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정은지 기자
  • 입력 2023.12.19 15:02
도요타의 자동차 생산공장 전경. (출처=도요타 홈페이지)
도요타의 자동차 생산공장 전경. (출처=도요타 홈페이지)

[뉴스웍스=정은지 기자] 일본 정부가 자국 기업을 보호하고 각 주요 시장에서 생존할 수 있는 자구책을 마련해 이목이 쏠린다.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의 세부 규정 발표에 이어 프랑스·이탈리아 등 유럽 국가들마저 외산 전기차에 빗장을 강화하자 국가 차원에서 기업 경쟁력 확보에 나선 것이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도 경쟁력 확보를 위한 산업계의 지원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덩달아 높아지고 있지만,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만큼 유연한 대응이 쉽진 않을 전망이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5개 전략 산업에 세제 혜택을 확대하는, 이른바 '일본판 IRA'를 이번 주 발표한다.

5개 전략 산업은 ▲전기차·배터리 ▲반도체 ▲재생항공연료(SAF) ▲그린스틸 ▲그린케미컬 등으로, 자국 생산량에 비례해 반도체는 20%, 나머지 4개 분야는 40%까지 법인세를 10년간 감면해 주는 것이 골자다. 세금 감면 규모는 전기차 1대당 40만엔, 항공 연료는 1ℓ당 30엔, 철강은 1톤당 2만엔이다. 

연간 순이익이 적자여서 법인세 감면 혜택을 받지 못하는 해에는 그 기간만큼 적용 시기를 늦추는 '이연제도'도 마련됐다. 반도체는 3년, 나머지 4개 제품은 4년간 적자를 낸 해의 법인세 우대를 이연할 수 있다.

일본이 이 같은 정책을 펼치는 이유는 기업들이 정부의 도움으로 경쟁력을 확보해 글로벌 시장에 대응하는 것이 각 시장의 서로 다른 정책에 맞춰 각개전투를 펼치는 것보다 수월하다는 판단에서다. 세계 주요국이 '탈중국'을 빌미로 IRA 정책을 제각각 펼치는 상황에서 정부의 지원으로 일본 기업들의 부담은 한층 줄어들 전망이다.

현대자동차의 유럽 생산기지인 체코 모라바슬레스코주 노소비체 공장에서 작업자들이 차량을 조립하고 있다. (사진제공=현대차)
현대자동차의 유럽 생산기지인 체코 모라바슬레스코주 노소비체 공장에서 작업자들이 차량을 조립하고 있다. (사진제공=현대차)

이런 각국의 정책에 따라 우리나라 기업들은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프랑스판 IRA로 인해 한국산 전기차 기아 '니로 EV'와 '쏘울 EV'는 프랑스 정부의 전기차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됐다. 기아는 슬로바키아 공장을 중심으로 전동화 생산 계획을 서두르고 있지만, 대규모 자본이 투입되는 데다 설비 구축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 만큼 당분간은 정책 변화에 따른 손실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앞서 미국은 중국 자본의 지분율이 25%를 넘는 합작사를 '해외우려집단(FEOC)'으로 확정하며 중국산 원소재를 쓰면 IRA에 따른 보조금 받을 수 없도록 못 박았다. 이에 업계는 배터리 핵심 소재에 대한 중국 의존도를 쉽게 끊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판단, 보조금을 포기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대차는 IRA를 적용한 가격에 맞춰 차량을 판매하기 위해 딜러사에 주는 인센티브를 늘리는 등 고육책을 강행하고 있다.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 기업들은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지만, 정부 지원은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라는 게 업계의 분위기다. 원자재 수급 다각화와 수출 다변화, 경쟁력 고도화를 위한 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하지만, 업계에선 FTA가 발목을 잡고 있는 만큼 정부가 발 벗고 나서서 국내 기업에 유리한 정책을 펼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시각이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기업들이 내수보다 수출에서 더 많은 혜택을 받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일본처럼 노골적으로 IRA를 진행하면 글로벌 시장에서 불이익을 받게 된다"며 "FTA에 어긋나지 않으면서도 국산차에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정부가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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