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다혜 기자
  • 입력 2024.03.06 18:31

[뉴스웍스=김다혜 기자] 유통 업계가 ‘10년 족쇄’를 풀지 못할 전망이다. 

6일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1월 민생토론회에서 대형마트도 새벽 배송을 할 수 있도록 영업 규제를 합리화하기로 했다”며 “이를 전국으로 확대해야 맞벌이 부부 및 1인 청년 가구의 생활 여건이 크게 개선될 것”이라고 강조하며 대형마트 규제 완화에 힘을 실었다.

하지만 21대 국회 임기가 오는 29일 마무리되는 가운데 4월 총선을 앞두고 임시국회가 열릴 가능성마저 낮아 ‘유통산업발전법(유통법)’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기는 사실상 어려워 보인다.

유통법 개정안은 월 2회 공휴일에 의무적으로 실시한 대형마트 휴업일이 평일로 전환하고, 자정부터 오전 10시까지 제한됐던 대형마트의 온라인 배송을 허용하는 등, 대형마트와 관련한 규제를 완화하는 게 골자다. 

지난 2012년 제정된 해당 규제는 전통시장과 골목상권, 그리고 대형마트 간의 상생을 위해 만들어졌다. 이후 10년 동안 오프라인 유통시장 내 경쟁이 오프라인과 온라인 유통시장의 경쟁으로 변화하면서 유통법 본래의 도입 취지가 퇴색되고 있다.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2020년 판매액을 100으로 가정했을 때, 인터넷쇼핑 판매액 지수는 2010년 20.9에서 지난해 122.8로 급증했다. 반면, 같은 기간 대형마트의 판매액 지수는 110.2에서 95.6으로 떨어졌다. 일반슈퍼마켓 및 잡화점 판매액 지수 역시 116.0에서 86.1로 줄었다. 오프라인 유통 시장이 규모와 관계없이 모두 어려움을 겪으며 대세가 온라인으로 기울었다는 점을 명백히 보여준다. 즉, 오프라인 유통시장만의 상생이 무의미해진 것이다.

지난 2013년부터 10년 동안 이어진 베이커리 프랜차이즈 업계의 출점 제한 규제 역시 뒤바뀐 업계 환경과 동떨어져 있다. 베이커리 프랜차이즈 출점 규제는 동네 빵집과의 상생과 보호를 명분으로 삼았었다.

관련 규제로 파리바게뜨와 뚜레쥬르 등으로 대표되는 베이커리 프랜차이즈들은 성장동력을 잃었다. 전년 점포 수 대비 출점이 2% 이내로 제한됐고, 동네 빵집인 중소 제과점과는 500m 떨어진 곳에서만 출점이 허용됐다.

하지만 10년이 흐른 지금, 카페 프랜차이즈 업체부터 대형마트, 편의점, 외곽지역에서 운영되는 대형 베이커리 업체들, 여기에 온라인으로 판매되는 베이커리 제품들까지 빵 판매 채널이 다양해졌다. 동네 빵집과 베이커리 프랜차이즈만의 상생을 외친 규제가 베이커리 업계를 아우르지 못하며 실효성을 잃은 것이다.

변화의 속도에 발맞추지 못한 녹슨 족쇄로 피해를 본 건 지배적 사업자로 분류된 대형마트와 대형 베이커리 프랜차이즈만이 아니다. 이들의 가로막힌 성장이 소비자에게 부메랑이 되면서 선택권이 좁아지고 편익이 저해되고 있다. 공정한 경쟁으로 소비자가 더 많은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새로운 개선책이 절실한 시점에서 정치권의 정쟁에 공허한 메아리만 가득한 실정이다. 

이른바 ‘붉은 깃발법’으로 불린 영국의 적기조례법처럼 우스꽝스러운 장면을 언제까지 목격해야 할까. 1860년대 제정된 붉은 깃발법은 세계 최초의 자동차 교통법이지만, 감정에 떠밀린 규제 방식이 어떠한 결과를 초래하는지 잘 보여준 사례다. 

해당 법은 증기자동차 등장에 위기를 느낀 마부들과 마차업자들이 주도했다. 한 대의 자동차에 무려 세 사람의 운전수가 의무적으로 타야했고, 기수 역할을 맡은 운전사는 수시로 붉은 깃발을 들어 마차에 위험 신호를 보냈다. 말과 마주친 자동차는 무조건 정지하는 등 30년 동안 해당법을 이어갔다. 결국 산업혁명 본산인 영국은 독일과 프랑스 등 자동차 후발주자들에게 주도권을 내줬다. 바로 어설픈 규제의 폐해다.

한참 늦었지만 이제는 관련 법에 칼을 댈 시기다. 정치권이 잘못을 알고도 방임하는 것은 훗날 한국판 ‘붉은 깃발법’으로 톡톡한 오명을 쓰기에 충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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