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한새 기자
  • 입력 2022.08.07 05:00

의료계, 만성질환자 원격 모니터링도 '불가'…강원도 "코로나19 상황 심각할 땐 수도권까지 환자 이송"

현대엔지니어링 해외근무자가 비대면 진료서비스를 받고 있다. (사진제공=현대엔지니어링)
현대엔지니어링 해외근무자가 비대면 진료서비스를 받고 있다. (사진제공=현대엔지니어링)

[뉴스웍스=유한새·백진호 기자] 주민들의 의료시설 이용 불편을 감안, 인구밀집도는 낮지만 노인 비율이 높은 지역부터라도 원격의료 사업을 시범적으로 실시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국민의힘 강기윤 의원이 보건복지부를 통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2020년 10월 기준 인구 1000명당 의료기관 수는 ▲서울(1.85개) ▲대구(1.57개) ▲부산(1.55개) ▲대전(1.55개) ▲광주(1.51개) ▲전북(1.37개) ▲제주(1.34개) ▲울산(1.21개) ▲경기(1.17개) ▲충북(1.16개) ▲인천(1.15개) ▲경남(1.12개) ▲충남(1.1개) ▲전남(1.1개) ▲세종(1.08개) ▲강원(1.08개) ▲경북(1.08개) 순으로 나타났다. 

인구당 병원 수가 가장 적은 경북과 강원도는 우리나라 면적 중 각각 18.96%, 16.76%를 차지한다. 두 지역의 만 65세 이상 고령자 비율은 각각 21.7%, 20.7%로 전국 평균(16.4%)보다 훨씬 높다. 인구 대비 병원 수는 가장 적지만 지역 면적은 넓은데다 거주민의 고령 비율도 높아 의사의 치료를 받고 처방전을 받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강원 지역 응급구조 관계자는 "코로나19 상황이 심각했을 때 지역 병원 몇 군데를 돌았다"며 "하지만 환자를 받을 수 없다고 해 진료를 받지 못하고 수도권 지역 병원까지 갔다"고 밝혔다. 그는 "이리되면 총 4시간 정도 소요된다"며 "이런 상황이 부지기수였다"고 말했다.

이는 간질 등 만성질환 환자도 마찬가지다. 더구나 강원 지역에는 음압병동이 부족해 코로나19 의심 환자가 병원에 가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코로나19사태 속에 병·의원을 찾기 힘든 지역에서 대면 진료를 받는 것이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는 점이 드러났다. 하지만 현행 의료법은 여전히 원격의료를 막고 있다.

원격의료와 관련해 문제로 지적받는 조문은 의료법 제17조와 제34조다. 의료법 제17조에 따르면 의료업에 종사하고 직접 진찰하거나 검안한 의사가 아니면 진단서·검안서·증명서를 작성해 환자에게 교부하지 못한다. 의료법 제34조 1항은 '의료인은 컴퓨터 화상통신 등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해 먼 곳에 있는 의료인에게 의료지식이나 기술을 지원하는 원격의료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의료인 간의 의견 교환만 허용한다는 것이다.

다만 현행 의료법에도 의료인과 환자 간의 원격의료를 금지한다는 조항은 없다. 현두륜 법무법인 세승 변호사는 지난 2월에 열린 대한의료법학회 월례학술발표회에서 의료법 34조의 모호성을 지적했다. 현 변호사는 당시 "의료법 34조는 원격의료에 관한 규정이지만 실제로는 소위 원격자문에 관한 것 이외의 의사와 환자 간 원격의료가 금지된다고 명시하지도 않고 있다"고 밝혔다.

이런 문제점을 감안, 더불어민주당 강병원 의원과 최혜영 의원은 입법화 작업에 나섰다. 강 의원은 지난해 9월 의료법 제34조 개정안을, 최 의원은 지난해 10월 의료법 제34조·제17조 개정안을 발의했다.

강 의원은 대표로 발의한 의료법 일부개정안의 제안 이유에서 "최근 전 세계적인 감염병 확산의 대처와 예방을 위하여 의료인과 환자 모두가 안전한 의료환경 구축을 위해 의사와 환자 간 원격모니터링으로 비대면진료체계를 마련할 수 있는 법령 정비가 필요하다"고 명시했다.

