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원성훈 기자
  • 입력 2022.03.22 16:20
원성훈 기자.
원성훈 기자.

[뉴스웍스=원성훈 기자] "이번 대선은 참으로 이상하다. 과거에는 '정치적 허니문 기간'을 6개월 정도는 허용해줬던 게 관례인데, 이번에는 6시간도 보장해주지 않는 것 같다."

'깨어있는시민연대당(깨시연)'의 이민구 대표가 최근에 기자와 만나서 한 말이다.

이어 이 대표는 "'이재명의 민주당'측은 대선 패배 직후 6시간 동안만 대선 패배의 충격으로 기절해있다가 그 직후 깨어나자마자 곧바로 첫 공격으로 윤 후보 측에서 이번 대선에서 부정선거를 저질렀다고 공격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윤 후보 측에서는 이번 대선에서 부실선거를 얘기했을 뿐인데, 이 후보 측 지지자들은 부정선거를 얘기하고 있으니 이게 바로 적반하장격 아니냐"고 개탄했다.

이 같은 진단을 내린 배경에 대해 이 대표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탄생했으면 그가 잘할 수 있도록 지켜보면서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은 도와주면서 그렇게 가야 하는 게 정상"이라며 "대통령 집무실 이전 문제부터 시작해서 여성가족부의 폐지 문제는 물론이고 기타 사소한 사항들까지 사사건건 물고 늘어지면서 윤 당선인을 흔들어 대는데 이것은 결코 정상적인 모습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일반적으로 자유민주주의 선진국에서는 민의에 의해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대통령 당선인의 장도를 축하해주고 그가 꿈꾸던 정치를 실제로 펼쳐보라고 여야 정치권이나 언론은 '정치적 허니문 기간'을 인정해 주는 것이 관행이다. 

일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해야 하는 시간마저 빼앗긴다면 어떻게 자신이 구상한 국정운영 방안을 수립하고 소신있게 정책을 펼쳐나갈 수 있겠는가. 대통령 취임은커녕 당선인 시절부터 '탄핵' 운운하는 것은 당선인을 모욕하는 것이다. 직접선거를 통해 국정운영의 총책임자로 선출하면서 정권교체를 이뤄낸 국민들에 대한 도전으로까지 볼 수 있다. 

윤 당선인이 대통령 후보 시절부터 '공약'으로 내세운 것이 '대통령 집무실 이전'과 '여성가족부 폐지'였음을 감안하면 오히려 실행하지 않는 것이 문제가 될지언정 이를 속도감 있게 실천에 옮기는 것은 국민에 대한 예의이다. 이런 것을 갖고 적극 협조하기는 커녕 이를 빌미삼아 대통령 당선인을 흔들어대는 행위에 수긍하기 어렵다. 

윤 당선인이 지난 20일 자신이 직접 브리핑한 '대통령 집무실 이전' 청사진에 대해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설령 자신들의 뜻과 다르더라도 일단 돕고 볼 일이라는 생각이다. 

윤 당선인이 예산집행권, 국군통수권, 정부지휘권 등을 행사하려면 문 대통령의 동의는 필수적이다. 문 대통령이 협조해주지 않는다면 윤 당선인이 대통령으로 취임하기 전까지는 대통령 집무실 이전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런 가운데,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지난 21일 개최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확대관계장관회의에서 "새 정부 출범까지 얼마 남지 않은 촉박한 시일 안에 국방부, 합참, 대통령 집무실과 비서실 등 보좌기구, 경호처 등을 이전한다는 계획은 무리한 면이 있어 보인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앞서 전날 윤 당선인이 청와대의 용산 이전 계획을 직접 발표한 지 하루 만에 나온 정면 반발로 주목을 끌었다. 더군다나 이날 NSC 회의는 문 대통령이 모처럼 만에 직접 주재했다.

이 같은 발언은 곧바로 문 대통령이 임기 말까지 국군통수권과 정부지휘권을 활용해 군과 국방부를 계속 통제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이에 더해 청와대는 윤 당선인이 요구한 496억원에 달하는 '대통령 집무실 이전을 위한 예비비 편성'에 대해서도 "22일 국무회의에 예비비 관련 안건 상정은 어려울 것"이라며 거부했다.

사태가 이에 이르자,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은 21일 성명을 통해 "군사대비태세 유지의 핵심은 합동참모본부이기 때문에 대통령 집무실을 국방부로 이전해도 안보 공백은 없다"며 "있지도 않은 안보 공백을 언급하며 새 정부 추진 정책을 방해하는 건 대선 불복"이라고 주장했다.

윤 당선인의 핵심 측근인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대통령의 안전이 최고의 안보인데, 남북 대치 상황에서 대통령이 갈 곳도 없게 만드는 처사가 곧 대선 불복"이라며 "문재인 정부가 청와대 이전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 몽니를 부리는 격"이라고 비판했다. 서로 마주보며 달려오는 열차가 충돌하는 양상이 정치권에서 벌어진 것이다.

