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16.05.07 10:42

6일 북한노동당 제7차 당대회가 평양에서 개막했다. 1980년 노동당 제6차대회 이후 36년만이다. 당시 김일성은 ‘사회주의 경제건설의 10대 전망목표’를 발표하면서, 목표를 빠른 기간에 수행하고 당 제7차대회는 1986년 즈음 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건국이후 북한의 당 대회를 보면 짧게는 2년, 길게는 10년 만에 개최되면서 그 주기를 꼭 몇 년에 한번이라고 정기화 하지는 않았지만 6차당대회와 7차당대회사이의 간극은 유난히 길었다.

36년 前 당 대회의 추억

개인적으로 지난 1980년 10대였던 필자는 몇가지 생생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 당 제6차대회 추억 가운데 첫째는 수령의 후계자로 등극한 김정일이 북한 사회전면에 등장했던 것이다.

1970년대 초부터 김정일은 당중앙위원회 선전 선동부를 지도하고 북한의 문화예술을 이끌었고 김일성의 항일투쟁시기 업적을 체계화하는 작업을 진두지휘하면서 그 이름을 알렸다.

하지만 당 제6차대회장에서의 김정일은 김일성의 정식 후계자로 조선노동당의 정점인 조직지도부를 대표하는 조직비서의 직함을 가지고 등장한 것이다.

둘째는 북한사회에 컬러TV가 출현한 것이다. 당시 한덕수로 대표되는 재일본조선인 사회의 조국애를 대변하던 ‘소나무표’(히타치사의 흑색)TV의 북한보급과, 구 소련으로 벌목노동자로 갔던 근로자들이 들여왔던 뗌프(ttemp)표 TV가 북한사회에 확산되어 가던 시점이었다.

동네마다 몇 세대밖에 소유하지 못하고 있던 흑백TV앞에 주민들 대다수가 옹기종기 모여 앉았던 시절 당 대회 참가자들이 선물로 받아온 ‘진달래’표 컬러TV는 북한사회에 하나의 큰 충격이었다.

세 번째는 ‘이밥(쌀밥)에 고깃국에 비단옷, 그리고 기와집’으로 명명되어 왔던 사회주의 이상의 실현을 위한 다짐이다. 이것은 이전부터 김일성의 입을 통해서 자주 나왔던 말이지만 당 제6차대회를 통해서 북한사회전면에 두드러지게 부각되면서 당 제7차대회 전에는 현실이 된다는 논리들이 강하게 부각되었다. 하지만 10년도 아닌 36년이 지난 현 시점에도 이것은 실현되지 못했다. 그리고 2016년 5월6일에야 7차대회가 개막된다.

김일성 사망과 소련 붕괴...
‘고난의 행군’ 은 수령의 '오류입증'
당대회조차 열지 못한 김정일 시대

그동안 7차당대회를 마련하기에 대내외적인 상황이 북한에 그만큼 좋지 않았음을 입증해주는 시간들이 흘러갔다. 사회주의 건설과 인민생활의 기본토대를 마련하기 위한 10대 전망목표는 어려운 경제사정으로 말 그대로 목표에만 머무는 상태가 돼버렸다.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를 대표하는 남북한의 체제경쟁은 1988년 서울올림픽으로 북한이 추구하는 사회주의이념의 패배를 선언한 국제행사의 장이 되어 버렸다.

이후 사회주의 종주국 소련이 무너지고 동구권이 몰락했으며, 중국이 개혁개방을 선언하고 굶주림을 참아오던 ‘평등주의’에서 능력과 기술의 차이를 인정하는 ‘차등주의’의 실험장으로 본격적으로 변모 되었다.

남한의 ‘북방정책’으로 일컬어지는 대(對)공산권외교는 구(舊)소련과 중국 등 2개국과의 수교를 통해 그 정점을 찍었으며 냉전시기 북방삼각체제로 일컬어지던 북한의 동맹국들의 실리정책은 북한을 국제무대에서 완전히 고립시키기에 이르렀다.

1994년 김일성의 사망은 북한유일사상체계의 최정점의 공백을 가져왔고, 이어진 ‘고난의 행군’은 수백만의 아사자를 내면서 ‘수령의 오류’를 입증했다. 경제는 파탄상태에 이르렀고 군을 당과 국가의 핵심으로 내세워 어려운 난국을 타개한다는 ‘선군혁명’은 어떤 것도 제대로 이루지 못한 채 그 빛이 바래갔다. 

6차당대회 무대에 후계자로 등장한 김정일은 북한을 파탄과 궁핍으로 몰아간 채, 급작스런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으며 그의 죽음은 북한체제의 순환구조에 하나의 큰 구멍을 냈다.

후계자 과정 없었던 김정은 체제
권력강화위한 잔악함은 당연한 수순

김정은 체제는 김일성, 김정일 시대에 보편화된 ‘북한 적 특수성’의 많은 면을 닮은 것 같으면서도 닮지 않은 모습들을 보이면서 등장했다. 후계자과정을 거치지 못하고 비교적 급조된 인물이라는 것과 어린나이라는 정치적 배경, 처형으로 상징되는 잔인성으로 인해 세상 사람들을 놀래키면서 이목을 집중시켜 왔다.

하지만 나름대로 어느 정도의 과도기를 거친만큼 대내외 적으로 다른 모습을 보이면서 북한체제를 이끌 장기적인 지도력을 나타내고 싶었을 것이다. 그것을 위해 7차 당 대회가 필요했으며, 공식적인 지도자로서의 명성으로 포장하고 ‘재등극’ 하는 것으로 대내외적인 인정을 받고 싶었을 것이다.

7차 당대회, 체제 정통성 확인 자리일 뿐
경제정책 변화 없을 것

이번 7차당대회를 치루고 북한이 보일 패턴은 대략 다음과 같을 것이라고 본다. 우선 김일성, 김정일 시대의 큰 틀을 유지한 채 내치와 대외관계를 전개할 것이다. 주체사상이나 ‘김일성, 김정일 주의’의 틀은 고집하지 않겠지만 김정은의 영도력아래의 독자적인 ‘주체’적 모습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일각에서 평하고 있는 것처럼 이번 당 대회를 통하여 경제정책과 구조의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것에 머리를 끄덕이고 싶지는 않다. 배급제가 멈추고 ‘시장’으로 대변되는 북한내부의 변화가, 경제정책의 변화를 견인할 것이라는 것에 아직은 의구심이 가는 것이 사실이다. 대남정책의 큰 틀도 변하지 않을 것이며, 대외정책의 변화도 미국과의 평화협상을 큰 전제로 한 것 외에는 특별한 것이 없을 것이다.

北,‘상징과 의미의 거미줄을 칠 뿐’ 
대회장 200여미터 밖에 외신이라니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까지의 북한은 ‘상징과 의미의 거미줄’을 늘이는데 당과 국가의 모든 것을 쏟았으며 거기서 생산된 잉여는 다시 또 다른 ‘상징과 의미의 거미줄’을 치는 것에만 쓰여 왔기 때문이다.

그 거미줄은 다른 것을 생각해 볼 겨를을 가질 수 없었고 전임세대의 꼭 같은 방식에만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다. 폐쇄와 경직의 북한사회의 가장 큰 특징이 그것이다. 오늘 당대회장 외부 200미터밖에 진을 치고 있는 세계의 취재진들을 보면서 역시 변화를 기대하지 않았다. 지난 36년간 북한은 변화를 보일 다른 길을 생각해 보지 않았다.

 

<사진=YTN화면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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