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전현건 기자
  • 입력 2022.12.08 13:56

안전진단 규제 내년 1월 완화…D등급 범위 45~55점으로 축소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 현행 및 개선안 비교. (사진제공=국토부)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 현행 및 개선안. (사진제공=국토부)

[뉴스웍스=전현건 기자] 정부가 재건축 사업의 걸림돌로 지목됐던 '안전진단 규제'를 완화했다. 재건축 가능 여부를 평가하는 항목 중 구조 안전성의 비중을 50%에서 30%로 낮추고, 주거환경·설비 노후도 비중은 각각 15%, 25%에서 30%로 높인 것이 골자다. 주차·녹물·층간소음 등으로 인해 생활이 불편한 아파트 주민들이 보다 쉽게 재건축을 추진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는 취지다.

국토교통부는 '국민 주거안정 실현방안'의 후속 조치로 8일 '재건축 안전진단 합리화 방안'을 발표했다. 12월 중 행정예고를 거쳐 내년 1월부터 곧바로 시행된다. 

재건축 안전진단은 재건축의 첫 관문에 해당하는 절차다. 분양가상한제,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재초환)와 더불어 재건축 사업을 막는 '3대 대못'으로 불려왔다. 앞서 정부가 분양가상한제와 재초환 개선안을 차례로 내놓으면서 마지막 규제 완화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재건축 희망 단지들은 안전진단에서 ▲구조 안전성 ▲주거 환경 ▲설비 노후도 ▲비용 편익을 따져 A~E등급 중 D(조건부재건축) E(재건축)등급을 받아야 재건축 절차를 밟을 수 있다. 그러나 2018년 3월 구조 안전성 비중을 20%에서 50%로 상향하고, D등급의 경우 공공기관 적정성 검토를 의무화하면서 안전진단 통과 건수가 급감, 도심 내 양질의 주택공급 기반이 크게 위축돼 왔다.

국토부에 따르면 2015년 5월부터 2018년 2월까지 34개월 동안 전국 139건(서울 59건)에 달했던 안전진단 통과 건수는 기준이 강화된 2018년 3월부터 올해 11월까지 56개월간 단 21건(서울 7건)에 불과했다.

이에 정부는 대선 공약과 8·16 주거안정 실현 방안 등에서 밝힌대로 ▲평가항목 배점 비중 개선 ▲조건부재건축 범위 축소 ▲적정성 검토 개선 ▲안전진단 내실화 병행 ▲재건축 시기 조정제도 보완 등 안전진단 개선방안을 마련했다.

우선 재건축 판정 여부가 구조 안전성 점수에 크게 좌우되지 않도록 구조안전성 점수 비중을 기존 50%에서 30%로 다시 낮추고, 각각 15%, 25%였던 주거환경, 설비노후도 점수 비중은 모두 30%로 높였다. 주거환경 항목은 주차대수·생활환경·일조환경·층간소음·에너지효율성 등을 평가하고, 설비노후도는 난방·급수·배수 등 기계설비·전기소방설비 등을 평가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 주거수준 향상, 주민불편 해소 관련 요구를 평가에 크게 반영할 방침이다.

또한 현재 합산 점수 30~55점에게 내려지는 D(조건부재건축) 등급 판정의 점수 범위를 45~55점으로 조정해, 45점 이하는 E(재건축) 등급을 받고 바로 재건축 추진이 가능하도록 판정 기준을 합리화한다. 이는 현행 D등급 구간 범위가 넓어 사실상 30점 이하의 점수를 받기가 어렵다는 문제가 제기된 데 따른 것이다. 실제로 2018년 3월 이후 현행 기준을 적용해 안전진단을 완료한 46곳 중 '재건축' 판정을 받은 사례는 단 한 곳도 없었다.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 현행 및 개선안 비교. (사진제공=국토부)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 현행 및 개선안. (사진제공=국토부)

중복되고 장기화되는 절차를 간소화하기 위해 향후 조건부재건축이라도 원칙적으로 공공기관의 적정성 검토를 거치지 않고, 지자체 요청 시에만 예외적으로 시행되도록 개선한다. 입안권자인 시장·군수·구청장이 1차안전진단 결과 중 기본적으로 확인이 필요한 사항만 검토하고, 그 과정에서 명확한 오류 확인, 미흡 근거자료 보완 지연 및 소명 부족으로 평가 결과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하는 경우에만 적정성 검토를 요청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또 요청이 들어오더라도 1차 안전진단 내용 전부가 아닌 지자체가 미흡하다고 판단한 사항만 한정해 적정성 검토를 하도록 개선할 계획이다. 다만 국토부 장관이나 시·도지사는 필요한 경우 입안권자에 대해 적정성 검토 권고 조치나 시정 요구가 가능하도록 할 예정이다.