하지만 청와대의 공식적인 '입'에 해당하는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의 현실 인식은 완전히 달랐다. 그는 22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대통령 집무실 이전 계획'에 대해서는 전혀 반대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어 임기 마지막날인 5월 9일 자정까지는 문 대통령이 안보문제를 잘 해나갈 수 있지만 그 시간 이후에 혹여 잠시만이라도 발생할지 모를 안보 공백의 문제에 대한 우려를 밝힌 것이라는 취지로 말했다. 그러면서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한 문 대통령 측과 윤 당선인 측의 대화와 타협이 시급히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이와는 별개로 청와대 측은 지난 20일 윤 당선인이 '대통령 집무실의 용산 이전'을 직접 발표하기에 앞서 청와대 측과의 사전 협의가 없었던 것에 대한 서운함을 에둘러 표현하기도 했다. 청와대 측의 주장을 요약하자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하려면 사전 협의까지는 몰라도 적어도 청와대에는 사전에 알려줬어야 되는 것 아니냐는 섭섭함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읽혀진다. 한마디로 인수위 측의 불통도 심하다는 게 청와대 측의 주장인 셈이다. 

하지만 인수위 측에서는 이와는 상반된 견해가 나온다. 일각에서 제기하는 '대통령 집무실 이전의 속도조절론'에 응하다가는 결국 원래 구상대로 이전하는 게 결국에는 불가능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크게 작동한 것으로 관측된다. 이에 더해, 자꾸만 '철통같은 경호 혹은 안보태세'에 집중하다 보면 결국 '이전'이 물건너가게 될 것이라는 인식도 감지된다. 당선인에 대한 경호가 느슨해진다손 치더라도 감당 가능한 범위에서 '약한 경호' 자체를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고 1초의 공백도 없는 안보태세라는 것도 사실은 명분일 뿐이지 대통령 당선인의 집무실이 외부에 있더라도 실제로 문제될 것은 없다고 보는 분위기이다. 

여야 정치권은 물론이고 양측 지지자들의 극단적 대립 속에는 '국방부 조직에 대한 몰이해'도 한몫한 듯하다. 합참을 남태령으로 이전하는 비용이 총 600억원에서 최대 1200억원으로 추산된다고 하는 것은 남태령 수도방위사령부에는 지휘통제 시설이 이미 갖춰져 있기 때문에 합참이 남태령으로 이전되더라도 행정 업무 공간만 만들면 된다는 뜻이다. 국방부의 대부분이 행정 조직으로 이뤄져 있다는 것이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빚어진 오해이기도 하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4성 장군 출신의 김병주 민주당 의원이 지난 21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대통령 집무실의 국방부 청사로의 이전에 대해 안보공백을 우려한 것까지는 당연한 것이지만 그가 국방부 건물 짓는 비용 정도만 해도 1조1000억 정도이고 경계 울타리 방호 시스템을 해야 되고, 여러 가지를 더하면 천문학적 숫자가 들 것이라고 주장한 것은 상당히 과도한 주장으로 평가된다. 

이런 가운데, '대통령 집무실 이전'과 합참의 이전 그리고 여성가족부 폐지 문제 등을 둘러싸고 청와대와 인수위 양 측은 물론 그 지지자들이 극단적으로 갈려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것은 본질적으로는 6·1 지방선거가 임박했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적잖다. 

민주당은 지난해 4·7 서울·부산시장 재보궐 선거에 이어 올해 대선에서 패배했다. 오는 6월 1일 지방선거에서도 또 국민의힘에게 진다면 3연패에 빠지게되는 것이다. 만일 민주당이 지방선거에서 진뒤 윤 대통령이 국정을 잘 이끈다면 2년 후의 총선에서도 이기기 쉽지 않을 수 있다. 민주당 입장에서 이같은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 윤 당선인과의 대립전선을 형성해 지지세력 결집을 도모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런 흐름 속에서 퇴임을 앞둔 문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 '반 윤석열 라인' 형성을 돕고 있는 셈이다. 

이 같은 현실을 감안한다 할지라도 '정치적 허니문'은 그동안의 관례대로 최소한 6개월 정도는 보장되는 게 바람직해 보인다. 정치적으로 상반되는 위치에 있는 세력과의 경쟁에서 승리하려면 국민들에게 선택받을 수 있는 정책을 개발, 실행에 옮기면서 성과를 검증받는 것이 올바른 자세다. 그렇지 않고 상대편이 일단 국민에게 선택받아서 뭔가를 시작하려는 상태에서 섣부르게 발목잡기를 하고 흠집내기를 시도하려 한다면 오히려 역효과만 내는 '자충수'로 되돌아올 수 있다.

민주당과 그 지지자들이 다시 집권하기를 진정으로 바란다면 좀더 거시적인 안목으로 오히려 확실하게 '정치적 허니문 기간'을 윤 당선인 측에게 보장해주고 자신들은 내실을 키워나가면서 힘을 비축해서 선거에 임하는 것이 보다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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