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전현건 기자
  • 입력 2020.09.13 05:05

주호영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것"…심상정 "맥락 없고 얄팍…그대로 승인 어렵다"
'터무니 없는 가성비' 비판…경기회복 목적 안 맞고 취약계층 지원 취지 무색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 (사진=더불어민주당)

[뉴스웍스=전현건 기자] 7조8000억원 규모의 4차 추경안 국회 심사를 앞두고 '전 국민 통신비 2만원 지원'이 뇌관으로 떠오르는 모습이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임기 시작 후 야심차게 시작한 첫 정책이 야당과 여론으로부터 '포퓰리즘'이란 혹평을 받으며 첫 행보부터 '리더십'이 흔들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정부가 10일 발표한 '4차 추경예산'에 따르면 정부는 만 13세 이상의 전 국민에게 통신비를 2만원씩 주기로 했다. 지급 대상은 국민의 90%에 해당하는 4640만명에 해당한다. 여기에 들어가는 재원은 9000억원으로, 전체 추경예산 7조8000억원의 12%에 이른다.

더불어민주당은 코로나19에 지친 국민을 위로하는 차원이라고 주장했지만 같은 당 유력 대권주자로 경쟁하고 있는 이재명 경기도 지사는 회의적 반응을 보였다. 또한 야당에서는 맞춤형 선별 지원 원칙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정책적 효과와 실효성에도 의문이 제기되는 이낙연식 '포퓰리즘(대중 영합주의) 정책'이라고 일제히 비판했다.

이로 인해 여당 내부에서는 추경 심사 일정에 차질이 생길까 우려하는 기류도 감지된다.

취임 일주일을 넘긴 이낙연 당 대표 체제 입장에선 오는 18일 4차 추경안이 본회의 문턱에 무난히 넘겨야 안정적으로 당 장악력을 끌어올리고 나아가 대권가도에도 연착륙 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 이번 주에 각 상임위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등을 진행해야 하지만, 야당이 세부 의사 일정 합의에 적극적으로 응하지 않고 있는 모습이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10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국민의힘 홈페이지 캡처)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10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국민의힘)

진보·보수 야당 모두 맹폭…"정부·여당 예산안 승인 어려워"

여당 일각에서는 야당이 통신비를 지렛대로 전체 추경 심사 일정을 늦추려는 것이 아니냐는 근심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11일 원내대책회의에서 "국민의 통신비는 정액제 때문에 늘지 않았다"며 "예결위 심사에서 이를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것"이라고 했다. 추경 심사가 결코 쉽지 않을 것임을 미리 경고한 것이다.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국민의힘 간사인 추경호 의원도 이날  "통신비 2만원을 지급하는 국민 개개인들한테는 자녀들 용돈 수준도 못 미치는 돈을 지급하지만 국가 전체로는 1조원"이라며 "철저히 심사해 한 푼의 세금도 새지 않도록 하겠다"고 했다.

범여권으로 분류되어온 진보야당인 정의당도 통신비 2만원 지급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10일 당 상무위원회의에서 "통신비 2만원 지원은 맥락 없고 얄팍하다"며 비판을 쏟아냈다.

심 대표는 "정부·여당은 코로나 재확산으로 경제적 타격을 집중적으로 받은 업종과 계층을 더 두껍게 지원해야 한다는 취지로 맞춤형 지원을 하겠다고 했다"면서 "두터워야 할 자영업자 지원은 너무 얇고, 여론 무마용 통신비 지원은 너무 얄팍하다"고 말했다.

이어 "13세 이상의 전 국민에게 통신비를 2만원씩 지급하는 예산은 1조원 가까이 된다. 게다가 정부 계획에 따르면 이 돈은 시장에 풀리는 게 아니고 고스란히 통신사에 잠기는 돈"이라며 "받는 사람도 떨떠름하고 1조가 적은 돈이 아닌데 소비 진작, 경제효과도 전혀 없는 이런 예산을 정의당이 그대로 승인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다만 재원을 어디에 쓸지에 대해선 국민의힘과 입장이 갈렸다.

심 대표는 해당 재원은 통신비 대신 원래 정부 방침대로 더 두텁게 지원받아야 할 업종과 계층에 쓰라고 촉구했다.

그는 "정부·여당이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로 인한 시민의 보편적 위기에 조금이라도 부응하고자 한다면 지금이라도 추경을 늘려 전 국민 재난 수당(재난지원금) 지급을 결단해주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 (사진=뉴스웍스 DB)
이재명 경기도지사. (사진=뉴스웍스 DB)

민주당 강행 방침…이재명 지사는 반대

진보야당 마저 비판하는 여론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해당 방침을 밀어붙이겠다는 입장이다.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는 11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이번 추경은 가급적 추석 전에 집행해 도움이 절박한 계층을 지원해야 한다. 야당도 빠른 지원을 국민께 약속하고 있기 때문에 다음 주 추경 처리를 위한 절차에 함께해 줄 것"이라고 밝혔다. 

