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5.11.10 16:43

맡긴 임무에 등을 돌린다는 뜻의 낱말이다. 일본식 조어다. 고대 동양 문헌에서는 용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경제와 산업 분야에서 흔히 사용해 이제는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말이다. 의미의 연결 또한 그렇게 억지스럽지는 않다. 

앞 글자 背(배)의 원래 새김은 사람의 등이다. 이 글자에 앞서 한자 세계에서 사람의 등을 표시했던 한자는 北(북)이다. 우리는 이 글자를 다른 음으로도 읽는다. 패배(敗北)에서의 ‘배’다. 그 점이 지금 우리가 말하려는 背(배)와 같은 맥락이다. 

역시 한자세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전쟁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등’이라는 의미에서의 北(배)라는 글자는 두 사람이 등을 맞대고 있는 모습이다. 이로써 사람의 등을 가리키는 의미로 먼저 자리를 잡았던 듯하다. 방위(方位)를 가리키는 의미는 나중에 덧붙여진 듯하다. 

원래는 두 사람이 등을 맞대고 있다는 점에서 사람의 등을 가리키는 한자로 자리를 잡았고, 그와 비슷한 흐름에서 싸움으로부터 등을 보이는 사람의 의미를 얻었던 듯하다. 싸움터에서 등을 보인다는 일은 무엇일까? 그 자체가 바로 패배(敗北) 아니라면 달리 설명할 말이 없다. 결투에서 먼저 등을 보인다는 점은 뒤로 내뺀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옛 왕조 시대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앉는 이는 임금이다. 그 임금은 늘 북쪽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옛 예법이 그렇게 정했다. 그는 북쪽에 자리를 잡고 앉아 남쪽을 바라보는 자리에 머무는 게 보통이다. 따라서 임금의 등은 북쪽을 가리키는 방향이다. 그렇게 임금이 북쪽에 자리를 잡고 앉아 얼굴을 남쪽으로 향하고 있는 형국, 등이 가리키는 방향을 北(북)이라는 글자로 표현했을 것이다. 

背(배)는 北(북)의 글자 바탕에다가 사람의 몸을 가리키는 ⺼(육, 月과 다름)이 붙음으로써 확실하게 사람의 등을 지칭하는 글자로 자리를 잡았다. 이 글자의 쓰임새도 퍽 많다. 머리가 향하면 ‘좇음’이다. 그를 向(향)으로 표현하고, 그 반대로 등이 향하는 곳을 背(배)라고 한다면 향배(向背)다. 좇느냐, 아니면 등을 보이고 반대의 방향으로 달리느냐를 묻는 낱말이다. 등으로 향한 경치와 모습을 가리키는 낱말은 배경(背景)이다. 

배반(背反)은 등을 돌리는 일이다. 좇다가도 등을 보이며 돌아서는 일이다. 배반(背叛)이라고 적어도 뜻은 통하지만, 앞이 행위의 전반을 가리키는 데 비해 뒤는 정치적인 의미에서의 반란이라는 의미를 조금 더 간직하고 있다. 배치(背馳)라는 말은 등을 보이고(背) 서로 달리는(馳) 일이다. 서로 어긋나는 의견이나 행위를 보이는 경우다. 

제가 할 임무를 잊거나, 고의적으로 저버리는 일이 배임(背任)이다. 세상살이에 그런 일 자주 벌어진다. 약속을 어기고 등을 돌리는 일 말이다. 요즘은 기업 오너들이 이 행위 때문에 옥살이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법이 정한 배임의 범위가 모호하고 폭이 너무 넓어 문제의 소지가 크다.

기업인이라는 이유로 역차별을 받게 할 수는 없다. 법이 정하는 배임의 범위와 한계를 세분하면서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마침 이 가을의 식생처럼 우리 경제 또한 쇠락(衰落)과 조락(凋落)을 반복하는 분위기다. 그런 마당에 모호한 범위의 배임을 가을 서리, 추상(秋霜)처럼 기업인들에게 적용한다면 얼마나 살풍경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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