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정은지 기자
  • 입력 2023.12.21 12:05
부산항에서 수출화물이 선적을 기다리고 있다. (출처=부산항만공사)
부산항에서 수출화물이 선적을 기다리고 있다. (출처=부산항만공사)

[뉴스웍스=정은지·고지혜·정민서 기자] 2023년은 길고 길었던 코로나19 펜데믹이 공식적으로 끝을 맺은 한 해다. 코로나 위기 극복에 사활을 걸었던 산업계는 긴 시련이 끝이 났다며 한숨을 돌렸지만, 이번에는 전 세계적 인플레이션이라는 복병을 만나 악전고투를 거듭했다.

중국과 미국의 헤게모니 쟁탈전도 여전해 수출 주력 산업인 반도체가 크게 흔들렸고, 코로나 사태로 무너진 글로벌 공급망은 ‘요소수’ 등 각종 소재의 공급 위기를 촉발했다. 

다행히 시련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하늘길이 닫혔던 항공 업계는 다시 비상의 날개를 펼쳤으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발발한 전쟁 위기는 ‘K방산’의 위상을 드높였다. 과거 ‘굴러다니는 냉장고’라는 혹평을 들었던 한국 자동차는 이제 수출 주력 품목으로 발돋움해 전 세계를 호령하고 있다.

다사다난했던 올해 산업계 10대 뉴스를 상·하로 나눠 정리한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사진제공=대한항공)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사진제공=대한항공)

6. ‘벌써 2년’…해 넘긴 대한항공-아시아나 합병

올해 결론이 날 것으로 점쳐진 대한항공-아시아나 인수합병(M&A)이 또다시 해를 넘겼다. 

EU집행위원회(EC)는 내년 2월 14일 전까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 심사를 끝마칠 방침이다. EC는 지난 5월 양사 합병으로 인해 유럽 노선에서 승객·화물 운송 경쟁이 위축될 수 있다는 보고서를 발표하며 심사를 중단한 바 있다.

이에 대한항공은 EC에 시정조치안을 제출하고 파리, 프랑크푸르트, 로마, 바르셀로나 등 유럽 4개 중복 노선의 대체 항공사 진입 지원과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부문의 분리 매각 등 후속방안을 마련했다.

만약 양사 합병이 무산된다면 3조6000억원에 달하는 공적자금 회수가 어려워질 수 있다. 여기에 인수를 목적으로 한 슬롯 반환의 국부 유출 논란과 함께 국내 항공산업 경쟁력이 뒷걸음질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반면, 이러한 고비를 모두 넘기고 합병이 이뤄진다면 다양한 시너지가 기대된다. 규모의 경제를 통한 비용 감소와 소비자 편익 증대, 국가 기간산업인 항공산업의 경쟁력 향상 등이 뒤따를 전망이다.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 합병이 완료된 2년 후부터 연간 3000억~4000억원가량의 합병 효과를 예상했다. 

롯데정밀화학이 이달 16일 울산항에서 베트남으로부터 들여온 차량용 요소 5500톤을 하역하고 있다. (사진제공=롯데정밀화학)
롯데정밀화학이 이달 16일 울산항에서 베트남으로부터 들여온 차량용 요소 5500톤을 하역하고 있다. (사진제공=롯데정밀화학)

7. 다시 찾아온 ‘요소수 대란’…민낯 드러난 공급망 정책

중국이 차량용 요소 수출을 막으면서 지난 2021년 우리 산업계를 크게 흔들었던 ‘요소수 대란’이 2년 만에 재현되고 있다. 정부는 요소수 6~8개월분을 확보했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코로나 사태로 불거진 공급망 충격이 여전하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특히 지난 요소수 대란 이후 공급망 다변화는 뒷걸음질 쳤다. 관세청에 따르면 차량용 요소의 중국 수입량 비중은 2021년 83.4%에서 지난해 71.7%로 줄었지만, 올해 1~10월 91.8%로 증가했다. 수입처 다변화 노력에도 불구하고 싼 가격과 수입 동선이 짧다는 이유에 중국 의존도가 절대적 수치를 보인 것이다. 

같은 기간 삼원계 배터리 양극재 원료인 전구체의 중국 의존도는 97%, 반도체 소재인 무수불산은 96.1%, 희토영구자석은 86.4%로 소재 다변화가 좀처럼 이뤄지지 않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산업 공급망 3050 전략’을 발표하고 반도체·배터리·자동차·조선 등에 사용되는 185개 핵심 소재의 특정국 수입 의존도를 오는 2030년까지 50%로 낮추겠다는 목표를 제시한 상태다. 

