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상우 기자
  • 입력 2023.08.06 14:00

보건의료노조 17개 지부, 중노위 'ADR' 수용…김태기 위원장 "임기 내 65%까지 높일 것"

우리나라 직장분쟁은 갈수록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디지털 기술 활용으로 인한 재택근무 일상화와 근로자의 권리요구 강화 등, 시시각각 달라지는 근로환경이 직장분쟁의 복잡함을 대변한다. 정부가 노동개혁을 공언한 것도 이러한 변화를 현장에 반영하기 위한 취지다. 노동개혁을 앞두고 역할이 더욱 늘어날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는 직장분쟁의 근본적 해결책으로 근로자와 사용자(고용주)의 ‘상호 존중’을 꼽고 있다. 뉴스웍스는 중노위가 최근 발간한 ‘노동분쟁해결 가이드북’을 통해 직장분쟁 예방을 위해 알아야 할 실천사항을 3회에 걸쳐 집중 조명한다.

(사진제공=중앙노동위원회)
(사진제공=중앙노동위원회)

[뉴스웍스=김상우 기자] #. 작은 시골 버스가 종점에서 출발하기 위해 대기한다. 80대 할머니는 버스에 다가와 기사에게 “짐 좀 많이 실어도 돼요?”라고 물었고, 버스 기사는 “안 돼요”라며 단호하게 말했다. 그럼에도 할머니는 다른 승객의 도움을 받아 상자 4개를 버스에 실었다. 이후 버스 기사는 할머니에게 화를 내며 절대 짐을 실을 수 없다고 승차를 거부했다.

결국 할머니는 승차거부를 당했고, 자신의 딸에게 이 일을 하소연했다. 딸은 버스 회사에 항의하며 해당 기사의 정식 사과를 요구했다. 회사도 기사에게 사과할 것을 종용했지만, 이 기사는 10㎏ 이상의 짐을 버스에 실을 수 없다는 표준약관에 따라 자신에게 잘못이 없다고 항변했다. 그러자 회사는 이 기사가 지금까지 두 번째 승차거부를 했다며 징계해고를 의결했다.

◆누가 옳고 그르냐가 아닌 ‘모두가 옳다’

위 사건은 파행으로 치달을 수 있었던 직장분쟁이 화해로 조정된 사건이다. 징계해고를 당한 기사는 이 회사의 소수 노조 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었고, 그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회사가 소수 노조를 탄압하고자 자신을 부당해고한 것이라 인식했다.

해당 사건을 들여다본 중노위는 양측의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보다 양측의 오해를 불식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봤다. 먼저 기사가 주장한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에서는 버스 회사의 표준 운송약관에 의거해 10kg 이상 물건을 버스에 실을 수 없게 규정하고 있다.

다만 동일한 법에서는 회사가 고객 서비스 제공을 위해 운수종사자에게 의무교육을 시키도록 규정하고 있다. 기사가 할머니의 짐을 실을 수 없었던 정당한 이유가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할머니에게 불친절하게 대한 것이 회사의 교육 시행과 어긋난 결과를 낳은 것이다.

또한 기사의 징계 수준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회사는 근로자 대표에 소수 노조위원장의 참석을 배제했고, 다수 노조 대표자가 소수 노조 지회장의 이해를 대변하지 못한 점 등은 잘못한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사진제공=중앙노동위원회)
(사진제공=중앙노동위원회)

중노위는 양측의 이해와 양보가 필요하다며 중재안을 제시했다. 해당 기사에게는 할머니께 친절하지 못했음을 인정하고, 향후 회사의 취업규칙과 단체협약의 준수를 제시했다. 이러한 이행조건의 성립을 근거로 회사는 징계해고를 철회하고, 다른 징계 조치도 일절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해당 사건은 양측의 화해가 이뤄지면서 큰 갈등 없이 마무리됐다. 중노위는 수많은 노동분쟁이 법정까지 가고 판결에 이르더라도 원천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봤다. 오히려 분쟁이 격화되는 경우를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중노위 측은 “사회적으로 첨예하게 대립하는 분쟁 사안도 서로가 한발씩 양보한다면 좋은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며 “모두가 옳을 수 있다는 전제하에서 타협점을 찾아야 하며, 궁극적으로 분쟁 사건에서는 아무리 좋은 판정이 나오더라도 화해보다 나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조정성립률 상승…‘대안적 분쟁 해결’ 선호

