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전다윗 기자
  • 입력 2022.10.04 05:00

스태그플레이션 본격화 우려 커져…총수들 해외 현장 뛰며 타개책 찾기 '부심'

28일 오후 4시 여의도 한국거래소 내 전광판이 원달러 환율 1439.90원을 가르키고 있다. (사진=유한새 기자) 
28일 오후 4시 여의도 한국거래소 내 전광판이 원달러 환율 1439.90원을 가르키고 있다. (사진=유한새 기자)

[뉴스웍스=전다윗 기자] 하반기 한국 경제에 경고등이 켜지며 국내 대기업들이 활로 찾기에 나섰다. 내년 투자 계획과 경영 방향을 조정하거나, 유동성 강화에 나서는 등 비상경영에 돌입했다. 갑작스럽게 닥쳐올 위기에 대비해 비용을 줄이고, 현금을 쌓아두려는 의도다. 사업구조 재편으로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모습도 보인다. 총수들의 발걸음도 빨라졌다. 불확실성이 커진 글로벌 현장을 직접 뛰며 해결책 모색에 한창이다. 

4일 재계에 따르면 국내 주요 기업들은 하반기 경영 방향을 수립하는데 골머리를 앓고 있다. 여러 악재가 복합적으로 겹쳐 불확실해진 경영 환경 탓이다. 달러당 원화값이 연저점을 돌파해 13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곤두박질쳤고, 원자재 가격도 좀처럼 내려갈 줄 모른다. 급격한 인플레이션과 이에 따른 소비 위축으로 기업들의 재고 역시 급증하는 추세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미·중 갈등으로 인한 공급망 문제도 골칫거리다. 경기 침체와 물가 상승이 동시에 일어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본격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삼성전자 수원사업장 전경. (사진제공=삼성전자)
삼성전자 수원사업장 전경. (사진제공=삼성전자)

이런 불확실한 경영 환경에 대응하고자 상당수 기업들은 속속 비상경영 체제에 돌입하고 있다. 예정됐던 투자를 축소·중단·연기하고, 긴축경영에 돌입하는 등 유동성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눈에 띈다. 우려가 현실화될 때에 대비해 현금을 쌓아두기 위해서다.

현대중공업그룹의 건설기계 3사는 최근 비상경영을 선포했다. CEO 4인의 명의로 임직원들에게 현재의 위기에 대한 선제적이고 민첩한 대응을 요구하는 내용의 공동담화문도 발표했다. 손동연 현대제뉴인 부회장과 조영철 사장, 오승현 현대두산인프라코어 부사장, 최철곤 현대건설기계 부사장은 공동 담화문에서 "세계 경제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단기와 장기 성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우리에게는 골든아워가 얼마 남지 않은 느낌"이라며 "비상경영 실시가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현금 확보 우선 전략의 필요성도 언급했다. CEO들은 "최대한의 수익을 창출해 현금을 확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과도한 비용 지출을 억제하고 채권과 재고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전자는 최근 내부적으로 예산은 잡았지만 아직 집행하지 않은 사업을 보류·축소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이렇게 멈춘 사업 예산 규모가 예년보다 더 늘어난 것으로 보고 있다. 불확실한 경영 환경을 고려해 불필요한 지출을 축소하고, 미래 사업과 인수합병(M&A)에 집중하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삼성은 앞서 지난 6월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 경계현 삼성전자 DS부문장을 주재로 전자 및 전자관계사 사장단회의를 열고 사실상 비상경영 체제에 돌입한 바 있다. 사장단은 8시간 넘게 마라톤 회의를 갖고 글로벌 위기 극복 방안을 위한 심도 깊은 논의를 이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와 관계사 경영진이 총출동한 것은 지난 2017년 2월 그룹 미래전략실 해체 이후 처음이었다. 

