와 합의내용을 투명하게 밝히지 못했다”며 “비정상적인 경영방식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않는 한 다음정권으로 폭탄돌리기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범대위의 분석자료에 따르면 지난 3년 간 한국지엠이 연구개발비 명목으로 지출한 1조원 가운데 약 58%가 한국지엠이 아닌 다른 해외법인이 생산하는 차종에 쓰였다. 범대위는 이 기간 동안 해외법인들이 연구개발을 위해 부담한 비용은 1535억원에 불과하지만 한국지엠은 9410억원이나 떠안았다고 주장했다. GM의 글로벌 차종들을 한국지엠에서 대신 개발해주면서 적자가 이어졌다는 계산이다.

뿐만 아니라 범대위는 한국지엠이 본사 결정으로 매년 수백억원 이상의 흑자를 기록한 유럽 판매법인을 청산하고 철수비용까지 떠안았다고 꼬집었다. GM은 연간 1300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하는 등 승승장구하던 한국지엠의 쉐보레 유럽판매망을 2013년 철수시켰다. 유럽에서는 쉐보레가 아닌 오펠과 복스홀 브랜드를 팔겠다는 GM의 일방적인 결정 때문이다. 게다가 철수 비용까지 부담하면서 2013년 당시 2916억원이 추가 손실로 반영됐다.

이어 범대위는 “정부가 GM의 10년 체류 약속을 받았지만 GM은 호주정부로부터 10년 간 보조금을 빼먹은 뒤 2017년 생산기지를 폐쇄했다”며 “새로 배정하겠다는 트랙스 후속 역시 이미 양산설비 준비까지 마치는 등 원래 있던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정부의 정상화 협상이 올바르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끝으로 범대위는 “27억달러이던 빚이 36억달러로 늘고 군산공장 유급휴직 노동자들은 3년 간 언제 쫓겨날지 모를 흉흉한 세월을 보내야 한다”며 “원인 규명이 빠진 한국지엠 사태는 일단락이 아닌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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