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상우 기자
  • 입력 2023.12.27 11:00
편의점 출입문 앞에 담배가 진열된 모습. (사진=뉴스1)
편의점 출입문 앞에 담배가 진열된 모습. (사진=뉴스1)

[뉴스웍스=김상우 기자] 최근 학계를 중심으로 논의가 활발한 ‘담뱃값 인상안’이 정부의 물가안정 방침에 힘을 잃고 있다. 업계 일각에선 담뱃값 인상이 절실한 KT&G가 내년 4월 총선 이후에라도 인상안 재점화를 위해 물밑 작업에 나서지 않겠냐는 관측이 제기된다.

2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최근 정부는 주세법 개정안을 의결하며 물가안정에 사력을 다하고 있다. 주류세 인하를 통해 소주 가격을 억누르는 등 서민 품목에 대한 가격 단속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상태다.

정부의 이러한 방향성은 담뱃값과도 무관치 않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는 지난 17일 국회 인사청문회 서면 답변서에서 담뱃값 인상설에 “인상 계획이 없다”며 단호히 선을 그었다. 담뱃값 인상이 정부의 정책 방향과 어긋난다는 것을 간접 확인한 것이다.

최근 담뱃값 인상안이 수면 위에 오른 것은 학계 주장에서 비롯된다. 지난 5월 보건복지부와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은 ‘제36회 세계 금연의 날 기념식 및 포럼’을 통해 흡연율을 줄이기 위한 확실한 방법은 담뱃값 인상이라고 언급했다. 이달 7일 대한금연학회의 추계 학술대회에서도 ‘담배 가격정책의 현황과 전망’을 주제로 담뱃값 인상의 당위성이 강조됐다.

조홍준 울산의대 가정의학과 교수는 “정부가 총선 이후 담뱃값 인상을 단행할 것”이라며 구체적 인상 시기를 언급했다. 조 교수는 세수가 부족한 상황에서 담뱃값 인상만큼 증세에 효과적인 수단이 없다고 부연했다. 담배 한 갑에 매겨지는 세금은 74%로 담뱃값 인상이 정부의 세수 부족분 충당에 크게 기여한다고 설명했다.

국내 담뱃값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과 비교해 매우 낮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우리나라보다 담뱃값이 싼 나라는 콤롬비아, 멕시코, 튀르키예, 슬로바키아, 일본 등 5개국 정도다. 서홍관 국립암센터 원장은 담뱃값이 OECD 평균 수준으로 도달하고 청소년 흡연 방지와 전체 흡연율 감소 효과가 나타나려면 갑당 8000원이 적절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백복인 KT&G 사장 (사진=KT&G 홈페이지)
백복인 KT&G 사장 (사진=KT&G 홈페이지)

담뱃값 인상에 민감히 반응하는 곳은 국내 담배 시장 1위 사업자인 KT&G다. 올해 3분기 기준으로 KT&G의 국내 연초(궐련) 시장 점유율은 65.9%로 독보적이다. 2015년 담뱃값이 2000원 인상될 때 KT&G 영업이익률은 33.0%로 2014년 29.1%보다 4%포인트 늘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1조1969억원에서 1조3663억원으로 14.1% 증가했다. 2015년 담배소비량이 33억갑으로 2014년 43억갑보다 10억갑 줄어들었지만, 담배 소비량보다 담뱃값 인상이 KT&G의 수익성 제고에 큰 영향을 준 것으로 풀이된다.

KT&G는 원가 부담 압박이 심화되면서 담뱃값 인상에 목을 매는 상황이다. 주요 소재인 잎담배는 2021년 ㎏당 수입액이 5558달러였지만, 올해 3분기는 약 64% 증가한 9128달러를 형성하고 있다. 판상엽도 같은 기간 ㎏당 3487원으로 약 45% 올랐다.

궐련 시장이 점차 쇠퇴하는 점도 부담스럽다. KT&G는 지난해 국내 전자담배 시장에서 한국필립모리스를 따돌리고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했지만, 올해는 다시 한국필립모리스에 1위 자리를 내줄 것으로 관측된다. 궐련 시장의 압도적 위치와 다르게 전자담배 시장에서는 좀처럼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특히 코로나 기간 동안 KT&G의 실적을 견인한 부동산 사업부문은 부동산 시장의 한파로 인해 수익성이 크게 떨어졌다. 그동안 부업으로 실적 방어에 성공했다면, 이제는 본업 경쟁력에 따라 실적이 좌우되는 상황이다.

지난달 KT&G는 3분기 실적 컨퍼런스 콜에서 수익성 개선 계획을 언급하며 담뱃값 인상을 위한 물밑 작업을 암시했다. 김진한 KT&G 전략본부장은 “잎담배는 가격 안정세에 접어들기에 시간이 더 소요될 것으로 분석 중”이라며 “가격이 더 상승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수익성을 회복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KT&G는 행동주의 사모펀드의 ‘주주행동운동’으로 인해 60%에 달하는 소액주주가 요동칠 수 있어 실적 향상을 위해 담뱃값 인상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상황"이라며 "최근 학계의 인상안 주장들이 내심 불쏘시개가 되길 기대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물가잡기에 총력을 다하는 현실에서 담뱃값을 올린다면 이율배반적이라는 비판에 직면할 것”이라며 “내년 총선이 여당 승리로 돌아가더라도 담뱃값 인상은 추진하기가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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