한화빌딩 전경. (사진제공=한화그룹)
한화빌딩 전경. (사진제공=한화그룹)

지난 7월 전사 차원의 비상 경영 체제에 돌입하며 '현금 중심 경영' 강화에 나선 포스코그룹은 10월 중 사장단과 전 임원이 참석하는 그룹 경영 회의를 열 계획이다. 재고 자산이 늘고 철강 수요가 감소하는 현 상황을 고려한 긴축 경영 방안이 담길 것으로 관측된다. SK그룹도 같은 달 최태원 회장 주재로 CEO 세미나를 사흘간 연다. 세미나에서 SK그룹은 위기 상황에 대한 '컨틴전시 플랜(위기 대응 비상 계획)'을 마련할 것으로 전해진다. LG그룹은 지난달 29일 주요 계열사 사장단이 참석하는 대면 워크숍을 열어 복합 위기 상황의 대응 방안을 점검했다. LG그룹이 오프라인 사장단 워크숍을 개최한 것은 지난 2019년 이후 3년 만이다. 

사업구조 재편으로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기업도 있다. 한화그룹은 ㈜한화,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임팩트 등 3개사를 중심으로 사업 재편에 나섰다. 유사 사업군을 통합해 효율성을 높이려는 의도다. 한화 측은 "대내외적 경영 환경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가운데 지속가능한 성장 기반을 마련하고자 하는데 주안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이재용(왼쪽) 삼성전자 부회장이 13일(현지 시각) 파나마시티에 위치한 파나마 대통령궁에서 라우렌티노 코르티소(가운데) 파나마 대통령을 만나 악수하고 있다. (사진제공=삼성전자)
이재용(왼쪽)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9월 13일(현지 시각) 파나마시티에 위치한 파나마 대통령궁에서 라우렌티노 코르티소(가운데) 파나마 대통령을 만나 악수하고 있다. (사진제공=삼성전자)

총수들의 발걸음에도 조급함이 묻어난다. 직접 해외 현장을 뛰며 현 상황의 타개책 찾기에 나섰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최근 보름에 걸쳐 해외 출장을 다녀왔다. 멕시코, 파나마, 캐나다, 영국을 거쳤다. 이 부회장은 각국 현지 사업장을 찾아 사업 현황과 전략을 점검하고, 임직원을 격려했다. 이 부회장은 조만간 방한할 예정인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과도 만날 예정이다. 이 자리에서 소프트뱅크가 보유하고 있는 반도체 설계회사 암(ARM) 인수 관련 논의가 진행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도 지난 9월 21일 미국 출장길에 올랐다. 9월 3일 약 2주간의 미국 출장 후 귀국한 지 한 달도 안 돼 다시 출국했다. 이번 출장에서 정 회장은 미국 LA에 위치한 현대차 미국 판매법인을 찾을 전망이다. 미국 사업 현황과 판매 전략을 점검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2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SK 워싱턴 지사에서 열린 'SK의 밤' 행사에 참석해 환영사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SK)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 9월 2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SK 워싱턴 지사에서 열린 'SK의 밤' 행사에 참석해 환영사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SK)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최근 미국 출장에서 'SK의 밤' 행사에 참석해 미국 정재계 주요 인사들을 만나 대미 투자를 포함한 양국 간 파트너십 강화를 강조했다. 최 회장은 미국 출장에 앞서 일본 도쿄에서 열린 아시아 비즈니스 카운슬 추계 포럼에 참석해 주요 인사들을 만나 한일 경제 협력 방안에 대해 논의하기도 했다. 미국과 일본은 SK가 성장 동력으로 삼는 반도체(Chip)·배터리(Battery)·바이오(Bio), 이른바 'BBC' 사업의 주요 파트너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10월 중 폴란드를 출장길에 오를 것으로 관측된다. 므와봐, 브로츠와프 등에 위치한 현지 사업장을 둘러보며 해외 경영 상황을 점검할 전망이다. 므와바엔 LG전자 TV 공장이 있으며, 브로츠와프엔 LG에너지솔루션의 전기차 배터리 공장과 LG이노텍 전자부품 공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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