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원성훈 기자
  • 입력 2023.06.07 17:06

양대 노총·경사노위 적극적 역할 없이 노동 개혁 성공 어려워

한국노동조합총연맹 관계자들이 7일 오후 전남 광양시 중동 한국노총 광양지역지부 2층 회의실에서 열린 '제100차 긴급 중앙집행위원회'에 참석해 투쟁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뉴스1)
한국노동조합총연맹 관계자들이 7일 오후 전남 광양시 중동 한국노총 광양지역지부 2층 회의실에서 열린 '제100차 긴급 중앙집행위원회'에 참석해 투쟁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뉴스1)

[뉴스웍스=원성훈 기자] 우리나라 노동계 양대 축의 하나인 한국노총의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보이콧(거부)은 정부의 정책 파트너 역할을 사실상 거부했다는 의미여서 주목된다. 특히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한국노총과 연대해 대정부 투쟁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정부에게는 양대 노총(한국노총·민주노총)과의 관계를 어떻게 무리 없이 풀어갈 수 있을지 숙제가 주어진 셈이다. 

한국노총은 7일 전남 광양 지역지부에서 중앙집행위원회를 열고 대통령 직속 노사정 기구인 경사노위를 통한 사회적 대화의 전면 중단을 결정했다. 

비록 경사노위를 탈퇴한 것은 아니지만, 거의 이에 준하는 극약처방을 결정한 것으로 해석된다. 또한 한국노총은 경사노위 탈퇴 여부와 시기에 대해 집행부에 위임했다.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은 이날 중앙집행위원회 인사말에서 "노동자의 삶을 지키기 위해 강력한 투쟁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사말에서부터 강경 투쟁을 예고한 셈이다. 

한국노총의 경사노위 보이콧(거부)은 지난달 말 경찰의 산하 노조원 간부 2명에 대한 강제 연행이 발단이 됐다. 김 위원장은 이날 "경찰의 폭력적인 진압은 정권의 의도가 개입되지 않고 일어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노동계에서는 한국노총의 보이콧은 시기의 문제였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그간 한국노총은 민주노총과 정부의 노동정책 방향에 대해 강하게 반발해왔기 때문이다. 노동 개혁을 '노동 개악'으로 규정짓고 올해 2월 민주노총과 연대 투쟁을 결정하면서부터 이미 예견된 상황이었다는 시각이다.

양대 노총은 노동조합 회계 투명화 대책,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 도심 집회 대응 등에서 정부와 지속 충돌해 왔다. 급기야 한국노총은 올해 5월 7년 만에 노동절 서울 도심 집회를 재개했다. 

우리나라 노조 지형은 양대 노총 조합원이 전체 조합원 대비 약 80%인 만큼, 양대 노총이 노동계를 양분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경사노위는 올해 2월 전문가 기구 2곳을 발족해 노동개혁 과제를 마련해 왔다. 하지만 경사노위는 민주노총에 이어, 이번에 한국노총까지 이탈하면서 노동계의 목소리를 대변하지 못하는 기구가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민주노총은 1999년 경사노위 전신인 노사정위를 탈퇴한 뒤 20여 년째 사회적 대화에 불참 중이다. 반면, 한국노총은 박근혜 정부 시절이던 2016년 1월 저성과자 해고를 가능케 하고 취업규칙 변경 요건을 완화하는 내용의 양대 지침 추진에 반발해 경사노위 전신인 노사정위 불참을 선언했지만, 2017년 10월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노동계 인사들을 청와대로 초청한 만찬 회동을 기점으로 노사정위에 복귀한 바 있다.

정부는 한국노총의 보이콧을 계기로 양대 노총 없이 일방적인 노동개혁을 추진하는 방향으로 전환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노동 개혁은 양대 노총으로 대표 되는 노동조합의 기득권을 낮추고 비노조 근로자의 권익을 높이기에는 오히려 이런 방향이 낫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노조 조직률은 약 14%에 그친다. 정부는 나머지 86%를 위해 노동개혁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릴 소지도 있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그동안 정부는 '새로고침노동자협의회'같은 노동정책 파트너를 모색해 오기도 했다. 

하지만 양대 노총을 배제한 노동 개혁은 노정 갈등을 더 심화시킬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대다수다. 특히 이미 연대 투쟁을 선언한 양대 노총이 앞으로 집회, 파업 등을 통해 대정부 공동 비판 수위를 높여가면 정부로서는 상당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한국노총은 이날 중앙집행위원회를 마치고 정권을 규탄하는 결의 대회를 열었다. 올해 들어 대규모 집회를 이어온 민주노총은 내달 2주간의 총파업을 준비 중이다. 민주노총은 근래 최대 규모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반면, 경찰은 도심 집회가 불법 양상이 되면 강경 대응에 나서겠다고 맞서는 상황이다. 

이처럼 노정관계가 '강대 강'으로 계속 갈 경우 최근 부진을 거듭하고 있는 국가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은 만큼, 정부로서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따라서 온건하고 합리적인 이미지를 굳혀 온 한국노총은 근로자의 권리를 보호하되 합리성을 잃지 않는 선에서 정부와 이른 시일 내 협상하고, 정부는 불법시위에 대해 단호히 대처하되 불법시위 진압 과정에서 발생한 잘못에는 겸허히 사과하는 선에서 노정관계 파국을 막아야 한다는 의견에 힘이 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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