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벼리기자
  • 입력 2016.10.12 13:53
[뉴스웍스=김벼리기자] 징크스는 역시 징크스였을까.
 

지난 11일 한국과 이란이 이란 테헤란에서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4차전을 치렀다. 결과는 1-0 이란 승. 이로써 한국 대표팀은 ‘42년간 이란 원정경기 전패’라는 오명을 얻었다. 그렇다고 ‘석패’도 아니었다. 비록 1점차이지만 경기 내용면에서 한국은 이란에게 말 그대로 ‘압도’당했다. 실제로 한국 선수들은 이란 골대를 향해 단 한 차례의 슛도 쏘지 못했다.

그런데 정작 기자가 눈살을 찌푸린 지점은 따로 있었다.

"우리에게는 카타르의 소리아 같은 공격수가 없었다."

경기 직후 패인을 묻는 질문에 슈틸리케 한국 감독이 답한 내용이다. 기가 찰 노릇이다. 기본적으로 축구는 11명의 선수들이 같이 호흡하는 팀스포츠다. 특히 ‘전술·전략’을 강조하는 현대 축구의 경향을 염두에 두면 이 같은 슈틸리케의 답변은 ‘변명’이자 ‘남 탓’에 불과하다.

스포츠에는 우연적 요소가 많다. 여러 변수들에 따라 이길 수도 질 수도 있는 것이 스포츠다. 따라서 진정한 문제는 승·패 여부가 아니라 경기를 치른 뒤 문제점을 냉철히 파악, 개선하고 강점은 극대화하려는 자세다. 만약 네가 잘못했느니, 내가 잘했느니 식의 변명과 남 탓으로 일관하는 태도로 가득한 팀에게 승승장구를 기대하는 사람이 있다면 “차라리 축구에 관심을 끊는 편이 낫다”고 조언하겠다.

그런데 이런 ‘어이가 없는’ 상황은 축구에서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 전반에서도 똑같이 벌어지고 있다.

가장 최근 삼성 ‘갤럭시 노트7’ 배터리 화재 및 단종 사태부터 한진해운 법정관리, 대우조선해양 비리, 자동차 및 물류 파업, ‘역대 최고’ 청년실업률, 치솟는 가계부채와 갈수록 심화하는 양극화 등 한국경제는 악재에 악재를 거듭하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 9월 자동차 수출은 전년보다 24% 줄었고, 무선통신기기 역시 27.9% 감소했다. 앞으로 감소폭은 더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수출의존적인 한국 경제에는 치명적인 상황이다.

문제는 경제적 차원에 그치지 않는다. 세월호 및 경주 지진 사태 등에서 드러난 국가 안전시스템 결여, 중국 어선에게 우스운 꼴로 조롱당한 공권력, 끝을 모르고 줄어드는 결혼·출산율, 개선은커녕 악화일로를 걷는 남북관계, 총알 뚫리는 방탄복을 납품해온 ‘신개념’ 방산업체 등등. 정치·사회·문화 전반적인 영역에서 문제들이 산적해있다.

이렇게 끊이지 않는 ‘연패’ 속에서, 그러나 ‘한국 사회의 감독’ 국회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가. 문제해결보다는 ‘네 탓’, ‘남 탓’ 공방에만 몰두하며 변명으로만 일관하고 있지 않은가. 마치 슈틸리케처럼 말이다.

‘20대 국회’ 개원 6개월이 동안 여야는 총 2336건, 하루에 18건 가량의 법안을 발의했지만 단 한건도 처리하지 않았다. 불체포특권과 면책특권을 제한하는 국회법 개정안 및 친인척 보좌진 채용 금지법안뿐만 아니라 새누리당이 밀고 있는 청년기본법과 서비스발전기본법, 노동개혁법안 및 규제프리존특별법, 경제민주화 개념을 담은 더불어민주당의 상법 개정안, 국민의당의 공정거래법 개정안 등 굵직굵직한 법안이 있는 상황인데도 말이다.

이는 입법부 본연의 임무를 저버린 명백한 직무유기다. 4·13 총선 이후 한목소리로 외친 ‘협치’는 어디다 팔아먹은 건지 여야는 당리당략에만 골몰하며 숱한 파행과 대치만 끊임없이 이어갈 뿐이다.

특히 최근 국정감사를 둘러싼 여야의 행보를 보고 있으면 한숨만 나온다.

여야는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안종범 정책조정수석 등의 증인출석, 미르-K스포츠재단 의혹 관련 최순실·차은택 씨 등의 일반증인 채택을 두고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국정을 논하는 자리가 특정 연예인의 과거 발언을 두고 시시비비 논쟁으로 뜨겁다. 이런 불필요한 논쟁으로 여야가 대립각만 세우고 있는 가운데 국감은 끝을 향해 가고 있다. 

상황이 이러니 지난 15대 국회부터 국감 현장을 모니터링해온 ‘국정감사NGO모니터단’이 이번 국감에 처음으로 ‘F학점’을 매겼다는 소식은 놀랍지도 않다.

축구 감독이 자격 미달이라면 경질하고 보다 능력 있는 감독으로 교체하면 된다. 그게 아니라면 그 팀의 축구경기를 안 보면 그만이다. 그러나 정치는 다르다. 국회의원은 아무리 직무유기를 일삼더라도 국회에서 내려오려면 4년을 기다려야 한다. 더구나 우리 사회가 무너져내리는데 멀찍이서 ‘쯧쯧. 내 그럴 줄 알았지’라며 팔짱끼고 앉아있을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간곡히 부탁드린다. 제발 정신들 좀 차리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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