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한익 기자
  • 입력 2023.11.24 18:44

[뉴스웍스=이한익 기자] 영국 시내를 가득 메운 태극기, 예포 41발, 황금마차 행진, 기마병 호위, 아리랑을 연주하는 왕실 근위대, 마중 나온 왕세자 부부, 왕실 전용 벤틀리 리무진, 첫 의회 연설.

영국을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받은 대우다. 찰스 3세 국왕은 한영수교 140주년을 맞아 대한민국 대통령을 즉위 이후 첫 국빈으로 초청했다. 

윤 대통령은 한국 대통령 최초로 한 영국 의회 연설에서 "최빈국이었던 나라가 반도체, 디지털 기술, 문화 콘텐츠를 선도하는 경제 강국, 문화 강국이 됐다"며 "도움을 받던 나라에서 도움을 주는 나라가 됐다"고 힘주어 말했다. 

'격세지감'이라는 말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한국과 영국 양국 관계는 구한 말 조영수호통상조약(1883년)으로부터 시작됐다. 당시 동방의 약소국이 서구열강과 체결한 다른 조약들처럼 불평등한 내용이었다. 이렇게 불평등조약을 감수했던 아픈 역사가 있는 대한민국은 세계 10대 경제 강국으로 성장했다. 

우리나라의 위상은 새로운 관계 정립을 위해 체결한 '다우닝가 합의'에서도 드러났다. 합의에 따라 한영 관계는 기존 '포괄적·창조적 동반자 관계'에서 '글로벌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했다. 영국과 수교를 맺은 이후 최고 수준의 관계 격상이다.

관계 격상으로 영국이 미국, 호주 등 극소수 국가와 시행 중인 '외교·국방 2+2 장관급 회의'가 신설됐다. 또 '한·영 전략적 사이버 파트너십'으로 '파이브 아이즈' 국가들과의 협력 네트워크 구축에 가까워졌다. 파이브 아이즈는 미국·영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 5개국이 참여하는 정보기관 공동체다. 이들은 특정 정보를 배타적으로 공유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자유무역협정(FTA) 개선 협상이 개시돼 경제적 처우도 대폭 진보될 전망이다. 영국은 세계 6위의 거대 시장이자 캐나다, 호주 등 영연방국가의 진출 거점이다.

원전 분야에서는 정부 간 업무협약(MOU)에 이어 원전 전 주기에 걸쳐 기업·기관 간에도 8건의 MOU가 체결됐다. 이에 따라 신규 원전 건설 참여 협의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19년 불발된 한국전력의 영국 신규 원전 사업인 무어사이드 인수 협의가 재개될 수 있다는 기대감도 나온다.

이번 대통령의 영국 국빈 방문으로 우리나라의 영향력이 커졌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물론 모든 공이 윤 대통령의 것은 아니다. 우리 기업·국민의 피와 땀으로 자란 국가 경쟁력이 일궈낸 것이다. 

하지만 야권에서는 연일 순방 성과를 깎아내리고 있다. 강선우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최근 논평을 통해 "국내에 곤란한 일이 너무 많아 있기가 불편하냐"며 "국민 혈세가 아깝지 않은 순방 성과를 내든지, 그럴 능력이 안 되면 외유성 순방 예산을 삭감해 청년과 연구개발(R&D) 예산 복원에 보태시라"고 했다. 

김희서 정의당 수석대변인도 "국내에 산적한 문제도 너무 많다"며 "한 달에 한 번꼴로 해외로 가버리는 대통령 때문에 국정 공백이 길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실 관계자가 "그동안 순방을 통해 54억달러(약 7조원)라는 막대한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다. 조금 순방 비용이 든다고 해서 이런 투자 유치 활동을 멈추게 된다면 오히려 국가적인 손해"라고 반박했지만, 비방은 이어지고 있다. 

또 세계 각국이 '원전이 끌고 신재생에너지가 미는' 무탄소에너지 개발과 수주에 몰두하고 있지만, 더불어민주당은 원전 수출보증 관련 예산 등 원전 생태계 정상화 예산 1813억원을 전액 삭감한 내년도 산업통상자원부 예산안을 단독 의결했다. 국정 운영 원동력을 봉쇄하려는 심산으로 읽힌다.

우리 경제와 산업이 과거보다 크게 부흥했다는 것은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하지만 정치권은 민생법안 처리를 뒤로한 채 연일 '방송통신위원장 탄핵', '대장동 클럽', '김건희 여사 관련 의혹'과 같은 정쟁만 이어가고 있다.

대외 관계의 '격세지감'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정치권도 국민이 '격세지감'을 느낄 수 있도록 이제 바뀌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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