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장진혁 기자
  • 입력 2021.08.09 20:01

미국 반도체 공장 후보지 확정·모바일사업 강화 등 현안 산적 …경총 "최대한 행정적 배려 필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제공=인터넷언론인연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제공=인터넷언론인연대)

[뉴스웍스=장진혁 기자] 국정농단 사건으로 복역 중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광복절을 맞아 이달 13일 가석방으로 풀려난다. 아직 불법승계 등 남아있는 재판이 있지만, 경제계는 이 부회장이 풀려나면서 삼성그룹의 불확실성이 상당 부분 감쇄하게 됐다며 크게 환영하는 분위기다. 특히 세계 반도체 패권 경쟁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이 부회장이 복귀하면 삼성이 총수 공백을 해소하고 대규모 투자와 인수합병(M&A)에 속도를 낼 것이라는 기대감도 나오고 있다.

법무부 가석방심사위원회는 9일 오후 과천 법무부 청사에서 4시간 30분에 걸쳐 비공개회의를 연 뒤 이 부회장의 가석방을 허가했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가석방심사위원회가 종료된 직후 브리핑을 열고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한 국가적 경제상황과 글로벌 경제환경에 대한 고려차원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대상에 포함됐다"고 밝혔다. 이어 "이 부회장에 대한 가석방은 사회의 감정과 수용생활 태도 등 다양한 요인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됐다"고 설명했다.

가석방심사위원회는 이날 오후 2시부터 6시 30분까지 이 부회장을 포함한 가석방 심사 대상자 명단을 놓고 심사를 진행했다.

8·15 가석방은 오는 13일 이뤄진다. 이번 가석방 결정에 따라, 이 부회장은 재수감된 지 207일 만에 다시 석방되게 됐다. 그간 서울구치소에서 복역해왔던 이 부회장은 이미 지난달 말로 가석방 기준 중 하나인 형기 60%를 채운 상황이었고, 모범수로도 분류돼 서울구치소의 예비 심사를 통과했다. 

특히 법무부가 적법한 절차에 따라 가석방 심사에 착수하는 만큼 이 부회장을 의도적으로 제외한다면 오히려 역차별이라는 논란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도 적극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국민 10명 중 7명꼴로 이 부회장의 8·15 광복절 가석방을 찬성한다는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의 여론조사 결과도 이번 심의에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이번 가석방은 적법한 절차는 물론, 국민 의견까지 모두 고려한 결정인 것으로 풀이된다.

◆경제계 일제 환영…'사면' 아닌 '가석방' 아쉬움도 

이 부회장의 가석방에 대해 경제계는 일제히 환영의 뜻을 표하며 삼성이 국가 경제 발전에 적극적으로 기여해 줄 것을 주문했다. 그간 건의해 온 사면이 아니라 가석방이라는 점에서 다소 아쉬움을 피력하고 있지만, 삼성의 '총수 부재'에 따른 리스크가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보는 모습이다.

그간 경제계를 대표하는 경총·대한상의·전경련 등 국내 주요 경제단체들은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핵심 산업 등에서 과감한 의사 결정 등을 내릴 수 있도록 이 부회장에게 운신 폭을 열어줘야 한다는 입장을 줄곧 피력해왔다. 

이날 대한상공회의소는 우태희 상근부회장 명의의 논평을 내고 "기업의 변화와 결정 속도가 중요해진 상황에서 이번 이 부회장 가석방 결정으로 자유로운 경제 활동을 허용해 준 점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우 부회장은 "이 부회장이 사면이 아닌 가석방 방식으로 기업 경영에 복귀하게 된 점은 아쉽다"며 "앞으로 해외 파트너 미팅, 글로벌 현장 방문 등 경영 활동 관련 규제를 관계 부처가 유연하게 적용해달라"고 덧붙였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이 부회장의 자유로운 경영활동을 허용한 법무부의 결정을 적극 환영한다"면서 "이번 조치는 우리 경제의 위기 극복과 관련한 삼성의 견인차 역할을 바라는 국민적 요구가 반영된 만큼 삼성은 이러한 기대에 부응해 투자와 일자리 창출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이 부회장에 대한 가석방 결정은 경영계 입장과 국민적 공감대가 받아들여진 것으로 매우 다행이지만, 가석방은 취업제한, 해외출장 제약 등의 어려움이 있다"면서 "이 부회장이 경영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최대한의 행정적 배려가 필요하다"고 요청하기도 했다.

◆삼성, 대규모 투자와 M&A 기대감 커져

이재용 부회장의 가석방은 그간 지체되었던 삼성의 주요 사업에서 대규모 투자나 인수합병(M&A)에 나설 수 있다는 기대감을 불러오고 있다.

