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문병도 기자
  • 입력 2024.03.21 14:47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 (출처=권도형 엑스)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 (출처=권도형 엑스) 

[뉴스웍스=문병도 기자] 가상화폐 '테라·루나' 사태의 핵심 인물인 권도형 씨가 결국 우여곡절 끝에 본인의 희망대로 한국행을 관철했다.

몬테네그로 항소법원은 20일(현지시간) 홈페이지를 통해 권 씨의 한국 송환을 결정한 포드고리차 고등법원의 판단을 확정했다고 발표했다. 

그 동안 한국과 미국은 권 씨의 신병 확보를 두고 쟁탈전을 벌였다. 

권 씨의 한국 송환이 확정된 것은 한국 정부의 발 빠른 대응 때문이다. 권 씨가 지난해 3월 23일 몬테네그로 포드고리차 국제공항에서 위조 여권이 들통나 체포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한국 법무부는 다음 날인 3월 24일 영문 이메일로, 3월 26일에는 몬테네그로어 이메일로 권 씨에 대해 범죄인 인도를 요청했다.

몬테네그로에 대사관을 두고 있었지만 미국은 우리보다 사흘 늦은 지난해 3월 27일 몬테네그로 법무부에 공문을 보냈다. 그마저도 공식적인 범죄인 인도 요청은 없었다. 미국보다 사흘 앞선 한국이 미국을 따돌리고 권 씨를 우리 법정에 세울수 있게 된 것이다.

그동안 권 씨 측은 법원에 한국으로 보내달라고 강력 요구해왔다.

한국은 경제사범 최고 형량이 약 40년이지만, 미국은 개별 범죄마다 형을 매겨 합산하는 병과주의를 채택해 100년 이상의 징역형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여러 범죄를 저질러도 가장 무거운 죄에 내려질 형벌의 2분의 1까지만 가중 처벌하는 '가중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최대 형량은 40년이다. 반면 미국은 여러 범죄에 각각의 형을 매긴 뒤 합산하는 '병과주의'를 따른다. 유기징역 상한선이 없어 100년 이상 징역도 가능하다.

지난해 미국 뉴욕 연방검찰은 권 씨를 8개 범죄 혐의로 기소했고, 미 증권거래위원회(SEC)는 권 씨와 테라폼랩스를 증권사기 혐의로 각각 고소한 상태다.

권 씨가 미국으로 송환되면 중형에 처해질 가능성이 높았다. 앞서 고객 자금을 빼돌린 혐의로 기소된 샘 뱅크먼-프리드 가상화폐 거래소 FTX의 창업자가 다음달 재판에서 사실상 종신형인 100년형 이상을 받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권 씨 역시 중형을 면하기 어렵다는 관측이 나왔다. 하지만 한국 법정에 서게 됨에 따라 100년의 중형을 피할 수 있게 됐다.

테라-루나 사태는 2022년 5월 개발자 권도형과 신현성이 설립한 테라폼랩스에서 발행한 암호화폐 테라USD와 그 가치를 유지하기 위한 자매 코인인 루나가 대폭락한 사건이다. 당시 업비트 기준 시가총액 4위면서 개당 10만원에 달하는 루나가 한순간에 개당 1원도 되지 않는 수준으로 폭락했다. 그 여파로 디파이 플랫폼 '셀시우스', 미국의 13조원대 대형 헤지펀드 '쓰리애로우즈캐피탈'이 파산했으며 업비트는 루나코인을 상장 폐지하는 등 연쇄 반응이 일어났다. 국내 피해자만 20만명이 넘고 투자자 피해액은 총 50조원을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검찰은 권 씨의 재산 71억원을 포함해 공범들의 재산 2400억원 상당을 추징해 두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권 씨의 한국 송환 결정이 소송 진행 측면에서 유리하고 국내 피해자가 우선 순위로 배상을 받는 데에도 이점이 있다고 보고 있다.

권 씨는 테라·루나 폭락 사태 직전인 지난 2022년 4월말 출국해 본사가 있는 싱가포르에 머물다 같은 해 9월 아랍에미리트(UAE)를 거쳐 세르비아로 도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그는 몬테네그로 포드고리차 공항에서 위조된 코스타리카 여권을 사용해 두바이행 전용기를 타려다 체포됐다.

블룸버그 통신은 권도형 씨 한국 송환을 두고 몬테네그로 법원이 미국에 '모욕을 줬다'며 화이트칼라 범죄에 대한 형량이 미국보다 낮은 한국으로의 범죄인 인도를 선호한 권 씨와 그의 변호인단의 승리라고 촌평했다.

저작권자 © 뉴스웍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