개정안에는 의료인이 의학적 위험성이 낮다고 평가한 만성질환자에 대해 ICT 기술과 재택 등 의료기관 외 장소에서 환자가 사용할 수 있는 의료기기를 활용해 원격으로 모니터링을 할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대형병원 쏠림 현상을 막기 위해 원격모니터링은 의원급 의료기관만이 할 수 있도록 한다는 문구도 들어 있다.

최 의원의 의료법 개정안은 기존 의료인 간의 원격의료를 '비대면 협진'으로 명확히 규정했다. 의원급 의료기관을 중심으로 격오지 거주자 등 의료기관을 이용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환자에 한해 비대면 진료를 실시하도록 한다는 내용도 반영했다. 의사와 치과의사, 한의사가 1회 이상 대면 진료를 한 고혈압·당뇨병 등의 만성질환자(보건복지부령 기준)도 비대면 진료 대상으로 명시했다. 

제한적으로 원격의료를 허용하자는 두 의원의 의료법 개정안은 지금까지 국회에 계류 상태에 있다. 

이처럼 의료법 개정이 지지부진한 배경에는 의료계의 지속적인 반대 입장 때문인 것으로 여겨진다. 의료계는 오진의 위험을 이유로 들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7월 18일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이 마련한 대한약사회와의 공동회견 자리에서 "비대면 진료 플랫폼을 도입하거나 합법화하는 것은 너무 성급한 조치"라고 주장했다. 이는 박근혜 정부 당시 원격의료 도입을 추진할 때 반대했던 논리와 유사하다. 당시 휴대폰이나 PC 등으로 환자 진료 및 처방을 할 수 있도록 한 법안이 국회에 상정됐는데, 의료계는 원격의료가 의료의 질을 떨어뜨린다는 논리로 맞섰다. 

이에 앞서 7월 8일 대한내과의사회·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대한이비인후과의사회·대한가정의학과의사회 4개 과 의사회는 각 의사회 회원을 대상으로 한 비대면 진료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설문조사는 지난 6월 14일부터 28일까지 진행됐으며 2588명의 회원이 참여했다. 설문에 참여한 10명 중 7명은 비대면 진료 도입에 반대한다고 답했다.

응답자 중 54.4%는 '감염병 등 불가피한 상황에서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답했고, 94%에 달하는 응답자가 환자를 충분히 진찰하지 못해 발생할 수 있는 오진을 염려했다.

정부는 지난 2020년 2월부터 코로나19에 의한 의료공백을 막기 위해 '전화 상담'과 '처방 및 대리 처방' 차원의 원격의료 행위를 한시적으로 허용했다. 이에 원격의료 플랫폼이 증가했다. 국민들도 혜택을 입었다. 지난 7월 기준, 전화 상담은 약 512만건 가량 이뤄졌다. 재택치료자 건강 모니터링은 지난 4월 말 기준으로 약 1801만건을 기록했다

코로나19 상황에 따라 한시적으로 이뤄진 비대면 진료에서 총 17만건의 전화상담진료가 이뤄졌다. 이중 오진 사례는 발견되지 않았다. 의사단체들의 우려와는 다른 결과였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자 시절 "국민 모두가 원격의료 수혜를 누릴 수 있게 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당선 후에는 국정과제 이행계획서를 통해 비대면 플랫폼 규제 및 비대면 진료, 의약품 비대면 판매 등 신·구 산업 간 이해갈등이 첨예화된 신산업·신기술에 특화된 강력한 규제개혁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후, 의료계가 적극 반발하자 별다른 후속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코로나19를 기점으로 미국, 일본 등의 해외 선진국뿐 아니라 한국보다 의료 인프라가 뒤쳐져 있다고 평가받는 동남아 국가들도 원격의료 확산에 힘을 쏟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갈라파고스 섬처럼 아무런 변화가 없다. 이대로 가다간 선진화된 의료기술과 관련 산업의 위상과는 달리 원격의료는 계속 후진국으로 뒤쳐질 것으로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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