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전다윗 기자
  • 입력 2022.10.20 12:18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 전경. (사진제공=전국경제인연합회)<br><br>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 전경. (사진제공=전국경제인연합회)

[뉴스웍스=전다윗 기자] 지난해 자산 상위 100대 기업 중 8곳만 정관에 경영권 방어 조항을 채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마저도 해외 경쟁 기업들과 비교하면 소극적 방어수단에 그쳤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20일 발표한 '자산 100대 기업 경영권 방어수단 분석'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금융사를 포함한 자산 상위 100대 기업 중 8곳만 정관에 경영권 방어 조항을 채택했다. 

8개 기업이 도입한 방어수단도 이사 해임 규정을 상법 특별결의 요건보다 조금 더 강화하거나 시차임기제 도입 정도에 그쳐 적대적 M&A 등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적대적 M&A의 경우 주주총회 결의를 통해 기존 이사를 해임하거나 정관 변경, 영업 양도 등이 이뤄진다. 기업들은 이에 대비해 정관에 결의 요건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다. 

전경련 조사 대상인 자산 상위 100대 기업 중 7개사는 정관에 이사 해임 결의를 '출석 주주 의결권의 70/100 이상'으로 하거나 '발행주식 총수의 1/2 이상' 혹은 '발행주식 총수의 2/3를 초과'하도록 했다. 이는 상법에서 정한 특별결의 요건(발행주식 총수의 1/3 이상 찬성)을 조금 넘기는 수준이다.  

시차임기제는 이사진의 임기가 일시에 만료되는 것을 막는 방어수단이다. 통상 이사 임기는 3년이다. 이사 총원의 1/3씩 임기가 만료되도록 구성하면 경영권 공격 세력이 주식 과반수를 매수해도 이사진 전체를 교체하기 어렵다. 상장회사 이사진이 일시에 교체되는 경우가 드문 점을 감안하면 대부분의 기업들이 실질적으로 시체임기제를 활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으나, 이를 정관에 명시적으로 채택한 기업은 한 곳에 불과했다.

전경련은 경영권 방어수단의 실효성도 낮은 것으로 봤다. 일례로 시차임기제가 있는 D사의 경우 지난 2006년 해외 헤지펀드의 공격을 받았을 때 별다른 대응 효과를 거두지 못했고, 결국 배당 확대나 자사주 매입 등의 요구를 대부분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전경련에 따르면 현재 우리 기업들이 정관에 넣을 수 있는 경영권 방어수단들은 ▲이사 해임 가중 요건 ▲이사 시차 임기제 ▲인수·합병 승인 안건의 의결정족수 가중 규정 ▲황금낙하산주 정도다. 이러한 수단들은 단지 주주총회에서 안건의 가결을 어렵게 하거나 임원진들이 한꺼번에 교체되는 것을 막는 수준에 불과하다는 것이 전경련의 지적이다. 

전경련은 "해외 경쟁 기업들이 차등의결권, 신주인수선택권(포이즌 필), 황금주 등 적극적 방어수단을 활용하는 것과 차이가 크다"며 "무엇보다 방어수단 도입을 위한 정관 변경도 주총 특별결의를 거쳐야 하는 만큼, 방어수단을 새로 채택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국내 기업의 지배구조에 일시적 균열이 발생했을 때 사모펀드들이 이를 틈타 기업 지배권을 위협하는 적대적 M&A를 시도하는 사례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최근 한진칼, 교보생명 사례가 대표적이다.

한진그룹 지주회사인 한진칼은 최근 국내 행동주의 사모펀드 KCGI의 타깃이 됐다. 한진칼은 대한항공, 진에어, 칼호텔네트워크 등을 자회사로 둔 한진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지주회사다.

땅콩 회황, 물컵 갑질 등으로 이미지가 훼손된 대한항공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KCGI는 한진칼 지분을 매입하며 경영 참여를 시도했다. 여기에 반도건설과 경영권 승계에서 배제된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가세하며 경영권 분쟁이 본격화됐다. 결국 2020년 최종 실패했으나, 약 2배의 차익을 냈다.

교보생명의 경우 재무적 투자자인 사모펀드 어피니티(지분 42.3%)가 회계법인과 공모해 실제 기업 가치와 무관한 풋옵션 가격을 산정하는 등 적대적 M&A를 시도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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