이러한 화해의 해결 방식은 개인 분쟁에 그치지 않고 노사관계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중노위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조정성립률은 56.7%를 기록해 지난해 같은 기간(51.1%)보다 5.6%포인트나 상승했다. 조정성립이란 노사 양측이 중재안을 받아들여 파업까지 가지 않는 것을 말한다.

올해 서울시버스는 교섭이 결렬돼 중노위에 조정신청을 하고 조정중지와 파업까지 이르는 기존의 방식을 깨뜨리면서 30년 만에 처음으로 사전조정을 통해 임금 타결을 이뤄냈다. 서울시버스의 모범적 타결이 선순환으로 작용해 부산·대구·인천·울산 등에서도 잇달아 조기타결이 이뤄졌다.

또한 직장 내 괴롭힘과 같이 개인 분쟁은 같은 기간 16.3%(551건) 증가했지만, 당사자 간에 화해로 사건을 종결한 비율은 지난해보다 2.1%포인트 증가한 31.8%를 기록했다. 특히 평균 사건처리 기간도 50.2일이 걸리면서 지난해보다 1.2일(28.8시간) 단축됐다. 최근 진행된 설문조사에서 노사 91%는 파업보다 전문가가 중재해 원만한 분쟁해결을 원한다고 응답한 바 있다.

중노위는 지난해 11월 취임한 김태기 위원장이 ‘대안적 분쟁 해결(ADR)’을 노동문제 해법의 우선순위로 두겠다고 밝힌 바 있다. ADR은 분쟁 당사자들이 해결방안을 스스로 찾을 수 있도록 전문가들이 중재에 나서는 협상 기반의 화해·조정·중재다.

지난달에는 중노위 중재 하에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 서울지역 병원지부의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을 평화롭게 끝마치기도 했다. 보건의료노조 17개 지부 중 12곳이 중노위의 ADR 방식의 조정을 받아들였다.

(자료제공=중앙노동위원회)
(자료제공=중앙노동위원회)

◆ADR 해결, 33%에서 65%까지

김 위원장은 ADR 제도가 확산된다면 분쟁해결에 소요되는 비용과 시간이 획기적으로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노동분쟁은 해결까지 평균 88일 이상이 소요됐다. ADR 제도를 활용한다면 그 기간을 평균 40일까지 단축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ADR을 통한 사건 해결이 70%대에 이른다. 김 위원장은 ADR 확대를 위한 체계적 프로그램 마련으로 자신의 임기 안에 ADR을 통한 해결 비중을 65%까지 늘리겠다는 청사진이다. 현재까지 전체 노동분쟁에서 ADR 해결은 33% 수준에 그치고 있다.

이처럼 ADR은 전통적인 소송 절차와 비교할 때 자유로운 절차에 따라 진행되며, 법적인 논리보다 이해당사자들의 협조와 양보에 기반을 둔다. 당사자들이 자율적으로 비공개적인 방법을 활용할 수 있고, 법적소송보다 신속하고 저렴하다는 장점이 있다. 더욱이 기업의 ESG 경영 실천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향후 중노위는 근로자와 사용자의 적극적인 참여와 인식 변화가 이뤄진다면, ADR이 빠르게 자리 잡을 것으로 기대했다. 특히 대다수 근로자가 노조 혜택을 받지 못하는 만큼, ADR을 통한 분쟁종결과 권리구제 확산이 노동분쟁 불평등 해소에도 기여할 것이라는 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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