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채윤정 기자
  • 입력 2023.12.21 12:00
하역장에서 차량들이 선적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제공=현대글로비스)
하역장에서 차량들이 선적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제공=현대글로비스)

[뉴스웍스=채윤정·정은지·고지혜·정민서 기자] 2023년은 길고 길었던 코로나19 펜데믹이 공식적으로 끝을 맺은 한 해다. 코로나 위기 극복에 사활을 걸었던 산업계는 긴 시련이 끝이 났다며 한숨을 돌렸지만, 이번에는 전 세계적 인플레이션이라는 복병을 만나 악전고투를 거듭했다.

중국과 미국의 헤게모니 쟁탈전도 여전해 수출 주력 산업인 반도체가 크게 흔들렸고, 코로나 사태로 무너진 글로벌 공급망은 ‘요소수’ 등 각종 소재의 공급 위기를 촉발했다. 

다행히 시련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하늘길이 닫혔던 항공 업계는 다시 비상의 날개를 펼쳤으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발발한 전쟁 위기는 ‘K방산’의 위상을 드높였다. 과거 ‘굴러다니는 냉장고’라는 혹평을 들었던 한국 자동차는 이제 수출 주력 품목으로 발돋움해 전 세계를 호령하고 있다.

다사다난했던 올해 산업계 10대 뉴스를 상·하로 나눠 정리한다. 

(자료=뉴스웍스DB)
(사진=뉴스웍스DB)

1. 반도체 부진…31년 만에 대중 무역적자

중국과의 무역수지가 31년 만에 적자로 돌아섰다. 한국이 중국과 수교한 첫 해인 1992년 10억달러 무역 적자를 낸 이후 처음이다. 중국은 지난 2003~2018년까지 2008년만 제외하고 우리나라에 가장 많은 무역흑자를 안겨줬다. 하지만 이제는 반대로 우리나라가 돈을 퍼주는 입장으로 바뀐 것이다.

한국무역협회와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올해 1~11월까지 우리나라의 대중 수출은 1140억달러(약 150조5000억원), 수입은 1320억달러(약 171조4000억원)를 각각 기록했다. 180억달러(약 23조3712억원) 무역수지 적자로, 지난 1월 39억달러 적자를 시작으로 11개월 이어진 적자다. 180억달러 적자는 사우디아라비아를 대상으로 기록한 224억달러 적자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규모다.

적자를 낸 배경으로는 주요 수출 품목인 반도체가 크게 부진했던 점, 중국 의존도가 큰 이차전지 등 부품‧소재 수입이 가파르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반도체 수출 급감은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억누르겠다는 미국의 기술 제재와 함께 중국 내 경기침체가 한몫하고 있다.

근본적으로는 우리가 팔 수 있는 제품이 예전만 못하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막강한 내수 시장을 등에 업은 중국이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면서 이제는 반도체를 비롯한 일부 첨단산업을 빼고 중국에 팔 수 있는 제품이 갈수록 줄어들 것이란 우려다.

(사진=뉴스1)
(사진=뉴스1)

2. 고물가·고금리·고환율 ‘3고’…중기 줄도산 본격화

고물가·고금리·고환율 등 이른바 ‘3고’ 현상에 중소기업들이 줄도산 위기에 처했다. 올해 부실 징후 중소기업은 222곳으로 지난해보다 183곳보다 39곳 증가했다.

중소기업은 대기업 대비 담보용 자산규모가 작고, 재무기반이 취약해 고금리에 큰 영향을 받는다. 중소기업 대출 금리는 1년 넘게 평균 5%대로 유지되고 있으며, 고환율·고물가에 따른 경기 둔화라는 도미노 악재까지 더해지면서 대출 이자 부담이 심화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10월 말 기준 예금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잔액은 전월 말보다 3조8000억원 늘어난 998조원으로 사상 최대치다. 전체 금융권으로 확대하면 1400조원 돌파다.

중소기업의 대출 잔액은 코로나 사태 이후 급증세다. 코로나 이전인 2019년 10월 말과 올해 10월 말을 비교하면 283조원 증가했다. 그 이전 4년간의 증가액이 155조원으로 증가 규모가 2배에 육박한다.

3고는 중소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기업 역시 금리 급등과 주가 급락으로 자금조달이 여의치 않자 투자 계획을 무기한 연장하고 있다. 11월 기준 국내 5대 은행의 대기업 대출 잔액은 138조3119억원으로 전달보다 9267억원 늘었다. 연체율도 높아져 고금리로 인한 대출 부담이 산업계 전체로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출처=픽사베이)
(출처=픽사베이)

3. ‘챗GPT’ 부상에 산업 전 분야 AI 열풍

지난해 말 등장한 생성형 인공지능(AI)인 ‘챗GPT’는 산업계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왔다. 챗GPT는 마이크로소프트로부터 지원을 받은 오픈AI가 개발했으며, 출시 2개월 만에 월간 활성 사용자 수(MAU) 1억명을 달성했다. 현재 사용자 수는 15억명 수준으로 추산된다.

