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원성훈 기자
  • 입력 2022.07.20 14:45

수원지법, 북한서 저지른 범죄 합쳐 탈북민에게 징역 5년 선고
"우리 법원이 형사관할권 행사한 전례 전무" 정의용 발언 뒤집혀

지난 2019년 11월 7일 오후 판문점에서 탈북 어민이 북한으로의 강제 송환에 저항하다 쓰러지자 일곱 명의 관계자가 그를 일으켜 세우려고 하고 있다.  (사진제공=통일부)
지난 2019년 11월 7일 오후 판문점에서 탈북 어민이 북한으로의 강제 송환에 저항하다 쓰러지자 일곱 명의 관계자가 그를 일으켜 세우려고 하고 있다. (사진제공=통일부)

[뉴스웍스=원성훈 기자] 지난 2019년 11월 탈북 어민을 북송하는 과정에서 법령 해석의 주무 부처인 법무부가 북송 전에 법리 검토에 참여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그동안 북한 어민들의 북송 결정과 관련해 문재인 정부 청와대가 그간 '유관 부처의 법률 검토를 거쳤다'고 했던 해명과 배치되는 상황이어서 향후 논란이 일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19일 법무부는 국민의힘 '국가안보문란 TF(태스크포스)' 소속 태영호 의원실에 보낸 답변에서 "법무부는 북송 조치와 관련해 의사 결정 과정에 관여한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이는 '당시 국가안보실, 통일부, 국정원, 군 등 관련 부처가 법적 검토를 요구한 사실이 있느냐'는 질의에 대한 법무부의 공식 답변이다. 법령 해석의 주무 부처인 법무부가 '북송과 관련한 법적 검토를 한 적이 없다'는 입장을 드러낸 셈이어서 주목된다.

북한 어민들에 대한 북송을 결정했던 문재인 정부 청와대는 지금까지 "관계 부처 협의를 통해 북송 결정에 대한 법적 검토를 거쳤다"고 말해왔다.

정의용 당시 국가안보실장도 지난 17일 입장문에서 "(북송은) 여러 부처가 협의해 법에 따라 결정하고 처리한 사안"이라고 말한 바 있다. 정 전 실장은 "국내법은 중대한 비정치적 범죄자는 입국을 허용하지 않고 추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며 "비정치적 중대범죄자는 국제법 상으로도 난민으로 간주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법무부가 "법률 검토를 한 적이 없었다"고 밝히면서 문재인 정부가 공식적인 검토를 거치지 않고 국가안보실이 주도한 북송을 단행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실제로 법무부와 통일부는 지난 14일 유상범 국민의힘 의원실에 "강제 북송은 법적 근거가 없다"고 답변을 보내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가 근거로 들었던 '출입국관리법상 강제 퇴거 조항과 북한이탈주민법상 보호대상자 제외 관련 조항 모두 강제 북송 사건에는 적용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뿐만 아니라, 과거에 탈북민이 북한에서 저지른 범죄에 대해 국내에서 재판을 받았고, 이에 따른 판례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2014년 수원지방법원 형사11부는 탈북하기 전 북한에서 북한 국가안전보위부에 협력한 혐의(국가보안법상 목적수행 등) 등으로 기소된 탈북자 김모 씨에게 징역 5년에 자격정지 5년을 선고했고 이 형은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김 씨는 북한의 한 탄광지대 작업소에서 근무하며 작업소를 탈출하려는 노동자들을 단속하는 등 보위부 일을 하던 인물이었다.

김 씨는 2006년 4월 중국 현지에서 일하던 탈북민 A씨를 상대로 "딸을 만나게 해주겠다"며 약속 장소로 나오게 한 뒤 두 차례에 걸쳐 북한 보위부로 넘기려 했다. 이를 눈치 챈 피해자 A씨가 약속 장소에 나오지 않으면서 약취·유인은 실패했다.

이후 김 씨는 북한 내에서 한국 영화를 시청하고 중국제 휴대전화를 소지한 사실이 적발돼 수감됐다가 중형에 처해질 것이란 말을 듣고 2006년 12월 검찰소를 탈출해 두만강을 건너 탈북, 2007년 한국에 입국해 귀순했다.

김 씨는 귀순 뒤 자동차 운전 학원, 탈북민 운영 가전제품 제조회사 등에서 일하며 사기 대출 등 범죄를 저질렀고 2013년 12월 구속 기소됐다. 1심이 선고한 징역 5년에 자격정지 5년은 북한에 있던 시절 벌인 약취·유인 혐의에 사기죄 등을 합해 내려진 형량이었다. 김 씨의 사례는 북한 내에서 발생한 범죄에 대해 한국에서 사법적 처벌이 이뤄진 최초의 사례였다.

이 때문에 이번 탈북어민 2명 역시 한국 법원에서 처벌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해석도 대두된 것으로 관측된다. 

이는 정의용 전 실장이 17일 "지금까지 북한 지역에서 북한주민이 다른 북한 주민을 상대로 저지른 흉악 범죄와 관련해 우리 법원이 형사관할권을 행사한 전례가 하나도 없다"고 했던 말을 뒤짚는 실제 사례다. 

통일부는 귀순 과정에서 중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파악되면 '비보호 탈북민'으로 분류해 귀순은 인정하되 취업, 교육 등 지원을 제공하지 않았다.

또 다른 측면의 문제도 제기됐다. 정부는 강제 북송 결정이 '국제법적 측면'에서도 문제의 소지가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고문방지협약은 고문 받을 위험이 있다고 믿을 만한 나라로 개인을 송환하지 않을 의무를 협약 당사국에게 부여하고 있다"며 "범죄 혐의자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돼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라고 피력했다.

한국이 당사국인 '유엔 고문방지협약'은 강제 송환 금지 원칙을 통해 고문을 받을 위험이 있는 나라로의 송환을 금지하고 있다. 협약에 따르면 2019년 북한 어민을 고문 등 반인륜적 처벌이 예상됐던 북한으로 돌려보낸 결정은 국제법상으로도 문제의 소지가 있다는 얘기다. 

결국, 모든 사례와 정황을 살펴보면 그동안 문재인 정부 관계자들이 해왔던 모든 말과 근거들이 여지없이 무너져 내린 셈이다. 따라서, 향후에 민주당을 비롯해 과거 문재인 정부 관계자들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아울러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이 북송어민 사건에 대한 처리를 어떻게 마무리 짓게될지에도 국민들의 이목이 집중될 것으로 전망된다.  

저작권자 © 뉴스웍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