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장진혁 기자
  • 입력 2021.08.24 05:30

美·EU, 탄소국경세 물리면 수출 '대타격'…4대 그룹, 'ESG위원회' 닻 올려

미국 그린빌딩위원회가 제정한 친환경 건축물 인증제도 '리드'의 최고등급인 플래티넘을 획득한 LG전자 북미법인 신사옥 전경. (사진제공=LG전자)
미국 그린빌딩위원회가 제정한 친환경 건축물 인증제도 '리드'의 최고등급인 플래티넘을 획득한 LG전자 북미법인 신사옥 전경. (사진제공=LG전자)

[뉴스웍스=장진혁 기자] 기업 환경이 달라지자, 기업이 겨냥하는 목표도 바뀌었다. 이제는 '이윤 추구'를 넘어 '존경받는 기업'이 되길 원한다. '기업이 얼마나 비재무적 성과를 창출할 수 있느냐'가 중요해진 시대가 됐다.

경영계의 화두는 바로 'ESG 경영'이다. ESG는 비재무적 요소인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의 앞글자를 따 만든 용어다. 기업이 ESG를 추구하겠다는 것은 환경을 생각하고 사회에 공헌하며 지배구조가 투명한 회사를 만들겠다는 의미다. 기존의 사회 공헌과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 지속가능경영이 확대 발전된 개념이다.

ESG는 원래 기업의 비재무적 성과를 판단하는 기준이었으나, 최근 ESG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면서 재무적 가치에도 큰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맥킨지 조사 결과, 지속 가능성 제품 등으로 사업을 재구성하거나 ESG 투자를 함으로써 10~20% 더 높은 수익을 거두는 것으로 분석됐다. 기업들은 ESG 전략을 통해 충전식 배터리 및 신재생에너지 등의 많은 고성장 기회를 얻을 뿐 아니라 5~10% 비용 절감도 달성하고 있다.

글로벌 자산운용사 역시 ESG 기반 투자원칙을 선언하고, ESG에 기반해 주주 의결권도 행사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 자산운용사가 블랙록이다. 이 회사는 지난해 투자 포트폴리오 구성 시 최우선 순위로 기후변화와 지속가능성을 지목하고, 수익의 25% 이상이 석탄에서 발생하는 기업에 대해 투자 중단을 선언했다. 또한 지속가능회계기준위원회와 기후재무정보공개TF 권고사항에 따른 보고서를 제공하지 않는 경영진에 반대 투표를 하겠다고 방침을 밝혔다. ESG 공시 미비를 이유로 스웨덴 볼보의 이사회 의장 연임을 반대한 것이 대표적 예다.

뱅가드도 ESG펀드 구성 시 성인 오락과 술, 담배, 무기, 화석연료와 관련한 기업을 배제했고, UBS도 전 세계 고객에게 투자 1순위로 ESG 투자를 권유했다. UBS는 한국전력에 북베트남, 인도네시아 석탄발전소 사업 참여 철회를 요구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ESG를 따라 '돈'이 움직이고 있다는 얘기다. ESG가 선도 기업의 새로운 경영 화두로 자리잡은 데는 이런 이유가 있다.

◆글로벌 ESG, 환경이 '대세'…美·EU, 탄소국경세 부과 시 韓수출에 '타격'

그렇다면 ESG 영역에서 특히 어떤 요소의 중요도가 높아지고 있을까.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기업의 경영방향과 실적에 가장 빠르게 반응하는 15개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을 대상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ESG의 중요도를 조사한 결과, 환경(E)이 가장 중요하다는 응답이 60.0%로 가장 많았다. 사회(S)과 지배구조(G)가 중요하다는 의견은 각각 26.7%와 13.3%인 것으로 나타났다.

평가지표와 관련해서는 기후변화·탄소배출(26.7%)이 가장 중요하다고 꼽은 데 이어 지배구조(17.8%), 인적자원관리(13.3%), 기업행동(11.1%), 청정기술·재생에너지(11.1%) 순으로 조사됐다. 코로나19 이후 확산되고 있는 글로벌 친환경 트렌드를 반영한 것으로 분석된다.

(자료제공=전경련)
글로벌 기준 ESG 중요도(왼쪽)와 ESG 평가지표 중요도 비교. (자료제공=전경련)

주요 선진국들은 온실가스 감축을 장기간에 걸쳐 추진하고 있다.

유럽연합(EU) 국가인 영국과 프랑스는 1990년부터 2050년까지 60년에 걸쳐 탄소중립을 추진하고 있고, 독일은 1990년부터 2045년까지 55년 동안 탄소중립을 도모하고 있다. 미국은 2007년부터 2050년까지 43년을 소요기간으로 계획하고 있고, 일본은 2013년부터 2050년까지 37년에 걸쳐 탄소중립을 추진하겠다는 방침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2018년을 기준으로 2050년까지 32년간 탄소중립을 달성할 계획이어서 달성 소요 기간이 선진국에 비해 짧은 실정이다. 우리나라는 2030년까지의 중기 감축 목표(2017년 대비 24.4% 감축)를 UN기후변화사무국에 제출했으나, 미흡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석유화학, 정유, 철강 등 에너지집약형 고탄소배출 제조업이 주도하고 있는 우리나라 산업구조도 탄소중립의 주요 애로사항으로 꼽힌다. GDP 중 제조업의 부가가치가 차지하는 비중(2018년)은 우리나라가 26.6%로 영국(8.8%), 프랑스(9.9%), 미국(11.3%) 등 선진국에 비해 휠씬 높은 수준이다.