산업계는 챗GPT가 불붙인 생성형 AI 시장에 분주히 대응하고 있다. LG와 삼성은 각각 생성형 AI인 ‘엑사원’, ‘삼성 가우스’의 고도화에 나서고 있다. 2021년 12월에 첫선을 보인 엑사원은 올해 7월 이중언어모델을 탑재한 ‘엑사원 2.0’ 개발로 업그레이드가 이뤄졌다. 삼성 가우스 역시 성능 향상을 바탕으로 내년 출시 예정인 ‘갤럭시 S24’에 탑재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동통신 3사도 생성형 AI 서비스 탑재에 열을 올리고 있다. SKT는 ‘AI컴퍼니’로 전환하기 위해 내년도 조직개편에 AI 맞춤 4대 사업부를 구축했으며, KT와 LG유플러스도 AI 조직 신설과 실무자를 전진 배치했다.

지난 3월 한국어 특화 대규모 언어모델(LLM)인 ‘하이퍼클로바X’를 출시한 네이버는 최근 삼성전자와 협업해 1년 동안 개발한 AI반도체 솔루션을 공개했다. 엔비디아 등 타 기업 제품보다 8배 높은 전력효율을 자랑해 개발이 완료되면 하이퍼클로바X 구동에 쓰일 전망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일 서울 코엑스에서 개최된 '제60회 무역의 날 기념식' 행사에서 송호성 기아 사장에게 200억불 수출의 탑을 수여하고 있다. (사진제공=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일 서울 코엑스에서 개최된 '제60회 무역의 날 기념식' 행사에서 송호성 기아 사장에게 200억불 수출의 탑을 수여하고 있다. (사진제공=대통령실)

4. 현대차·기아, 7년 만에 수출 200만대 돌파

현대자동차와 기아가 올해 합산 수출 200만대를 돌파했다. 이는 7년 만의 기록이며, 수출 증가율은 10년 내 최고치다. 이러한 수출 증대로 인해 그동안 수출 품목 1위를 지켜온 반도체가 2위로 떨어지고 자동차가 1위로 올라설 가능성이 제기된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올해 1~11월까지 자동차와 자동차부품 수출금액은 838억달러(약 110조5900억원)로 집계된다. 지난해 수출액인 774억달러를 이미 넘어섰다. 수출 1위 품목인 반도체(853억달러)와는 15억달러 차이에 불과하다.

지난 2009년 이후 14년 동안 수출 1위를 지켜왔던 삼성전자는 올해 3위로 2계단 하락을, 현대차와 기아는 각각 1위와 2위로 올라설 전망이다. 현대차·기아는 올해 1~10월 각각 94만5062대, 86만7136대를 수출했다. 양사의 합산 수출 대수는 총 181만2198대다. 월 평균 18만대를 국내에서 생산해 해외로 판매했다. 이 흐름이 연말까지 이어지면 현대차·기아의 올해 합산 수출 대수는 210만대로 추산된다.

특히 고부가가치 차량 판매가 늘어나면서 수출액 증대가 두드러진다. 자동차 1대당 평균 수출단가는 2016년 1만4000달러에서 올해 2만4000달러로 7년 새 1만달러(68%) 높아졌다.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 (사진=뉴스1)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 (사진=뉴스1)

5. 하림, HMM 품고 재계 13위 부상

국적선사인 HMM의 매각 우선협상 대상자로 팬오션(하림그룹)·JKL 컨소시엄이 선정됐다. 인수제시액은 약 6조4000억원대로 추정된다. 매각 측과 세부협상 과정이 남았지만, 이르면 내년 상반기 중 매각과정을 끝마칠 것으로 전망된다. 

하림그룹이 HMM을 성공적으로 인수하면 자산이 42조8000억원으로 불어난다. 재계 순위도 기존 27위에서 13위로 14계단 뛰어오른다. 하림은 기존 보유한 벌크선사 팬오션과 컨테이너선사 HMM을 통해 종합물류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청사진이다. 

다만 투자은행(IB) 업계에서는 규모가 더 큰 회사를 인수하는 상황이기에, 하림그룹이 6조원 이상의 인수자금 조달 과정에서 ‘승자의 저주’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해운업황이 갈수록 나빠지는 다운사이클이 본격화된 점도 이러한 우려를 키우고 있다. 

학계에서는 지난 10여 년 동안 국내 항만산업이 구조조정 여파로 항만 터미널 등 인프라 확대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 하림의 HMM 인수가 국내 항만산업의 방향성에 큰 영향을 줄 것이란 진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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