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정은지 기자
  • 입력 2023.03.28 17:31

"필요성 있지만 경제성 떨어져…프리미엄 브랜드 기득권 유지 전략"

유럽연합(EU) 깃발. (사진=픽사베이)
유럽연합(EU) 깃발. (사진=픽사베이)

[뉴스웍스=정은지 기자] 2035년부터 내연기관 차량의 신차 판매를 전면 금지하기로 한 유럽연합(EU)이 e-퓨얼(합성연료)를 사용하는 내연기관차는 예외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e-퓨얼의 효용성이 현저히 낮은 만큼, 대체 연료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지 귀추가 주목된다.

27일(현지시간) EU 의장국인 스웨덴 대변인은 ‘2035년 내연기관 신차 판매 금지·e퓨얼은 허용’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EU 에너지장관들은 집행위의 결정을 받아 28일 이사회에서 합의안을 최종 승인할 예정이다. 이는 탄소 배출량 감축을 위해 2035년 이후 모든 내연차 신차 판매를 금지한 유럽의회안에서 한층 완화된 결정이다.

e퓨얼은 재생 에너지로 물을 전기분해해 얻은 그린수소와 이산화탄소로 제조한 액체 연료다. 연소 과정에서 탄소가 나오지만 이미 공기 중에 포함된 탄소를 포집해 만들어 탄소중립을 이룬다는 논리다. 무엇보다 기존 내연기관을 그대로 쓸 수 있다는 장점이 크다. 

포르쉐 AG 이사회 멤버 바바라 프랑켈(왼쪽)과 마이클 슈타이너가 현장에서 생산된 최초의 합성 연료를 포르쉐 911에 주유하고 있다. (사진제공=포르쉐 AG)
포르쉐 AG 이사회 멤버 바바라 프랑켈(왼쪽)과 마이클 슈타이너가 현장에서 생산된 최초의 합성 연료를 포르쉐 911에 주유하고 있다. (사진제공=포르쉐 AG)

e-퓨얼 개발은 포르쉐·아우디·BMW 등이 적극 나서고 있다. 폭스바겐그룹 아우디는 2017년 연구시설을 설립했고, 자회사인 포르쉐는 칠레에 e-퓨얼 생산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올리버 집세 BMW 회장도 e-퓨얼에 힘을 쏟겠다고 밝힌 바 있다.

국내에서도 e-퓨얼을 상용화하기 위한 논의가 한창이다. 산업통상자원부를 필두로 현대자동차와 HD현대·SK에너지 등 기업들이 2021년 e-퓨얼 연구회를 발족했으며, 기업별로도 e-퓨얼 생산을 위한 투자와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다만 e-퓨얼은 생산 비용 대비 효율성이 떨어져 대체연료로 자리매김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는게 업계 중론이다. 각국 정부와 글로벌 기업들이 효율을 높이는 실험에 매진하고 있지만, e퓨얼 연료의 생산 비용이 석유화학 제품과 비슷한 수준으로 낮아지는 데는 최소 25년 이상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이항구 자동차융합기술원 원장은 "e-퓨얼의 현재 생산 비용은 1ℓ당 6000원 수준이고 생산 효율은 17%에 불과하다"며 "(e-퓨얼은) 필요성은 있으나 경제성이 낮다. 결국 보완 연료 수준 혹은 그 이하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퓨얼이 합리적인 가격으로 보급될 것으로 예측되는 시점에 글로벌 자동차 산업은 이미 전동화 중심으로 재편됐을 가능성이 높다. 이로 인해 e-퓨얼의 수요는 현저히 떨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결국 e-퓨얼 연료가 대체 연료로서 빛을 보기 어렵다는 의미다. 

이같은 상황에서 EU와 독일 정부를 포함한 여러 국가 및 기업이 내연기관 자동차 판매 기간을 연장하고 전망이 불투명한 e-퓨얼 연료 개발을 단행하는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프리미엄 브랜드들이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전략'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효율이 좀 떨어지더라도 e-퓨얼이 상용화만 된다면 BMW나 포르쉐 등 전통적인 프리미엄 브랜드들은 지금의 생산 및 판매 시스템을 유지할 수 있다. 그렇게 되는 것이 이들의 목적"이라며 "지금까지 지켜온 위상을 내려놓지 않으려는 방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탄소배출권과 관련한 과징금 제도가 새롭게 개편된다면 e-퓨얼 개발이 의미있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탄소를 배출하는 차량은 탄소세를 내야 하기 때문에 완성차 업체 입장에서 내연기관차는 이익률이 낮다"며 "하지만 과징금 제도가 e-퓨얼에 유리한 방향으로 개편된다면 시장 판도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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