대신 정부는 안전진단이 공공기관의 적정성 검토 없이도 민간진단기관의 책임 하에 시행되도록 필요한 교육과 컨설팅을 강화하고, 실태 점검도 병행해 안전진단을 내실화할 계획이다.

국토안전관리원 등 공공기관은 전체 민간진단기관을 대상으로 분기별정기교육을 실시하고, 지자체 요청 시 안전진단 실시 전에 공공기관이 지자체, 선정된 민간진단기관(참여기술자)을 대상으로 안전진단수행계획서 등에 대한 컨설팅을 지원한다. 또 민간진단기관에 대한 합동 실태점검을 정기적으로 실시해 부실 안전진단 적발 시 2년이하의 징역과 2000만원 이하 벌금을 부과하고, 영업정지 등 제재도 신설할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안전진단 이후 시장상황 등을 고려한 재건축 시기조정 방안도 보완해 나갈 계획이다. 시·군·구청장이 지역 내 주택수급 상황을 종합적으로 검토 후 D등급 판정 단지의 정비구역 지정 시기를 조정할 수 있도록 구체화하고, 시장 불안, 전·월세난 등이 우려되는 경우 정비구역 지정을 1년 단위로 조정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절차도 정할 계획이다. 또 광역적인 시장 대응이 필요한 경우 국토부 장관, 시·도지사가 지정권자에게 정비구역 지정 시기 조정을 권고할 수 있는 규정도 마련할 계획이다.

국토부 시뮬레이션 결과, 당초 2018년 3월 이후 안전진단이 완료된 단지(46개) 중 54.3%(25개)는 '유지보수' 판정으로 재건축이 어렵고, 45.7%(21개)만 '조건부 재건축'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이번 개선으로 '유지보수' 판정이 23.9%(11개)로 크게 줄고, 26.1%(12개)는 '재건축' 판정을, 50%(23개)는 '조건부 재건축' 판정을 받을 수 있게 된다. 국토부는 평가항목 배점 비중, 조건부 재건축 범위, 적정성 검토 등의 이번 개정규정을 현재 안전진단을 수행 중인 단지에도 모두 적용할 예정이다.

이번 개선 방안의 대부분의 내용은 '주택 재건축 판정을 위한 안전진단 기준(고시)' 개정사항으로, 12월 중 행정예고를 거쳐 1월 중 조속하게 시행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다만 국토부 장관의 재건축 시기조정 권한 규정 등은 법률 개정사항으로 시간이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또 1기 신도시 등에서도 정비사업이 원활하게 추진될 수 있도록 이번 개선방안의 적용 효과 등을 연구용역 과정에서 분석하고, 필요 시 내년 2월 발의 예정인 '1기 신도시 특별법'에 추가적인 제도 개선 방안 등을 별도로 담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안전진단 규제를 완화해도 당장 재건축 단지에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는 반응이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안전진단 규제 완화 조치가 부동산 시장의 연착륙에 미치는 효과는 제한적"이라며 금리 인상, 초과이익 환수제 등의 영향으로 당장 재건축 단지의 집값이 반등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시장 정상화를 먼저 적극적으로 시행하는 것으로 시장 연착륙방안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면서 "시야를 '시장 연착륙'으로 맞추지 말고 '과도한 규제의 정상화'라는 범위로 넓혀 정책을 다루는 게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임병철 부동산R114 팀장은 "안전진단 규제가 완화되면 현재 안전진단을 추진하고 있는 서울 양천구 목동과 노원 상계동을 비롯해 1980년 중후반에 지어진 주요 재건축 추진 단지들의 기대감이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단, 임 팀장은 "고금리 여파로 매수 심리가 크게 위축돼 있어 당장 거래 시장에 온기가 돌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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