10월 16일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서 열린 국내 최대 항공우주·방위산업 전시회 '서울 ADEX 2023' 프레스데이에서 블랙이글스가 축하공연 시범 비행을 하고 있다. (사진=정민서 기자)
10월 16일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서 열린 국내 최대 항공우주·방위산업 전시회 '서울 ADEX 2023' 프레스데이에서 블랙이글스가 축하공연 시범 비행을 하고 있다. (사진=정민서 기자)

8. 진격의 'K방산'…반짝 아닌 '골드러시'

지난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시작된 전쟁 위기는 우리나라의 방산 경쟁력을 돋보이게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올해 우리나라의 방산 수출액은 135억달러(약 17조5000억원) 수준으로 추정된다. 당초 목표인 200억달러에 못 미치고, 지난해 173억달러보다 줄었지만, 수출국과 무기체계 확대라는 질적인 성과를 남겼다. 

수출 대상국은 지난해 폴란드 등 4개국에 그쳤지만, 올해는 아랍에미리트(UAE), 사우디아라비아 등의 중동지역부터 핀란드, 에스토니아, 노르웨이 등 유럽지역까지 총 12개국으로 세 배 늘었다. 수출 무기체계도 지난해 6개에서 올해 12개로 다변화해 지속 성장 가능성을 보여줬다. 특히 국내 방산기업들은 세계 최대 방산 시장인 미국 시장을 겨냥하고 있다. LIG넥스원은 미국 필라델피아 소재의 로봇 기업인 고스트로보틱스(GRC)를 인수하면서 미래 성장 플랫폼 확보와 동시에 미국 방산시장으로 보폭을 넓히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올해 호주와 3조원 규모의 보병전투장갑차 ‘레드백’ 수출계약에 그치지 않고 자체 개발한 다목적 무인차량 ‘아리온스멧(Arion SMET)’의 미국 진출을 타진 중이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경전투기인 ‘FA-50’을 발판으로 미국 해군과 공군의 훈련기 도입 사업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대한항공 '보잉 787-9'. (사진제공=대한항공)
대한항공 '보잉 787-9'. (사진제공=대한항공)

9. 엔데믹 탄 항공 업계…경영 정상화 날개폈다

항공은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최악의 시기를 보낸 산업이다. 코로나가 극심했던 2020년 하반기 국제선 여객수는 전년 같은 기간보다 97.2% 감소한 127만693명으로 쪼그라들었다. 

하지만, 엔데믹으로 전환된 올해부터 억제된 여행 수요가 폭발했다. 항공정보포털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1~11월까지의 국제선 여객수는 6164만명을 기록했다. 4년 만에 처음으로 6000만명을 돌파했으며,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여객수의 74%가량이 회복됐다. 

이는 항공사들이 엔데믹 전환과 동시에 노선 정상화와 기단 확대에 박차를 가하면서 여행 수요 폭발에 적시 부응한 결과다. 대형항공사는 유럽 등 장거리 노선을 중심으로, 저비용 항공사는 일본과 동남아시아 등의 단거리 노선을 재개했다. 

늘어나는 여객 수에 맞춰 승무원 인력의 확대도 두드러졌다. 대한항공과 제주항공, 티웨이항공, 이스타항공 등은 신규 채용을 진행하면서 예년 인력 수준을 점차 회복하는 중이다. 특히 티웨이항공은 올해만 총 4번의 객실승무원 채용을 진행하는 등 엔데믹 이후 달라진 저비용항공사(LCC) 주도권 다툼에 기민히 반응하고 있다. 

송호성 현대자동차 사장이 '2023 기아 EV 데이' 행사에서 기아의 미래 전동화 전환 전략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사진제공=기아)
송호성 현대자동차 사장이 '2023 기아 EV 데이' 행사에서 기아의 미래 전동화 전환 전략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사진제공=기아)

10. 주춤한 전기차…소비심리 악화에 성장폭 축소

완성차 업계의 신성장동력으로 주도권 경쟁이 치열했던 전기차(EV) 시장이 잠시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글로벌 전기차 시장 조사업체 EV볼륨스는 올해 글로벌 전기차 판매량 전망치를 기존 1430만대에서 1377만대로 하향 조정했다. 중국의 경기침체와 미국의 전기차 생산 지연, 유럽의 보조금 삭감 등이 주된 배경으로 지목된다. 국내에서도 전년 대비 10% 이상 판매가 저조해 전 세계적 추이와 궤를 같이했다. 

국내에서는 전기차의 높은 가격과 친환경차 보조금 축소, 고금리 영향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기에 정부가 내년부터 전기차 보조금을 축소할 가능성도 제기돼 전기차 보급 속도가 더 느려질 수 있다. 정부의 내년 전기차 보조금 예산은 총 1조7320억원으로 추산된다. 이는 올해보다 8.2% 줄어든 액수다. 업계에서는 차종별 보조금이 100만원 가까이 줄 것으로 보고 있다.

전기차 판매량이 주춤하는 사이 하이브리드 차량은 자동차 시장의 주축으로 떠오르고 있다. 하이브리드 차량의 올해 1~11월 신규 등록 수는 35만3647대다. 최근 5년 동안 전체 연료별 차종 중에서 하이브리드만이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하이브리드는 좋은 연비와 함께 충전 불편함이 없어 합리적인 선택지로 인기가 높아지는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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