이낙연 대표는 전날 전국민 통신비 2만 원 지급안이 포함된 추가경정예산 처리 기한을 18일로 못 박은 바 있다.

민주당 코로나19국난극복위원회 공동위원장인 안민석 의원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물론 부족하지만 안 받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나"라며 "국민의 고통과 부담을 조금이라도 나누려는 정부 조치의 일환으로 봐달라"고 밝혔다.

'작은 위로와 정성이라기엔 너무 적고 전체 금액 1조원은 볼 땐 너무 크다'는 지적에도 안 의원은 "그래도 안 받는 것 보단 낫다"고 재차 받아쳤다.

하지만 통신비 2만 원 지급에 대한 우려와 비토의 목소리는 민주당 안에서도 이어졌다.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문제에서 '전국민 지급'을 주장했던 대권 경쟁후보로 여겨지는 이재명 경기지사는 "통신비는 직접 통신회사로 들어가 버리니 승수 효과(정부 지출을 늘릴 경우 지출한 금액보다 많은 수요가 창출되는 현상)가 없다"며 "모두가 빚을 갚기만 하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는 지방채를 내서라도 주민들을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기재부 역시 정부와 다소 다른 목소리를 냈다. 

홍남기 부총리는 "정부로서는 청년층이나 노년층에 우선 지원하는 방안을 제기했지만,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대표 간 간담회에서 최종적으로 13살 이상 국민에게 드리는 걸로 결정됐다"고 말해 기재부의 애초 계획은 아니었음을 밝혔다. 또한 경제적 효과에 대해서도 "가계 부담을 덜어드리는 효과는 있고, 경제적 승수 효과는 더 분석이 필요하다"며 즉답을 피했다.

고용보험 지원 7000억원, 긴급 생계지원 예산 4000억원…통신비보다 낮아

전문가들은 긴급성과 효용성이 떨어지는 선심성 정책은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재벌들이나 최근 코로나로 힘들게 생명을 이어가는 PC방 사장이나 똑같이 '2만원'을 지급받는 것인데 '1조원짜리 돈낭비'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1조원에 달하는 거대 예산이 전국민에 골고루 2만원씩 나눠져 배분되는데 과연 실질적인 효과가 얼마나 있을지 의구심을 자아내고 있다. 2만원이라는 액수가 고소득층에게도 큰 의미가 없는 돈일 뿐만 아니라 저소득층에게도 '형편이 나아졌다'는 느낌을 줄 수 없는 규모이기 때문이다.

4차 추경까지 거행하면서 '재정을 통해 경기를 살린다'라는 재정정책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을 뿐더러 '취약 계층을 지원한다'는 취지에도 맞지 않는 것이다.

그럼에도 여기에 들어간 1조원은 전체 추경예산의 12%를 차지한다. '터무니 없는 가성비'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처방을 해줘야 하는데, 정부가 왜 현장에서 작동하지 않는 정책을 갖고 자꾸 고집을 부리는지 모르겠다"며 "그러니까 정부가 2만원씩 준다고 해도 사람들이 조롱하는 것 아니냐. 왜 소득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1년에 1억원 이상 버는 사람들한테까지 통신비를 지원해줘야 하느냐"고 말했다.

이어 "계속되는 국민들의 불평·불만을 정부가 급하게 수습하려다 보니 이런 우스꽝스러운 대책이 나오는 것"이라며 "정책의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것을 뒤늦게 알았으면 실수를 인정하고 수정하면 되는데, 정당화시키려고 억지를 부리다 보니 계속 늪에 빠지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 국민에게 주는 통신비 대신 저소득층·소상공인 지원, 공공병원·고용보험 확충 등 다른 분야 예산을 늘리는 것이 바람직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올해 구직급여나 고용유지지원금 신청이 크게 늘어 적자도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는 고용보험 지원 추경예산은 통신비 지원금보다 낮은 7000억원이 책정됐다. 또한 저소득층 긴급 생계지원 예산 역시 4000억원으로 통신비 지원금의 반조차 되지 않는다. 

최한수 경북대 경제통상학 교수는 "통신비 지원 금액을 고용유지지원금이나 구직급여의 폭과 지원기간을 더 넓히고 늘리는 데 쓰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어차피 그 돈은 다 통신사로 가는 것이다. 돈 없다 돈 없다 하면서 왜 추경을 헀는지 모르겠다"며 "오히려 그 돈을 영업 제한을 받은 PC방, 카페 등 소상공인이나 취약계층에게 돌아가도록 하는 게 맞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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