(자료제공=전경련)
EU 탄소국경제도 주요 내용(왼쪽)과 EU 탄소국경제도 도식도. (자료제공=전경련)

여기에 더해 온실가스 배출 규제가 약한 국가 상품을 강한 국가로 수출할 때 세금을 부과하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탄소국경세)' 도입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다. 즉, 수입품을 대상으로 해당 상품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배출된 탄소량을 따져 비용을 부과하는 것으로, 사실상 추가 관세라 할 수 있다. 이는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와 EU가 주도적으로 추진하는 새로운 관세 형태다.

유럽연합(EU)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는 지난달 14일 세계 최초로 탄소국경세 도입 계획을 제안했다. EU의 이러한 조치는 국내 기업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철강, 알루미늄, 시멘트, 비료 업종에서 수출단가 인하 압박, 수출량 감소 등이 있을 것으로 분석된다.

수입업자가 CBAM 인증서를 구매하기 때문에 수출기업에 직접적인 비용 부담이 발생하지는 않지만, 수입업체가 단가 인하 등을 요구할 수 있어 매출 감소가 우려된다. 또 역내 경쟁 업체 등에 비해 우리나라 기업 제품의 가격경쟁력이 하락하면서 수출 물량의 감소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적용 대상 중 수출 비중이 가장 큰 철강의 경우, CBAM 인증서 비용은 연간 최대 339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EU 수입자 입장에서는 수천억원 규모의 비용이 새로 발생할 뿐만 아니라, 당국에 수입품목 관련 정보를 보고의무도 추가돼 금전적·행정적 부담이 불가피하다.

이에 따라 한국산 제품 수입에도 제동이 걸릴 것으로 관측된다.

◆2030년부터 ESG 공시 '의무'…4대 그룹, 'ESG위원회' 닻 올렸다

올해 들어 금융당국이 ESG 경영정보 공시 범위를 단계적으로 확대한다는 방침을 발표하자, 이에 발맞춰 기업들도 ESG 도입에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1월 오는 2030년부터 모든 코스피 상장사에 ESG 정보를 반드시 공시하도록 하는 내용의 '기업공시제도 종합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일단 올해부터 2025년까지 '지속가능경영 보고서' 자율 공시를 활성화하도록 한다. 2025년부터 2030년까지는 2조원 이상의 코스피 상장사에, 2030년부터 전체 코스피 상장사에 대해 지속경영가능보고서 공시를 의무화한다. ESG가 일시적 유행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국내 기업들은 이사회 내 ESG위원회를 설치하고 ESG 전담 조직을 신설하는데 몰두하고 있다. 법령상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이사회 내 ESG위원회를 설치하는 것은 이를 글로벌 수준의 ESG 경영을 위한 전제조건이자 제도적 장치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각 사의 ESG위원회는 ESG 경영 관련 최고 심의기구로서 환경, 안전, 사회적 책임(공정·복지), 고객 및 주주가치, 지배구조 등 ESG 모든 분야의 기본 정책과 전략을 수립하고 중장기 목표 등을 심의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전경련에 따르면, 30대 그룹 중 이사회 내 16개 그룹인 ▲삼성 ▲현대자동차 ▲SK ▲LG ▲포스코 ▲롯데 ▲한화 ▲현대중공업 ▲GS ▲신세계 ▲KT ▲CJ ▲카카오 ▲한국투자금융 ▲네이버 ▲한진 등 51개 기업이 ESG위원회를 설치한 것으로 파악된다. 

ESG위원회의 의무와 역할을 명시한 기업은 51개사 중 39개사였다. 공통적으로 명시한 권한은 'ESG 전략계획 수립'과 '주주권익 제고 및 보호'였다.

차별화된 사항을 규정한 기업들도 눈에 띈다. 한화·포스코는 환경을 강조했으며, 현대중공업·카카오는 회사 내부의 ESG 역량 강화를 규정했다. SK그룹의 경우 위원회가 ESG 경영 뿐만 아니라 그룹 전반의 주요 경영전략 사항도 검토할 수 있다고 명시해 ESG위원회 역할에 힘을 실은 것으로 분석된다.​

김봉만 전경련 국제협력실장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 경영환경이 불확실해지면서 기업의 재무적 성과 외에도 환경, 사회, 지배구조 등의 비재무적 성과에도 시장은 크게 반응하면서 글로벌 ESG 기조가 확산되고 있다"면서 "이러한 기조는 글로벌 무대에서 활동하고 있는 우리 기업들은 물론, 이제 내수 기업의 활동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어 이에 대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글로벌 시장에서는 환경(E)의 중요성이 큰 반면, 국내에서는 상대적으로 사회(S)와 지배구조(G)를 강조하는 경향이 있어, 국내 기업은 안팎으로 부담이 커질 수 있다"면서 "ESG 대응에 있어 국내외를 나눌 필요가 없는 만큼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일관되고 투명한 평가체계의 확립이 중요하며, ESG 경영 확산을 위해 잘하는 기업에 대한 인센티브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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