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원성훈 기자
  • 입력 2021.11.16 18:54
고군산군도 중의 한 섬인 대장도의 모습. 산기슭의 펜션이 아름답다. (사진=원성훈 기자)
고군산군도 중의 한 섬인 대장도의 모습. 산기슭의 펜션들이 아름답다. (사진=원성훈 기자)

[뉴스웍스=원성훈 기자] 고즈넉한 늦가울 속으로 푹 빠져들고 싶은 심정이 됐을 때 전라북도 군산을 찾았다. 저절로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늦가을, 섬, 바다, 무지개의 아름다움은 기본으로 하고 이에 더해 '과거로의 시간여행'까지 모두 만끽하고 돌아온 그야말로 갈색의 추억여행이었다. 

지난 11월 11일부터 13일까지 2박 3일 간 전라북도 군산시와 장수군 그리고 무주군을 돌아보고 왔다. 이번 편은 이중에서 첫 번째인 '군산 여행기'다. 

가까이 다가서서 바라 본 대장도. (사진=원성훈 기자)
가까이 다가서서 바라 본 대장도. (사진=원성훈 기자)

◆'그섬에 가고싶다' - 대장도 

63개 섬이 별처럼 뿌려져 있는 전북 군산의 고군산군도의 풍광은 그야말로 절경이었다. 그중에서도 대장도의 대장봉에서 내려다 본 바다와 섬의 장관은 오랫동안 뇌리를 떠나지 않을 것 같다. 비가 오다가 말다가 날이 흐렸다가 개였다가 하면서 바람이 심하게 부는 가운데, 걸어서 장자대교를 건넜다. 장자대교를 건너면서 바라본 대장봉은 정말이지 한폭의 그림 그 자체다. 산기슭에 위치한 아름다운 펜션들은 마치 지중해의 어느 도시를 바라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대장교에서 대장도로 들어서면 멀리서 봤을 때보다도 훨씬 더 아름다운 모습의 '그섬에 가고싶다'라는 이름의 펜션이 눈에 들어온다. 이국적인 구조의 이 펜션을 뒤로 하고 대장봉으로 오른다. 대장봉의 중간쯤에는 서울로 떠난 지아비를 기다리다 돌이 됐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이색적인 모습의 할매바위가 솟아 있다. 고군산군도에 자리 잡은 숱한 섬들과 새만금방조제까지 조망할 수 있다는 대장봉까지 곧바로 가기로 했다. 

대장봉의 중간쯤에는 서울로 떠난 지아비를 기다리다 돌이 됐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이색적인 모습의 할매바위가 솟아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대장봉의 중간쯤에는 서울로 떠난 지아비를 기다리다 돌이 됐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이색적인 모습의 할매바위가 솟아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본격 산행의 초입은 마치 나무와 풀로 된 작은 터널처럼 보였다. 여기를 통과해 거의 80도 정도의 계단을 오르게 되는데 숨이 턱에까지 차오른다. 너무 힘들어 중간에 등반을 포기할 생각도 잠시했지만 정상을 밟은 자만이 느낄 수 있는 희열을 생각하며 한걸음씩 한걸음씩 발길을 옮긴다. 정상 부근에 데크를 잘 만들어 놓은 공간이 있어 이곳이 정상인가 했는데 눈을 들어 위를 보니 정상에 이 같은 데크가 또 보였다. 마지막 힘을 내어 정상에 올라선 순간 고군산군도가 눈 앞에 쫘악 펼쳐지면서 가을 햇살이 따갑게 얼굴을 감싸고 흘렀다. 그저 아름답다고 표현하기에는 부족해도 너무 부족해 눈물나게 감동스러운 그 풍경속에서 한없이 작은 내 모습을 되돌아보게 된다. 

새만금 방조제를 건너면서 바라 본 무지개의 모습. (사진=원성훈 기자)
새만금 방조제를 건너면서 바라 본 무지개의 모습. (사진=원성훈 기자)

고군산군도를 떠나 군산 시내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새만금 방조제 쯤 이르렀을 때 무지개가 우리를 반겼다. 서울에서 어쩌다가 보는 무지개와는 달리 7가지 색상이 선명한 무지개를 바라보면서 바다위를 달리면서 그동안 도시생활에서 받았던 모든 스트레스를 날려버렸다. 

