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안지해 기자
  • 입력 2021.12.17 17:22

"선진국들과 달리 하청근로자에 대한 모든 안전관리 책임 원청에게 물어"

각국의 안전·보건조치 위반 및 사망자 발생 시 징역(금고)형 비교. (자료제공=한국경영자총협회)

[뉴스웍스=안지해 기자] 한국경영자총협회는 한달여 앞으로 다가온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전 세계에서 최고경영자(CEO)를 형사처벌하는 국가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며 과도한 사업주 처벌에 대해 우려했다. 이어 처벌중심의 대응은 산재 감소 효과가 미흡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총은 주요 해외 국가와의 비교를 통해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실효적이고 합리적인 산업안전정책과 법제도 개선방향을 모색할 목적으로 '산업안전 관련 사업주 처벌 국제 비교 및 시사점'을 16일 발표했다. 

조사대상 국가로는 안전선진국으로 알려진 유럽·아시아·북미 등 12개 국가이다. 조사내용은 ▲산업안전 관련 각국의 '산업안전보건법', '형법'과 '노동법'상 사업주 처벌규정(법정형) ▲한국의 '중대재해처벌법'과 유사한 법제를 가진 국가들(영국·호주·캐나다)의 실태 파악 ▲처벌강화 입법에 따른 산재감소 효과 등이다.

안전·보건조치 의무 위반한 경우에 처벌 수위는 징역형을 두고 있는 국가들은 최대가 1년이며, 금전벌(벌금 또는 과태료)은 최대 3400만원으로 한국(5년 이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 벌금)보다 모두 낮았다. 

특히, 독일과 프랑스 등은 징역형 규정이 없었고 미국과 독일처럼 벌금 대신 과태료를 부과하는 국가도 있었다.

안전·보건조치 의무 위반으로 근로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사업주에 대한 처벌수위도 징역형(금고)은 3년 이하, 벌금은 대체로 1천만원 내외로 한국보다 매우 낮았다. 또 프랑스와 일본, 오스트리아는 '산업안전보건법령'이 아닌 '형법'으로만 책임(업무상과실치사죄)를 묻고 있었다. 

반면, 우리나라의 중대재해처벌법은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 산안법은 7년 이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 벌금을 규정해 조사 대상 국가에서 가장 높았다.

(자료제공=한국경영자총협회)
한국과 미국의 사망사고 반복 발생 시 가중처벌수위 비교. (자료제공=한국경영자총협회)

사망사고를 반복해서 일으킨 사업주에 대해 가중처벌 규정을 두고 있는 국가는 한국과 미국뿐이다. 우리나라는 10년6개월 이하 징역 또는 1억5000만원 이하 벌금에 비해 미국은 가중 처벌수위가 '징역형 1년 이하 또는 벌금 2만달러(2300만원) 이하'다. 

또한, 영국과 독일, 미국, 일본 등 주요 선진국들은 원·하청 간의 역할과 책임을 구분해 안전관리 의무를 부여하나, 우리나라는 하청근로자에 대한 모든 안전관리 책임을 원청에게 전적으로 묻고 있다.

영국의 '기업과실치사법'은 사망자 발생 시 법인과 단체인 기업에 대한 벌금형만 규정하고 있다. 사업주(개인사업주)·경영책임자(법인의 대표이사) 형사처벌을 비롯해 법인 처벌, 안전보건교육 수강(20시간 이내), 징벌적 손해배상(5배 이내) 등 4중 제재로 이뤄진다.

호주와 캐나다는 '기업과실치사법' 제정국가로 알려져 있으나, 별도의 특벌법을 제정하지 않고, 우리나라와 같은 '산안법'과 '형법'을 통해 산재사망 기업과 사업주를 처벌하고 있다.

경총은 처벌수위 강화 입법과 사망자 감소와의 상관관계에 대해 처벌강화 입법이 산재감소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었는지 확인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영국과 싱가포르는 산업안전정책을 기업의 자율관리 방식으로 전환 후 사고사망자 발생률이 줄었고, 대부분의 선진국가들이 처벌보다 예방활동에 집중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조사대상 국가 중 안전·보건 조치 위반, 사망자 발생 시(반복 사망 포함) 사업주 처벌 수위(법정형)가 가장 높았다. 하청근로자에 대한 원청의 책임범위도 주요 선진국들과 다른 차이점을 보였다. 

경총은 사고사망자를 효과적으로 낮추고 있는 국가들과 달리 한국은 너무 처벌 중심으로만 대응하고 있어 산재감소 효과가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이동근 경총 부회장은 "한국은 사업주 처벌(법정형)에 있어서 만큼은 전 세계의 어느 국가보다도 강한 법률체계를 갖추고 있다"며 "사고사망자를 선진국 수준으로 줄이기 위해서는 한국도 과도한 처벌수위를 합리적으로 조정하고, 예방중심의 산업안전정책 수립과 사업추진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대통령 직속 사회적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는 17일 경사노위 산하에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발족했다. 이번 신설 위원회에는 노동계 3인, 경영계 3인, 정부 3인, 공익위원 5인 등 모두 15인의 노·사·정 전문가로 구성됐다. 주요 논의 의제는 ▲산재예방사업 효율성 제고 방안 ▲중대재해 사고원인조사 강화 방안 ▲기업의 법 준수환경 조성 및 법·제도 개선 방안 ▲안전문화 조성을 위한 노사참여 확대 방안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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