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상우 기자
  • 입력 2023.06.18 14:00

자칫 ‘궈차오' 나타나면 매출 치명타…“예측 불가능한 중국 시장 의존도 낮추는 노력 필요"

아모레퍼시픽 상하이 사업장 전경. (사진제공=아모레퍼시픽)
아모레퍼시픽 상하이 사업장 전경. (사진제공=아모레퍼시픽)

[뉴스웍스=김상우 기자]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의 ‘막말’ 파문이 유통 업계로 확산할 조짐이다.

양국 관계가 급격히 얼어붙으면서 지난 2017년 주한미군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로 촉발된 ‘한한령’ 악몽의 재현 우려마저 나온다. 

1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중국 매출 비중이 큰 식품유통기업들은 이번 사태의 확전 가능성에 노심초사하고 있다. 앞서 싱 대사는 지난 8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만나 “중국 패배에 배팅하는 이들은 반드시 후회한다”는 등 우리 정부를 겨냥한 수위 높은 발언을 쏟아냈다.

이에 우리 외교부는 싱 대사를 초치하며 강력히 항의했다. 그러자 중국 정부도 정재호 주중대사를 불러내 맞불을 놓았다.

◆LG생건‧아모레, 중국 부진 속 '궈차오' 두렵다

이러한 살얼음판 분위기에 중국 사업 비중이 큰 식품유통기업들은 촉각이 곤두서고 있다. 행여나 중국 내 소비 트렌드인 ‘궈차오(国潮, 외국산을 구매하지 않는 애국 소비)’ 흐름과 맞물린다면 치명타가 불가피하다.

시장에서는 이미 LG생활건강과 아모레퍼시픽 등 중국 사업 비중이 큰 화장품 기업들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LG생활건강의 주가는 최근 한 달 사이 10% 이상 떨어졌다. 아모레퍼시픽 역시 같은 기간 약 11%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앞서 양사는 중국 내 코로나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으로 소비 활성화를 기대했지만, 올해 1분기 실적 반등에 성공하지 못했다. LG생활건강의 1분기 중국 매출은 1934억원을 기록하며 전년 동기 대비 12% 감소했다. 실적 하락에 따라 중국 시장 비중은 전년 대비 2%포인트 하락한 11%를 보였다. 지난해 중국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31.8% 역성장한 9073억원이다.

아모레퍼시픽 역시 부진을 거듭하고 있다. 같은 기간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지역 매출은 27% 감소한 2757억원이다. 아시아 시장에서 중국 매출은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증권가에서는 중국 매출이 약 1600억원, 영업이익이 15억원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이는 전년 동기 대비 각각 45%, 94% 감소다. 지난해 중국 매출은 7649억원으로 35% 줄어들었다.

LG생활건강은 실적 악화가 지속되자 이달 초 창사 첫 희망퇴직을 단행했다. 아모레퍼시픽 역시 중국 사업 부진에 2020년 창사 첫 희망퇴직을 실시하며 양사 모두 고강도 구조조정으로 몸집을 줄이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 화장품 기업들의 중국 사업 부진은 중국 기업들의 성장과 코로나 영향 등 복합적 측면이 있어 상황을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며 “양사 모두 중국 의존도가 매우 높아 전체 실적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사태는 중국 시장의 예측 불가능함이 여전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며 “장기적으로 중국 시장 의존도를 줄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중국의 한 대형마트에서 고객이 오리온의 '하오리요우파이'를 고르고 있다. (사진제공=오리온)
중국의 한 대형마트에서 고객이 오리온의 '하오리요우파이'를 고르고 있다. (사진제공=오리온)

◆중국 매출 비중 40% 오리온…한한령 악몽 '꿈틀'

식음료 기업들도 이번 사태가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오리온과 농심 등은 중국 매출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오리온은 지난해 중국에서만 1조1101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내수(8492억원)를 앞지르고 있다. 중국 시장 매출 비중이 40%를 넘는 만큼, 중국 시장 매출 타격은 전체 실적 하락으로 곧바로 이어진다.  

오리온은 지난 2016년 중국에서 1조3460억원이라는 최대 매출을 올렸으나, 이듬해 사드 보복사태로 인한 한한령에 매출이 7948억원으로 급감했다. 2018년까지 이런 영향으로 발목이 묶이는 등 1993년 중국 진출 이후 가장 큰 시련을 겪었다.

농심은 최근 미국 시장에서 ‘신라면’ 인기가 하늘을 찌르면서 중국 시장 매출을 추월했지만, 중국 시장은 여전히 매출 비중이 미국 다음으로 두 번째다. 농심의 중국 매출은 지난 2012년 약 900억원 수준이었지만 지난해 2055억원으로 10년 동안 약 130%의 성장세를 보였다. 하지만 오리온과 마찬가지로 사드 사태 당시 매출이 크게 꺾였다. 2016년 1693억원의 매출은 2017년 1465억원으로 줄어들었다.

지난해 중국 베이징에 약 300억원을 투입하며 세계 최대 두부공장을 준공한 풀무원도 사태를 예의주시 중이다. 풀무원은 2020년 중국 진출 10년 만에 첫 흑자전환을 달성할 만큼 오랫동안 인고의 시간을 보냈다. 정치적 리스크로 흑자 구조가 무너진다면 최근의 인프라 투자에도 악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업계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와 맞물려 볼 때 지난해 롯데웰푸드(옛 롯데제과)가 중국 유일의 생산기지였던 칭다오 법인을 매각한 것은 매우 적절한 조치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당시 롯데웰푸드는 제품 수출을 늘려 중국 현지 시장에 대응하는 등 중국 시장의 예측 불가능성 최소화에 초점을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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