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허운연 기자
  • 입력 2024.03.09 09:40
대구 보훈병원 방문간호사(왼쪽)가 스마트 약상자를 이용해 국가유공자 김갑생씨에게 복약 지도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KT)
대구 보훈병원 방문간호사(왼쪽)가 스마트 약상자를 이용해 국가유공자 김갑생씨에게 복약 지도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KT)

[뉴스웍스=허운연 기자] 병원을 집단 이탈한 전공의들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8일부터 간호사들이 본격 투입됐다. 정부가 이날부터 '간호사 업무 시범사업 보완지침'을 마련해 시행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보완지침은 간호사의 숙련도와 자격에 따라 전문간호사·전담간호사('PA' 간호사)·일반간호사로 나눠 업무 범위를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날부터 간호사들에게 심폐소생술, 응급약물 투여 등 불법진료로 규정된 의료행위 일부가 허용됐다. 대법원 판례를 통해 금지된 사망 진단 등 5가지 행위와 대리수술, 전문의약품 처방 등 9가지를 제외하면 다양한 의료행위를 의료기관장 책임 아래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또 모든 간호사가 심전도·초음파 검사, 일반·시술 상처·단순 욕창 등 단순 드레싱, 혈액채취 등 중심정맥관 관리, 응급상황 심폐소생술, 응급 약물 투여 등을 할 수 있게 됐다.

다만 일선 병원에서는 업무 범위 확대에 대한 내용을 협의해야 하기 때문에 일선 의료현장에서 적용되기에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병원 측과 노조 측이 협의해 병원장이 간호사의 업무 범위를 정해야 하는데, 이 부분에서 상당한 진통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 소재 대학병원에 근무하는 간호사 A씨는 "의료인의 업무범위, 면허 등을 규정하는 것은 정부가 해야할 사항이지 병원장에 넘길 사안이 아니다"며 "전공의 집단 사직으로 의료공백이 발생했을 때도, 법적으로 업무가 명확히 정해져있지 않으니 간호사가 의사 ID로 대리 처방을 내고, 소변줄을 연결하는 상황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간호사들은 의사의 업무를 보조해온 PA(진료보조) 간호사들은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다만, 의사의 업무를 새롭게 맡게 된 간호사들은 교육 부족, 숙련도 부족 등으로 인해 의료사고가 발생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서울 소재 대학병원에 근무하는 간호사 B씨는 "전담간호사는 이날부터 수술부위 봉합을 할 수 있게 되는데, 병원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하지도 않고 바로 (수술에) 투입할 까 두렵다"며 "진료공백을 메꾸자는 정책이 오히려 환자 안전을 위협할까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걱정했다. 

의사 업무 떠넘기기라는 의견도 있었다.

간호사 C씨는 "지금도 의사의 잘못된 오더를 간호사가 대신 거르는 등 의사 업무를 대신하고 있는 것이 많다"며 "의료행위 1개당 수가가 책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간호사가 할 수 있는 의료행위 범위만 늘리는 것은 '의사 업무 떠넘기기"라고 평가했다. 

간호사들은 의사업무를 간호사가 수행하는 과정에서 의료사고가 났을 때 간호사가 제대로 된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없다는 점을 강력하게 내세우고 있다. 

수도권 소재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 D씨는 "현행 의료법에 PA간호사는 없다. 법에 없기 때문에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라며 "임시로 심폐소생술을 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된다고 해도 법적 보호를 못 받는데 어떤 간호사가 나서서 하려고 하겠나"고 반문했다.

보건의료노조 관계자는 "의료사고 소송은 병원만이 아니라 개인에게도 제기되기 때문에 의사업무를 수행한 간호사도 소송을 피할 수 없다"며 "의료사고 면책이 명확히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서 '불법의료행위자'로 내몰리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노조는 어떤 경우에도 ▲대리처방 ▲동의서·의무기록 대리 작성 ▲대리 처치·시술 ▲대리 수술 ▲대리 조제 등 '5대 무면허 불법의료행위'를 거부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대한간호협회는 이번 조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간협은 이날 성명서를 통해 "그동안 간호사의 업무범위는 법으로 정해지지 않아 법의 사각지대에 있었다"며 "정부가 간호사의 업무 범위를 명확히 하고 법적 보호를 해주겠다고 한 것은 대한민국 의료체계를 한 층 발전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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