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2.11.18 15:43
17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민불편 최소화를 위한 집시법 개정 토론회'에서 이채익(뒷줄 가운데) 국회 행정안전위원장을 비롯한 여야 의원 5명이 발제자·토론자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이채익 국민의힘 페이스북 캡처)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코로나19 방역규제가 풀린 뒤 서울 도심에선 휴일마다 집회와 시위가 열리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결정으로 청와대 사무실이 국방부 청사로 옮기면서 광화문과 숭례문에 이어 삼각지역 근처는 집회 신흥 메카로 떠올랐다. 이로 인해 인근에 사는 주민들이나 외출 나온 시민들은 소음 공해와 차량 정체에 따른 피해를 당하고 있다. 우울증과 수면장애를 호소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집회·시위의 자유를 보장하면서도 국민 불편은 최소화하는 제도 개선 노력이 절실한 상황이다.  

집회는 특정 또는 불특정 다수인이 공동의 의견을 형성해 대외적으로 표현할 목적으로 일시적으로 장소에 모이는 것을 뜻한다. 시위는 여러 사람이 공동의 목적을 갖고 도로, 광장, 공원 등 일반인이 자유로이 통행할 수 있는 장소를 행진하거나 위력(威力) 또는 기세(氣勢)를 보여 불특정한 여러 사람의 의견에 영향을 주거나 제압을 가하는 행위로 정의된다. 헌법은 21조 제1항과 2항에서 모든 국민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지며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다만 헌법 37조 2항에 따라 국가안전 보장, 질서 유지, 공공복리를 위해 법률적 제한은 받을 수 있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은 집회와 시위 주최자가 개최와 진행, 참가 등에서 지켜야할 절차와 방법을 규정하고 있지만 제대로 준수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계속 제기되는 실정이다. 신고한 것과는 달리 집회나 시위를 진행하더라도 처벌이 솜방망이 수준이다보니 집회·시위의 자유가 악용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같은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경찰청와 여야 국회의원 5명이 17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국민불편 최소화를 위한 집시법 개정 방향 논의'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갖고 대안 모색을 시도한 것은 의미가 크다.  

김소연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날 ‘현 금지장소 조항의 적절성 및 개선방안’ 에 대한 주제발표를 통해 "집시법 11조에 '대통령 집무실'을 추가하는 내용의 개정안은 업무공간과 비업무공간을 호응시켜 규정하고 있는 기존 집시법상 입법·사법기관의 체계와 통일성을 갖는다는 점에서 적합하다. 다만 허용의 예외 사유를 두는 것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집시법 개정안에 찬성 입장을 표명하면서도 기존 규정처럼 예외 사유를 설정,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방안도 검토해볼 만하다는 의견을 내놓은 것이다.

현행 집시법 11조는 '누구든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청사 또는 저택의 경계 지점으로부터 100미터 이내의 장소에서는 옥외집회 또는 시위를 하여서는 아니된다'고 규정한다. 100m 이내 집회·시위 금지 장소는 국회의사당과 각급 법원 및 헌법재판소, 대통령 관저와 국회의장·대법원장·헌법재판소장 공관, 국내 주재 외국의 외교기관, 외교사절의 숙소이다. 

11조에서 눈여겨 볼 대목은 예외 규정이다. 대통령 관저와 국회의장 공관, 대법원장 공관, 헌법재판소장 공관은 예외를 인정하지 않고 무조건 100m 이내 옥외집회와 시위를 금지한 반면 다른 장소는 국회 활동을 방해할 우려가 없거나 법관의 직무상 독립이나 구체적 사건의 재판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없는 경우 등이라면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명시한다. 사무실 인근에서 대규모 집회 또는 시위로 확산될 우려가 없다면 100m 이내 집회나 시위도 제한할 수 없지만 숙소 인근에선 어떤 경우에도 금지된다는데 방점을 찍고 있다.

과거 청와대의 경우 대통령 관저와 집무실이 함께 있어 현행 집시법 규정으로 100m 이내 집회·시위는 전면 금지됐다. 윤석열 정부 들어 집무실은 대통령실로, 관저는 한남동으로 분리되면서 대통령실 100m 이내에서 진행되는 집회·시위를 금지할 규정은 무력화된 것이다. 

