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2.11.10 10:29
최일 잠수함연구소장 (사진제공=최일)
최일 잠수함연구소장 (사진제공=최일)

우리 국방부에는 유해발굴감시단이 있다. 지금도 6.25 전사자 유해를 발굴하고 신원을 확인해 유가족에게 통보한다. 예의를 갖춰 안장식을 거행한다.

전사자 유해에 대해 격식과 예우를 갖추는 것은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이다. 미국 대통령이 전사자 유해가 본국에 도착할 때 직접 공항에 나가서 깍듯하게 맞이하는 모습을 언론을 통해 본 적이 종종 있을 것이다.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군인들 유해에 대한 정중한 대접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그럼, 잠수함과 함께 물속에 가라앉은 잠수함요원들의 유해는 어떻게 취급되고 있을까. 정중하게 인양돼 국립묘지에 안장될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바닷속에는 수많은 잠수함들이 가라앉아 있다. 그 중에는 잠수함을 폐기하기 의해 의도적으로 침몰시킨 잠수함도 있지만 작전이나 전투 중 사고나 적의 공격에 의해 승조원과 함께 침몰한 잠수함도 많다. 예를 들면 2017년 침몰한 아르헨티나 산후안함의 승조원 44명 전원은 지금도 잠수함에 승조한 채 해저 907미터에 머물러 있다. 2021년 침몰한 인도네시아 낭갈라함의 승조원과 편승자 53명도 전원 해저 838미터에 갇혀 있다.

탐색 작전을 통해 침몰 위치를 파악했기에 당연히 인양하고 승조원 유해를 수습해 가족에게 돌려보내야 할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수심 깊은 곳에 가라앉은 조각난 선체를 인양하는 기술이 매우 어려운데다 여기에 엄청난 경비가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의 유가족들은 해상에 헌화하는 것으로 아픔을 달래고 있다.

승조원과 함께 침몰한 독일 유보트들도 수중에 아직 많이 남아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유보트 승조원 약 4만 명 가운데 3만 명 정도가 사망했지만 유해라도 인양된 이들은 많지 않다. 그래서 독일 유보트 전사자들의 묘지에는 무덤 대신 동판에 이름을 새겨서 그들을 기리고 있다. 

그럼 인양 가능한 잠수함 안에 있는 유해는 어떻게 취급되고 있을까.

2013년 호주에서는 한 장의 사진이 공개됐다. 말레이시아 해역에서 인양된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네덜란드 침몰 잠수함 O-16의 선체를 찍은 것이었다. 이 선체는 관련 법규가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고철상인이 임의로 인양한 것이었다. 잠수함에는 고품질 금속이 많이 있고 일부는 골동품으로 매각할 수 있어 고철상인들에게는 돈이 된다. 문제는 이 고철상인들이 선체를 불법으로 인양한 것도 있지만, 잠수함 내부에 있는 승조원 유해에 대해 그 어떤 예도 갖추지 않고 훼손시켜버렸다는 것이었다. 이 사건은 네덜란드 잠수함 유가족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이후 침몰된 잠수함 승조원의 유해에 예를 갖춰달라는 운동이 전개됐다.

브롬(왼쪽) 여사와 최일 잠수함연구소장. (사진제공=최일)

이 운동에 앞장선 이는 네덜란드의 브롬(Katja Boonstra-Blom)이라는 이름의 1942년생 여성이다. 브롬 여사의 아버지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네덜란드 잠수함 K-16의 전기관이었다. 태평양전쟁 개전 시 네덜란드는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에 잠수함을 총 15척 전개하고 있었다. 수라바야 기지에 있던 네덜란드 잠수함들은 당시 영국 해군과 협력하며 일본군을 상대로 싸웠다. 그녀의 아버지가 승조한 K-16은 1941년 12월 25일에 남중국해 보르네오 60마일 이격된 해점에서 일본 잠수함 I-166에 격침돼 승조원 전원이 사망하였다. 이때 브롬여사는 어머니 뱃속에 있었다. 

아버지 얼굴을 보지 못하고 성장한 브롬 여사는 성장 후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 나섰다. 그녀의 아버지가 탔던 K-16을 포함해 제2차 세계대전 중 인도네시아 근해에서 소실돼 못 찾고 있던 3척의 네덜란드 잠수함을 찾기로 결심하고 1982년부터 네덜란드 침몰잠수함발굴협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러던 중 그녀의 아버지가 승조했던 잠수함 K-16을 격침시킨 일본 잠수함 I-166 역시 영국 잠수함 텔레마코스(Telemachus)함이 쏜 어뢰에 맞아 격침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종전 후 60여년이 지난 2006년, 네덜란드 K-16 전기관의 딸 브롬 여사와 일본 I-166 기관장의 아들 아키라(Akira Tsurukame), 영국 잠수함 텔레마코스 함장 킹(William Leslie de Courcy King)과 그들의 가족들은 네덜란드, 일본, 영국을 상호 방문하며 화해와 우정을 상징하는 기념식수를 하였다. 이들의 상호 방문은 세계잠수함협회에서 큰 이슈가 되어 지금도 그 때 행사가 회자되고 있다. 

2013년 10월 말레이시아에서 고철 상인들에 의해 침몰 잠수함이 불법으로 훼손된 사건이 알려진 후 인근에 침몰해 있던 K-17도 심하게 훼손된 것이 확인됐다. 잠수함과 시신 훼손은 말할 것도 없고 일부 네덜란드 잠수함의 물품이 불법으로 유통되어 호주의 경매장에서 팔리고 있었다. 이에 네덜란드 잠수함협회는 고철상인들의 불법적인 침몰잠수함 훼손과 인양에 대해 네덜란드 정부와 각국에 탄원했다. 이후 많은 발전이 있었다. 네덜란드 정부는 공식적으로 캄보디아와 말레이시아 정부에 침몰잠수함 발견 시 소속 국가에 통보해줄 것과 유해에 대한 예우를 요청했고 결국 협조 약속을 받아냈다. 네덜란드 잠수함에서 불법으로 탈취돼 호주에서 판매된 항해 물품 등은 네덜란드로 반환됐다. 네덜란드 헬데르 잠수함 박물관에서 전시 중이다.

네덜란드를 비롯한 폴란드, 영국 등 제2차 세계대전 중 소실된 잠수함을 찾는 나라들은 함부르크에 있는 ITLOS 국제해상법재판소에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하여 입법화를 위해 노력하는 한편, 각국의 협조를 호소하고 있다. 이들은 발견된 잠수함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인도적인 차원에서 발견된 유해에 최소한의 예우와 인도를 요청하는 것이다. 

전쟁은 끝났지만 유해의 인양과 수습, 안장은 고사하고 훼손되는 것조차 막지 못하는 잠수함 전사자 가족들의 아픔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최일 잠수함 연구소장

P.S. 경남 김해에 있는 잠수함연구소는 국내 최대 규모의 세계 잠수함 기록물 전시관(International Submarine Archive)입니다. 이메일 kommandantchoi@gmail.com으로 방문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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