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문병도 기자
  • 입력 2023.02.25 07:00

이사회 곳곳 친노·친문 인사 포진…CEO와 유착으로 '끼리끼리 왕국' 건설
임기 연장 위해 단기 성과 달성에만 매몰…직원에 낮은 처우 강요 '부작용'

KT 사옥 전경 (사진제공=KT)
KT 사옥 전경 (사진제공=KT)

[뉴스웍스=문병도·백진호 기자] 구현모 KT대표는 우여곡절 끝에 연임을 포기했다. 하지만 KT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먼저 연임 시도로 회사를 무려 두 달 이상 업무마비 상태로 몰아넣었다. 더구나 스스로 성찰한 끝에 내린 결단이 아니라 상당기간 버티다가 어쩔수 없이 외압에 의해 그만두는 것 같은 모양을 만들었다는 점도 회사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요인이 됐다.  

구 대표는 애초부터 연임하는데 흠결을 갖고 있었다. '정치자금법 위반'이 바로 그 것이다. 회삿돈 11억여원을 상품권깡으로 현금화하고 이 가운데 4억여원을 구 대표 개인명의 계좌로 세탁해 국회의원 99명에게 살포했다. 이로 인해 법원은 1500만원 벌금형을 선고했다. 미국에서는 해외부패방지법(FCPA) 위반으로 75억원 상당의 과징금 처벌을 받았다.

이 같은 원죄에도 불구하고 구 대표가 그동안 연임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이유는 이사회가 뒤를 받쳐줬기 때문이다. KT 이사회는 "정관상 금고 이상의 형을 받았을 때에만 이사의 부적격 사유가 된다"며 구현모 대표의 연임시도를 두둔했다. 

KT 이사, 구현모(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윤경림, 강충구, 김대유, 유희열, 김용헌, 벤자민 홍, 여은정, 표현명 (사진=KT홈페이지 캡처)
KT 이사, 구현모(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윤경림, 강충구, 김대유, 유희열, 김용헌, 벤자민 홍, 여은정, 표현명 (사진=KT홈페이지 캡처)

KT는 현 이사회 멤버들과의 관계만 나쁘지 않다면 최고경영자 자리를 손쉽게 연임할 수 있다는 약점을 갖고 있다. 민영화 과정에서 확실한 주인이 없어지다 보니 이사진과 현 CEO가 결탁할 경우 마땅히 제지할 방법도 없다.

KT의 대표이사는 사외이사들이 위원으로 참여하는 '지배구조위원회'와 '대표이사 후보심사위원회'를 거친 뒤 주주총회에서 최종 확정된다. 이런 절차를 거쳐 일단 CEO 직위에 오르면 인적·물적 자원을 총동원해 자신의 지지기반 강화에 적극 나선다. 이들을 통해 임기를 스스로 연장할 길이 활짝 열리게 되기 때문이다.

이사회는 KT와 KT 자회사의 경영을 좌우한다. 총 9인(사내 2인, 사외 7인)으로 이뤄진 KT의 이사회 곳곳에 문재인 정부 때 임명된 이른바 '친노·친문' 인사들이 대거 사외이사로 등재돼 있다. 

지난달초 사퇴하긴 했지만 '원조 친노' 출신으로 노무현 정부 때 '왕특보'로 불린 이강철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이 사외이사로 앉아 있었다.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 경제정책수석과 통계청장을 차례로 지낸 김대유 이사, 김대중 정부 때 과학기술부 차관, 노무현 정부 때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장을 차례로 지내고 2017년 대선 때 문재인 캠프에서 활동한 유희열 이사가 각각 2024년과 2025년까지 임기가 남아 있다. 이들 친노·친문인사들끼리 뭉치면 이사회 내부에서 여론을 좌우할 수 있다. 이들이 CEO 연임여부를 결정하면서 '그들만의 놀이터' 장기화를 꿈꾸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런 구조에서 CEO는 연임을 위해 이사회 멤버들과의 유착을 통해 '끼리끼리 왕국'을 세울 생각을 갖게 된다. 대외적인 이미지 개선을 위해 빠른 시간에 성과를 낼 수  있는 사업에만 주력하게 된다. 구 대표가 통신사 이미지를 벗어나려고 '디지털 플랫폼(디지코)'를 선언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물론 디지코를 통해 매출이 사상 처음으로 25조원을 넘는 성과를 나타내기도 했다. KT는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이 전년 대비 3.0% 증가한 25조6500억원, 연결 영업이익은 1.1% 증가한 1조6901억원을 기록했다. 

개선된 실적에 주가도 화답했다. 지난 2020년 구 대표 취임 당시 1만9700원이었던 KT 주가는 꾸준히 올랐다. 지난해 5월에는 장중 3만8500원을 넘어서며 9년여 만에 시가총액 10조원을 돌파하기도 했다. 하지만 차기 대표 선임 리스크가 불거지면서 주가가 하락, 지난 24일에는 3만450원으로 마감했다. 

이런 과정에서 직원들이 희생됐다. 낮은 처우를 감내해야 했던 것이다.

KT 임직원의 평균 연봉은 업계 3위인 LG유플러스에 뒤처지게 생겼다. LG유플러스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평균 연봉은 9400만원으로 이통3사 중 가장 낮다. SK텔레콤은 1억6200만원, KT는 9500만원이다. 이 가운데 LG유플러스가 지난해 6월 임단협을 통해 평균 임금 8.7%를 인상하기로 했다. KT는 지난해 11월 3%의 임금 인상에 합의했다. LG유플러스는 SK텔레콤에 이어 두번째로 1억원대 평균 연봉을 받게 됐다. 반면 KT 평균 연봉은 3% 인상돼도 1억원을 넘지 않는다. 

현재 KT의 지배구조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CEO와 이사회의 끈끈한 유대, 그리고 이를 위해 단기 성과 달성에 무리하게 매달리는데 있다. 

김상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은 최근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회의에서 "KT를 비롯한 대주주 없는 기업에서 한번 CEO가 되면 인적, 물적 자원을 총동원해 지지기반을 구축하고 거수기 이사회를 운영하면서 임기를 셀프로 연장하고 있다"며 "개인을 중심으로 소왕국을 세우는 '호족기업'이 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이런 잘못된 점을 서둘러 바로 잡지 않고서는 KT의 미래는 불확실해 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뉴스웍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