김 교수의 발표에 대한 찬반 토론에서 정준선 경찰대 교수는 “대통령 관저에 관한 논의는 법 현실의 변경으로 발생한 법률의 미비인 만큼 집시법을 개정하면 해소되는 사안”이라고 옹호했다. 반면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법기관들에 대한 비판을 목적으로 하는 집회·시위에 대해 인근 100m를 금지구간으로 정하는 것은 해당 목적의 집회·시위를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것이 된다”고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윤 대통령이 지난 5월 10일 취임하고 대통령실이 종로구에서 용산구로 이전하면서 용산경찰서에 들어온 집회·시위 신고는 한 달 평균 130건에 달했다. 지난 8월에는 158건, 9월에는 131건이 신고됐다. 현행 집시법 정신은 실제 해당 기관에 어떤 위해가 끼쳐질 우려가 있다면 100m 이내 집회·시위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간 용산에서 벌어진 집회·시위 중에서 위협적으로 진행된 것이 적지 않았고 대규모로 확산될 우려도 있었다는 점에서 대통령실 100m 이내 집회·시위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타당하다. 다만 1인 시위나 소규모 피켓 시위 등 일부 예외를 인정, 대통령에게 옥외에서 자신이나 특정 집단의 뜻을 알리려는 시도를 막지 않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판단한다.

집시법 개정의 또 다른 쟁점은 '집회소음으로 인한 국민평온권 보호방안 마련'이다. 성중탁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집회·시위 과정에서 발생하는 소음으로 집회와 전혀 관련이 없는 일반 국민이 일상에 지장을 받거나 사생활·학습권에 침해를 받고 있다"며 "과도한 소음에 대해 합리적 범위에서의 제한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경찰청은 집회소음 단속기준 강화를 추진 중이다. 등가소음도(10분 평균값)를 기존(주간 기준 75dB, 학교·종합병원·공공도서관 근처 65dB)보다 5데시벨 내리고 최고소음도는 10데시벨 낮추는 내용의 집시법 시행령 개정안을 마련한 상태다.

이에 대해 장서일 서울시립대 교수는 "최고소음도를 10dB 강화할 경우 집회·시위 내용을 전달할 수 있는 정도인지 현실적 상황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찬성 입장을 보인 반면 김세희 민주노총 법률원 변호사는 "각종 소음 규제에 대한 단일 체계를 만드는 게 선행되어야하고 그 다음으로 선거운동과 집회·시위 상황에서 해당 기본권을 고려한 소음기준이 정립될 필요가 있다"며 반대 입장을 천명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경남 양산 사저에서 살면서 인근 시위로 문 전 대통령과 마을주민들의 피해가 커지자 지난 8월부터 대통령실 경호처는 울타리에서 반경 300m까지 경호구역을 확대했다. 이후 평산마을에서 시위·집회는 많이 줄었다. 자신의 권리 행사가 중요하다고 해서 이로 인해 타인에게 피해가 간다면 이를 삼가거나 최소화하는 것이 윤리적으로 옳은 행동이다. 선동적인 노래나 음악을 고음역으로 반복재생하는 것은 집회·시위 주최자에겐 투쟁 동력을 키우는 수단이겠지만 듣는 사람에겐 폭행이나 상해로 받아들여질 수 있음을 감안해야 한다.  

이날 토론회를 주최한 의원 5명은 너나없이 집시법 개정을 주장했다. 한병도 민주당 의원은 "문재인 전 대통령의 평산마을 사저 앞에서 개최된 비이성적이고 반지성적인 집회·시위로 주민들은 너무나도 큰 고통을 겪었다. 현행 집시법이 국민의 사생활과 평온권을 온전히 보호하지 못하는 만큼 보완입법이 절실하다"고 밝혔다. 국회 행정안전위원장인 이채익 국민의힘 의원은 "우리는 집회·시위로 인한 사생활 평온권, 학습권 침해 등을 당연히 감내해야할 불편으로 치부해왔지만 이젠 해소방안을 모색할 시기"라고 강조했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도 "헌법이 보장한 표현의 자유를 넘어 누구가를 괴롭히고 혐오를 불러일으키기 위한 수단으로 집회·시위가 악용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국가는 모든 국민이 자신의 뜻을 자유롭고 정당하게 펼칠 수 있도록 보장하되 이로 인해 공공의 안녕질서가 무너지는 것은 막아야할 책임을 갖고 있다. 선진국이 될수록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더욱 존중되고 강화된다는 측면에서 국민이 평온한 삶을 즐길 수 있도록 현행 관련 제도의 허점을 파악, 보완하는 노력이 뒤따라야할 것이다. 주거지역과 학교 등 국민이 쉬고 배우는 공간은 집회소음으로부터 우선적으로 보호받을 권리를 누려야 한다.

"법은 상식인데, 국민 일반의 상식이 반영되지 않은 법에 사회를 유지하는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윤희근 경찰청장의 이날 개회사는 현행 집시법의 문제를 여실히 드러낸 지적이었다. 국회는 우리 사회가 헌법이 보장한 주요 권리를 어떻게 조화롭게 지켜나갈 것인가를 목표로 합리적인 개선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아울러 집회에서 사용하는 확성기 종류와 수를 미리 신고하고 이를 어기면 과태료를 물리는 것을 비롯해 무질서와 교통체증도 줄이기 위한 대책도 조속히 입안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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