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윤현성 기자
  • 입력 2020.04.22 16:03
보존처리가 되기 전 창경궁 자격루. (사진제공=문화재청)
보존처리가 되기 전 창경궁 자격루. (사진제공=문화재청)

[뉴스웍스=윤현성 기자] 창경궁 자격루 제작자 12명이 모두 밝혀졌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재보존과학센터는 1년 7개월 만에 과학기술사 연구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 창경궁 자격루(국보 제229호)의 보존처리를 마쳤다.

자격루는 물의 증감에 따라 자동으로 시작을 알려주는 첨단 물시계로, 조선 시대의 국가 표준시계였다. 자격루는 1434년(세종 16년)세종대왕의 명에 따라 장영실이 만든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당시 제작된 자격루는 지금까지 전해지지 않고 있다.

대신 1536년(중종 31년) 다시 제작한 자격루의 일부인 파수호(물을 보내는 청동항아리) 3점과 수수호(물을 받는 청동 원통형 항아리) 2점만이 창경궁 보루각에 남아 있다.

자격루는 일제강점기에 자리가 옮겨진 덕수궁 광명문 안으로 옮겨 전시되면서 흙먼지 제거와 기름 도포 등 경미한 보존처리를 받은 바 있다. 하지만 이러한 조치만으로는 청동으로 만들어진 자격루의 부식과 손상을 제대로 방지할 수 없었고, 결국 지난 2018년 6월 문화재보존과학센터로 옮겨져 보존처리를 받게 됐다.

보존처리를 마친 창경궁 자격루. (사진제공=문화재청)
보존처리를 마친 창경궁 자격루. (사진제공=문화재청)

보존처리를 마치자 그동안 정확한 관찰이 어려웠던 수수호(왼쪽) 상단의 명문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해당 명문엔 자격루 제작에 참여한 12명의 직책과 이름이 세로로 새겨져 있다. 보존처리 전에는 명문의 몇몇 글자가 마모돼 12명 중 4명이 누구인지 알 수 없었으나 보존처리가 완료되면서 이들의 이름을 새로 확인할 수 있게 됐다.

새로 확인된 인물은 이공장(李公檣, ?~?), 안현(安玹, 1501~1560), 김수성(金遂性, ?~1546), 채무적(蔡無敵, 1500~1554)으로 조선왕조실록, 국조인물고, 문과방목 등에도 자격루 제작 시기에 이들이 명문의 직책을 맡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또 해당 사료에는 안현, 김수성, 채무적이 천문 전문가로 자격루 제작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는 사실도 기록돼 있다.

3D 스캔으로 평면 복제한 자격루 수수호 용 문양. (사진제공=문화재청)
3D 스캔으로 평면 복제한 자격루 수수호 용 문양. (사진제공=문화재청)

이외에도 문화재보존과학센터는 자격루 수수호 표면에 있는 용 문양을 3D 스캔과 실리콘 복제 방법을 통해 평면 형태로 펼쳐보기도 했다. 문화재보존과학센터는 스캔 결과 자격루의 수수호는 정교한 형태로 조각한 문양을 순서대로 붙여 만든 것으로 추정되며, 밀랍주조기법으로 주조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창경루 자격루는 조선 시대 과학기술의 정점을 보여주는 중요한 과학 문화재로 평가된다. 따라서 이번 보존처리로 자격루의 원형을 보존하고 제작 참여자와 제작기법 등 사라진 기록을 복원하는 데 성공한 것은 그 의미가 매우 크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이번 창경궁 자격루에 이어 앞으로도 보존·복원이 필요한 다양한 문화재의 보존처리를 위해 노력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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