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원성훈 기자
  • 입력 2020.07.23 14:49
원성훈 기자.
원성훈 기자.

[뉴스웍스=원성훈 기자] 지난 2004년 헌법재판소는 "관습헌법상 수도는 서울이고, 수도는 입법 기능을 수행하는 곳이어야 하며 대통령이 활동하는 장소"라고 정의했다. 2004년 당시 노무현 정부의 수도이전법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8(위헌)대 1(각하)로 위헌 결정을 내린 것이다. 그로부터 16년이 흘렀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은 지난 20일 국회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통해 '행정수도 이전'을 강력히 주장한데 이어, 지난 22일에는 박병석 국회의장을 찾아가 '행정수도 완성 특별위원회' 구성을 협의했다. 이에 더해 민주당은 당내에 '행정수도 완성추진단'을 구성해 23일 출범시킬 예정이다.

이뿐만 아니다. 김 원내대표는 23일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행정수도를 완성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국회 결단이고 여야의 합의다.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행정수도 관련 법률을 제정 또는 개정하는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면 문제 없다"면서 "관습 헌법 판결은 영구불변의 진리가 아니다. 시대가 변하고 국민적 합의가 달라지면 바뀔 수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국회의 새 행정수도법에 대해 헌법 소원이 제기되면 다시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받으면 된다"며 "2004년과 2020년의 대한민국은 달라졌고 시대 변화에 따라 헌재 판결도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쯤되면 당장에라도 대한민국의 수도를 세종시로 천도해야만 직성이 풀릴듯한 기세다. 이를 두고, 야권의 한 핵심 관계자는 23일 기자와의 만남에서 "민주당이 무려 176석이라는 거대 여당으로 성장한 이후, 그 힘을 믿고 오만하고 무례해진 것"이라며 "600여년 동안 면면히 지켜온 세월의 무게를 특정한 한 세대가 16년 만에 뒤집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그 증거"라고 비판했다. 

이런 가운데, 여권에서는 현재 '행정수도 이전'이라는 작업에 가속페달을 밟고 있는 양상이다. 이는 현재의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의 구성이 여권에 유리한 구도이므로 힘으로 밀어붙이면 충분히 통과되리라는 자신감이 깔려있기 때문인 듯 하다. 실제로 헌법재판관 9명 중 8명이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임명됐고, 이 8명 중 6명이 문 대통령과 김명수 대법원장, 민주당 지명·추천으로 임명됐다. 이 6명 중 4명만 합헌 의견을 내도 합헌 결정은 내려진다. 

하지만, 조선왕조를 창업한 태조 이성계가 1394년 한양을 조선의 수도로 확정한 이래로 600년이 넘는 세월동안 서울은 이 나라의 수도였고 현재도 그렇다. 더군다나, 2004년 헌법재판소 판결은 '국민들 머리속에 대한민국의 수도는 서울이라고 각인돼 온 세월이 무려 600여년인 만큼 서울이 수도라는 것은 이미 관습법으로 확립된 사안'이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즉, 어떤 필요에 따라 쉽게 변동되어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노무현 정부 당시에도 그랬고, 지금도 '대한민국은 서울공화국이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우리나라의 정치·경제·문화 등이 서울·수도권을 중심으로 편중돼있고 따라서 국토균형발전이 시급하다는 논리도 설득력을 갖고 있다. 그리고 국토균형발전을 위해서는 국토의 중심에 가까운 세종시를 행정수도로 육성하는 게 필요하다는 주장도 일리는 있다. 

다만 이 같은 행정수도 찬성론자들의 주장을 다 받아들여준다 해도 몇가지 중대한 맹점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홍준표 무소속 의원은 22일 자신의 페이스북 메시지에서 "통일을 앞두고 천도를 구상한다면 수도는 통일 후 평양으로 가고, 서울은 경제수도로 해 한반도 미래 전략을 세우는 것이 통일 한국 비전으로 맞다"며 "서해안으로 수도를 옮기자는 건 통일을 포기하고 영원히 분단국가로 살아가자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홍 의원은 "역사적으로 우리 민족이 한반도에 갖히게 된 계기는 고구려 20대 장수왕의 남하정책에서 비롯된다"며 "장수왕은 만주와 요동을 호령하던 대륙을 향한 기개를 남하정책을 펴면서 수도를 국내성에서 평양성으로 옮겼고, 우리 민족이 고구려의 기상을 계승하지 못한 고구려답지 않은 왕이었다"고 평가했다. 이어 "그 후 삼국통일은 한반도 동쪽 귀퉁이에 있던 신라가 이뤘지만 우리 영토는 한반도에 갇히게 됐다"고 덧붙였다. 

남북통일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통일 후의 수도를 평양으로 정하지는 못할지언정 오히려 지금보다도 더 남쪽으로 천도를 하는 것은 불가하다는 논리다. 

행정수도와 관련해 또 다른 견해는 최형두 미래통합당 원내대변인에게서 나왔다. 그는 23일 YTN라디오 '출발 새아침'에 출연해 최근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의 행정수도 이전론을 겨냥해 "세종시 집값만 올렸다"고 혹평했다.

그는 또 "원래 행정수도 이전이라는 것은 노무현 대통령 당시에 국토의 균형 있는 발전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인데, 지금 세종시로 옮겨진 뒤의 과정을 보면 세종시 주변 집값은 올랐을지 모르지만 전국적으로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는 좁혀지지 않고 있고, 지방의 소멸이 걱정되는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지방은 인구도 줄고 있고,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지방이 아예 소멸하고 있다"고까지 지적했다.

일부 정치인들의 이런 철학적·사회적 측면에 근거한 논리도 충분히 받아들일만 하다.

무엇보다 긴 세월동안 축적된 '관습헌법'이 깨어져야만 여당이 밑어붙이려는 행정수도 천도가 가능하다고 여겨진다. 이런 인식을 과연 무엇으로 바꿀 수 있겠느냐는 문제에 여당은 답해야한다. '수도는 곧 서울'이라는 국민적 합의가 아직 유효한지 국민투표에 부치는 방법이 있다지만, 코로나19로 국가재정이 더욱 어려워진 마당에 혈세를 투입하는 것은 곤란하다. 

과연 600여년을 이어온 중차대한 관습을 놓고 어느 특정 시기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판단으로 뒤집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 이런 논리가 받아들여진다면 다음 세대가 그와는 상반된 결정을 내려 또 다시 변경하는 것도 뭐라고 할 수 없다. 다시 되돌리는 과정에서 들어갈 천문학적 금액과 시간은 누가 보상할 것인가.

'행정수도 이전'은 헌재가 지난 2015년과 2019년에 간통죄·낙태죄에 대해 '사회변화를 이유로 각각 위헌 결정을 내린 사건'과는 무게감과 역사적 두께가 현저히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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