현재 삼성은 반도체, 스마트폰, 이차전지 등에서 굴곡 없이 안정된 사업을 진행하고 있으나, 글로벌 경쟁자들의 거센 도전에 쉽지 않은 싸움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경제계는 이를 극복하고 견고한 수출을 위해서는 초격차를 낼 수 있는 대규모 투자와 M&A가 필수적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삼성은 이 부회장이 자리를 비운 사이, 별다른 M&A를 진행하지 못했으며, 대규모 투자도 지연되는 모습을 보여왔다.

우선 반도체의 경우, 대만 TSMC와의 파운드리(수탁생산) 경쟁에서 격차가 점차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파운드리에 재진출을 선언한 미국 인텔이 2024년 2나노급 '20A' 반도체를 양산해 삼성전자와 TSMC를 추월하겠다고 야심찬 포부를 밝혀 삼성전자에게 위협이 되고 있다.

삼성전자 역시 올해 2분기 실적을 공개하며 "올해 하반기 중으로 4나노 1세대 반도체를 양산하고, 내년에는 3나노 1세대 제품을 상용화할 것"이라고 밝히며 로드맵을 공개했지만, 초미세공정의 경쟁에서 앞서 나가기 위해서는 대규모 투자가 수반되어야 한다.

특히 삼성전자는 굵직한 반도체 투자 계획 발표가 미뤄진 상황이다. 삼성은 지난 5월 한미정상회담 이후 미국에 170억달러(약 20조원) 규모의 반도체 공장 투자 계획을 발표했으나, 후보지도 아직 확정하지 못했다. 이에 경제계는 이 부회장의 가석방이 지체되었던 투자 결정에 한층 속도를 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그간 경제계에서는 회사 장기 미래를 좌우하는 굵직한 투자는 총수의 결단이 필요한 사안이어서 이 부회장이 수감된 상황에서는 쉽지 않다는 지적이 많았다.

또한 이 부회장은 글로벌 1위가 위태로운 모바일(스마트폰) 사업의 궤도 정상화에 적극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6월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 샤오미가 삼성전자와 애플을 제치고 사상 처음 월간 판매 1위에 등극한 것은 상징적인 사건이다. 샤오미는 17.1%의 점유율로 15.7%의 삼성전자와 14.3%의 애플을 제쳤다. 지난 10여년간 애플과의 프리미엄 시장 경쟁에서 샤오미라는 새로운 복병이 나온 셈이다. 이는 화웨이의 부진을 틈탄 성장이지만, 시장의 주도권을 중가폰 업체에 넘길 수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전략을 대폭 수정해야 할 처지에 몰린 것으로 해석된다.

이 밖에 삼성SDI의 미국 배터리 공장 신설 등, 친환경차 급부상에 따른 주요 업체들의 이차전지 증설경쟁에서 본격 가세할 것으로도 기대된다.

미래 신성장 사업을 위한 대규모 M&A도 관심사다. 삼성전자는 2016년 11월 미국 자동차 전장업체 하만을 인수한 이후 대규모 M&A를 진행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 삼성전자는 지난달 29일 컨퍼런스콜에서 순현금 100조원 이상을 바탕으로 3년 이내에 의미 있는 인수합병을 진행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인공지능(AI), 5세대 이동통신(5G), 전장 등 이미 투자 후보자는 가려낸 상황에서 과연 어느 곳을 낙점할 수 있을지 결단이 필요한 순간이다.

◆취업 제한 규정에 반쪽 경영 불가피…"취업 제한 풀어야"

하지만, 이재용 부회장은 가석방으로 풀려나더라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5년간 취업이 제한된 상태다. 따라서 경영 일선에 복귀하기 위해선 법무부 특정경제사범관리위원회 심의를 거쳐 법무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 때문에 정상적인 경영 참여에는 상당한 제약이 뒤따를 전망이다.

또한  이 부회장은 현재 수감건 외에도 진행 중인 수사·재판이 있어 재차 수감될 수 있다는 점도 변수로 꼽힌다. 이 부회장은 ‘삼성 경영권 승계 의혹’으로 재판 중이고 ‘프로포폴 투약 혐의’도 기소된 상황이다.

경제계가 우려하는 것도 바로 그 지점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가석방은 사면과 달리 정상적인 경영 활동을 하기에 한계가 있다"면서 "박범계 장관이 가석방 적격의 이유로 '글로벌 경제상황'을 고려했다고 언급한 것처럼, 이번 가석방이 의미가 있으려면 이 부회장이 경영에 전념할 수 있도록 취업 제한을 풀어주는 후속 행정 조치가 반드시 따라야만 한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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