은파호수공원의 물빛다리의 아름다운 불빛이 호수에 비쳐지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은파호수공원의 물빛다리의 아름다운 불빛이 호수에 비쳐지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빛의 향연'속에 멈춰져 있는듯한 시간 - 은파호수공원

야간에는 군산시내에 위치한 은파호수공원의 야경을 바라보며 호수 둘레길을 걸으며 산책했다. 형형색색으로 물드는 물빛다리 조명이 하루의 고단함을 씻어준다. 은파 호수공원은 본래는 농업용 저수지였지만 지금은 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산책로와 야외음악당, 수변무대, 연꽃자생지, 바닥분수 등이 어우러져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해줬다. 그야말로 '빛의 향연'속에 시간이 멈춰져 있는 듯한 여유로움을 느꼈다. 알싸하게 맑은 공기속에서 머리 속이 시원하게 정리되는 느낌이 제대로다. 

세월의 두께가 현저히 느껴지는 다보탑을 닮은 발산리 오층석탑(보물 제276호). (사진=원성훈 기자)
세월의 두께가 현저히 느껴지는 다보탑을 닮은 발산리 오층석탑(보물 제276호). (사진=원성훈 기자)

◆'왠지 모를 처연함'에 고개 숙이다 - '발산리 보물'과 '일본인 농장 창고'

아주 약하게 흩날리는 비가 내리던 아침, 우리는 군산 개정면에 있는 발산초등학교를 찾았다. 일제 강점기의 아픈 기억과 자라나는 우리의 어린 동심이 묘하게 어우러진 바로 그 공간을 찾은 것이다. 노랑연두에 가까운 색으로 칠해진 초등학교는 전교생이 불과 40여명이라고 한다. 초등학교 공간과 구분지어놓은 연두색 철조망으로 구분 지어진 '발산리 보물' 공간에는 세월의 두께가 현저히 느껴지는 다보탑을 닮은 발산리 오층석탑(보물 제276호)을 비롯해 발산리 석등(보물 234호)과 육각부도(도지정 문화재자료 185호) 등이 '뚝뚝 떨어지는 노란 은행잎을 비롯한 단풍들'과 함께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군산지역의 일본인 대지주가 귀중품을 보관하기 위해 철근 콘크리트조로 견고하게 지어놓은 '구(舊)일본인 농장 창고'. (사진=원성훈 기자)
군산지역의 일본인 대지주가 귀중품을 보관하기 위해 철근 콘크리트조로 견고하게 지어놓은 '구(舊)일본인 농장 창고'. (사진=원성훈 기자)

또한 이곳에서만 만날 수 있는 특이한 창고가 눈길을 끈다. 바로 '구(舊)일본인 농장 창고'다. 이 건물은 군산지역의 일본인 대지주가 귀중품을 보관하기 위해 철근 콘크리트조로 견고하게 지었다. 입구의 문부터 예사롭지 않다. 아주 두꺼운 철제 금고문이다. 창문에는 이중 잠금장치가 돼 있다. 이런 형태 때문에 한국전쟁때에는 군산에 주둔한 인민군들이 옥구지역 우익인사들을 감금하는데 사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현금과 서류뿐만 아니라 일본인 대지주가 불법 수집한 수많은 우리의 서화와 도자기 등 골동품을 보관하던 건물에서 일본인들이 일제 강점기의 수탈의 역사를 가감없이 확인할 수 있었다.

'발산리 보물'들과 연두색 철제 담장 하나 사이로 구분되는 발산초등학교. 노랑연두에 가까운 색으로 칠해놓은 초등학교 건물과 늦가을의 정취가 교묘하게도 잘 어우러진다. (사진=원성훈 기자)
'발산리 보물'들과 연두색 철제 담장 하나 사이로 구분되는 발산초등학교. 노랑연두에 가까운 색으로 칠해놓은 초등학교 건물과 늦가을의 정취가 교묘하게도 잘 어우러진다. (사진=원성훈 기자)

바로 이곳으로 들어갔다. 마루 바닥에 지하로 통하는 문을 들어올렸더니 마치 영화속에서나 나올 법한 지하로 통하는 계단이 나왔다. 일제강점기 당시, 상당한 정도의 금괴를 저장할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층으로 올라가서 격자로 된 녹슨 철제 창문을 열었다. 창밖으로는 노란 은행잎이 비에 젖어 떨어지고 있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고 왠지 모를 처연함에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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