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채윤정 기자
  • 입력 2024.03.04 21:00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출처=도널드 트럼프 SNS)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출처=도널드 트럼프 SNS)

[뉴스웍스=채윤정 기자] 오는 11월 열리는 미국 대통령 선거가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민주당 조 바이든 대통령의 대결로 사실상 확정된 가운데, 트럼프 전 대통령의 우세를 점친 여론조사가 발표되자 국내 배터리·반도체 업계의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다.

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집권 시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폐지한다고 공언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차기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점차 무게를 더하자, 국내 배터리 업계가 크게 긴장하고 있다. 더불어 미국에서 시행 중인 반도체 지원법 역시 트럼프 전 대통령 집권 시 폐지되거나 세부 사항이 바뀔 수 있다는 분석이 속속 제기되는 것도 시장 예측 가능성을 불투명하게 하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등 외신에 따르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전기차 보조금을 삭감하는 등 IRA 백지화를 언급했으며, IRA를 급진적으로 정비해 화석연료 생산을 극대화하는 방안을 주장하고 있다. 또 트럼프 전 대통령은 큰 폭의 관세율 인상을 예고한 바 있다. 그는 미국과 교역하는 국가의 모든 상품에 대해 기존 관세율에 일괄 10% 관세를 추가로 부과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IRA는 북미에서 최종적으로 조립한 전기차가 배터리 부품의 50% 이상을 북미에서 생산하는 등 일정 요건을 만족시킬 경우, 세액 공제 혜택을 주도록 규정하고 있다. 미국에서 생산하는 배터리에도 ㎾h당 35~45달러의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3일 CBS와 여론조사기관인 유고브가 지난달 28일부터 이달 1일까지 2159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율은 52%로, 바이든 대통령 48%를 4%포인트 차로 앞섰다. 비슷한 기간에 실시한 월스트리트저널(WSJ)의 여론조사(1500명 대상)에서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47%를 기록해 바이든 대통령(45%)을 2%포인트 앞질렀다. 폭스뉴스의 여론조사(1262명 대상)에서도 트럼프 전 대통령이 49% 지지를 받아 바이든 대통령(47%)을 앞섰다. 

LG에너지솔루션 오창 에너지플랜트. (사진제공=LG에너지솔루션)
LG에너지솔루션 오창 에너지플랜트. (사진제공=LG에너지솔루션)

◆트럼프 재 집권하면…IRA 폐지·축소 나설까

미국에서 IRA가 폐지되면 국내 배터리 업체들의 영업이익률이 크게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배터리 업계 1위인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해 미국으로부터 6700억원의 IRA 생산세액공제(AMPC) 혜택을 받았다. 올해는 3개 공장에서 연 130GWh를 생산해 2조원의 보조금 혜택을 받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지난해에는 미국 2개 공장에서 연 45GWh 규모의 배터리를 생산한 바 있다. 

업계 3위인 SK온도 지난해 6170억원의 AMPC를 받았다. SK온은 지난해 5800억원대의 영업손실을 기록했지만, IRA 효과로 전년 대비 영업손실을 45.8% 줄일 수 있었다. 올해 SK온의 AMPC 혜택은 1조원을 넘길 것으로 전망된다. 

배터리 업계에서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될 가능성에 대해 불안해하고 있다. IRA 폐지나 수정이 현실화하면 당장 실적에 큰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IRA 폐지나 축소 시나리오에 대응한 컨틴전시 플랜(위기 대응 계획)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강구상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북미 유럽팀장은 “IRA 수정이 현실화하면 일차적으로 미국에 합작법인 등 형태로 진출해 있는 국내 배터리 사들의 실적이 큰 피해를 볼 것"이라며 "이차적으로는 배터리 3사와 동반 진출한 기업까지 피해를 볼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통령이 되더라도 IRA를 폐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배터리 업체 한 관계자는 "상·하원 의원 선거에서 공화당이 절반 이상 당선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며 "이에 따라 트럼프가 당선되더라도 IRA 법안 개정 추진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또 다른 업체 관계자는 "미국 내 전기차 생태계를 유지하려면 IRA 혜택이 꼭 필요하다"며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되더라도 전기차 시장을 키우기 위해서 IRA 법안 폐지는 불가능할 것"으로 낙관했다. 

삼성전자 반도체 클린룸 전경, (사진제공=삼성전자)
삼성전자 반도체 클린룸 전경, (사진제공=삼성전자)

◆반도체 법 폐지·수정할 경우 '삼성전자 시장 전략 바뀔 것' 

미국에서 시행 중인 반도체지원법과 관련, 아직 삼성전자 등 국내 반도체 기업들은 수혜를 받지 못한 상태다. 하지만, 향후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높은 만큼, 반도체 업계에서도 트럼프 전 대통령 당선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 2022년 자국 내 반도체 생산 및 개발을 지원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규모는 527억달러(약 70조원)에 달한다. 최근 미국 러몬드 상무부 장관은 전체 지원 금액 중 반도체 제조사에 제공할 보조금 규모는 280억달러(약 37조3000억원)에 달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삼성전자, 인텔, TSMC는 미국에 10나노 이하 공정을 활용한 반도체 생산라인을 구축하고 있다. 3사의 투자 계획은 200조원이 넘는다.

미국 상무부는 최근 자국 반도체 기업인 글로벌파운드리스의 뉴욕주·버몬트주 신규 설비 투자 및 증설을 위해 15억달러(약 2조40억원)를 지원하기 위한 예비 협약을 체결했는데, 이는 반도체 법 시행 후 가장 큰 규모의 지원이다. 또한 미 상무부는 인텔과 100억달러(약 13조3550억원) 규모의 지원 방안도 논의 중이다. 

최근 WSJ 등 주요 외신은 미국 상무부가 글로벌파운드리스를 시작으로 인텔, TSMC, 삼성전자 등에 수십억 달러 규모 설비투자 지원 계획을 속속 공개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이미 삼성전자를 비롯한 170여 개 반도체 업체가 보조금을 받기 위해 460개가 넘는 투자의향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정부 관계자도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워싱턴 주미대사관에서 한미 외교장관회담을 가진  "조만간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라고 언급, 삼성전자의 수혜를 시사했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이날 회담 직후 현지 특파원과 만난 간담회에서 "우리 입장을 여러 경로를 통해 전달했다"며 "미 상무부에서 반도체 법 관련 소식을 조만간 발표할 계획인데, 이때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집권할 경우, 수혜 여부는 불투명해진다. 이미 반도체 업계에서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하면 자국 기업에 대해 지원을 집중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선회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반도체 업체 한 관계자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되면 반도체 부문에서도 보조금 집행 계획을 아예 무산시킬 수 있다"며 "그렇게 되면 현재 파운드리 사업 등에서 고전하고 있는 삼성전자로서는 아예 반도체 전략에 큰 변화를 줄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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