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상우 기자
  • 입력 2023.11.29 17:40
지난 8월 서울 중구 서울스퀘어에서 열린 11번가 기자간담회에서 안정은 11번가 사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제공=11번가)
지난 8월 서울 중구 서울스퀘어에서 열린 11번가 기자간담회에서 안정은 11번가 사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제공=11번가)

[뉴스웍스=김상우 기자] 국내 주요 이커머스인 11번가의 최대주주인 SK스퀘어가 수천억원의 손실에도 불구하고 11번가 강제 매각을 결정했다.

2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SK스퀘어는 이사회를 소집하고 재무적투자자(FI)들이 보유한 11번가 지분 11.18%에 대해 콜옵션(우선매수청구권)을 행사하지 않기로 의결했다.

국민연금을 비롯해 새마을금고, 사모펀드(PEF) 운용사 H&Q 등으로 이뤄진 FI 컨소시엄은 SK스퀘어의 11번가 경영권 지분 80.26%를 가져와 동반 매도할 수 있는 ‘드래그 얼롱(Drag Along, 동반매도청구권)’을 행사해 제3자 매각이 가능해졌다.

앞서 SK스퀘어는 지난 2018년 기업공개(IPO)를 조건으로 국민연금 3500억원, H&Q의 블라인드펀드 1000억원, 새마을금고 500억원 등 총 500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5년 내 IPO에 실패하면 SK스퀘어가 원금에 연이율 3.5%의 이자를 더한 약 5500억원을 물어야 하며, FI 지분을 되사오는 콜옵션 조항까지 발동할 수 있다. 더욱이 FI는 SK스퀘어 지분까지 제3자에 매각 가능한 드래그 얼롱을 보장받을 수 있다.

11번가는 지난해 한국투자증권, 골드만삭스, 삼성증권을 상장주관사를 선정하며 IPO에 공을 들였다. 하지만 실적 부진으로 인한 현금유동성 악화에 무리한 IPO 추진이 시장 역풍을 불러올 것이란 분석이 쏟아지면서 결국 상장 마감인 9월 30일을 넘기고 말았다.

올해 계약 이행기간을 두고 IPO가 아닌 매각으로 방향을 틀었지만, 이커머스 플랫폼 큐텐과의 매각 협상도 틀어진 것으로 최근 전해졌다. 매각을 통한 FI 투자금 회수도 불발로 돌아가면서 남은 선택지는 '콜옵션 행사'와 '포기'로 좁혀진 것이다.

박정호 SK스퀘어 부회장이 지난 3월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2023’이 열린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SK쉴더스 지분 매각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제공=SK스퀘어)
박정호 SK스퀘어 부회장이 지난 3월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2023’이 열린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SK쉴더스 지분 매각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제공=SK스퀘어)

SK스퀘어의 콜옵션 만료는 내달 4일이다. SK스퀘어의 올해 3분기 기준으로 현금 및 현금성자산은 1조3159억원이며, 이는 콜옵션을 이행할 수 있는 수준이다. 그럼에도 콜옵션을 포기한 것은 11번가의 실적 개선이 쉽지 않다는 판단 때문이다.

11번가는 2020년부터 적자를 이어가 지난해 1515억원의 누적 영업손실을 냈다. 올해 1~3분기 누적 영업손실은 910억원으로 줄었지만, 이사회 임원들은 수천억원을 들여 지분을 사들이는 것은 부정적 요인이 많다고 판단했다.

11번가가 시장 매물로 나오게 되면서 몸값을 얼마나 받을 수 있을지도 관심사다. 2018년 투자 유치 때만 해도 2조7500억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았지만, 최근 큐텐과의 매각 협상에서 큐텐이 제시한 금액은 약 1조원에 그친 것으로 전해진다.

최근 11번가는 창사 이래 첫 구조조정을 단행하며 몸집 줄이기에 한창이다. 매각이 이뤄지더라도 낮은 가격에 팔리게 되면 SK스퀘어의 손실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SK스퀘어 입장에서는 최대한 높은 가격으로 팔아야 손해를 덜 볼 수 있지만, 실적 부진과 함께 한 차례 매각 시도가 수포로 돌아간 터라 새로운 인수자를 구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SK스퀘어의 콜옵션 행사 포기는 주주들의 반발을 고려한 판단으로 보인다”며 “최근 자본시장에서 유상증자 실시에 대한 부정적 여론으로 그룹 전체가 흔들리는 사례가 있었기 때문에, 수천억원의 손실을 보더라도 콜옵션 포기가 낫다는 계산”이라고 분석했다.

저작권자 © 뉴스웍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