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노트] 옆 동네 아파트 따라 정하는 '고무줄 공시가'…지자체 검증 필요
[취재노트] 옆 동네 아파트 따라 정하는 '고무줄 공시가'…지자체 검증 필요
  • 전현건 기자
  • 승인 2021.05.02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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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웍스=전현건 기자]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초센트럴아이파크 전용면적 80.52㎡의 공시가격은 최고층 기준 14억6200만원으로 지난 3월 공개한 공시가격안(15억3800만원)보다 최소 5% 하향 조정됐다. 이 아파트는 지난해 실거래가격이 12억6000만원인데 올해 공시가는 무려 15억원대로 책정됐다. 공시가 현실화율이 122.1%에 달한다고 공시가격 역전 논란이 일었던 곳이다.

이에 대해 국토부는 이 아파트가 작년에 준공된 단지여서 실거래 자체가 없다며 주변 아파트 시세인 18~22억 수준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책정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인근에 있는 마제스타시티 아파트를 예로 들었다. 이 단지에 있는 59.97㎡ 중 10층 주택이 작년 11월 16억2500만원에, 6층 주택은 작년 6월 15억8500만원에 거래됐다고 명시됐다.

네이버 지도상으로 보면 두 단지는 600m가량 떨어져 있어 서초동 법조타운 일대의 거의 같은 생활환경을 누리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마제스타시티는 단지 규모는 116가구이며 준공은 2017년인 반면, 센트럴아이파크는 318가구 규모에 작년에 준공됐다. 더욱이 마제스타시티에는 전용면적 80㎡ 가구가 전혀 없을 뿐만 아니라 층수도 차이가 난다.

이같은 정부의 공시가격 인상 논리는 마치 '옆 동네 아파트가 몇억원대를 넘겼으니 우리 아파트도 그 정도는 된다'는 얘기와 크게 다를 바 없다. 답변이 궁하다보니 수정 요구를 받고 공시가격을 낮추었다.

공동주택 공시가격이 지난 4월 29일 결정·공시되면서 공정성 논란이 다시금 뜨거워지고 있다.

정부는 ▲공시가격 ▲주택특성자료 ▲가격참고자료 ▲산정의견 등 4개의 산정근거를 내세우면서 공정한 산출 방식으로 공시가격을 적정하게 매겼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정부 산하 공시가격 심의위원회는 "명확한 목표로 진행되는 것이 고무적"이라며 자평하기까지 했다.

정부가 공시가격과 함께 공개된 산정 기초자료는 '주택특성자료'와 '가격참고자료'로 나뉘어진다.

주택특성자료에는 교육 시설, 공공·편익 시설, 교통 시설(지하철) 등 주변 환경과 단지 특성, 세대 특성 등이 들어간다. 가격참고자료에서는 소재지, 층, 전용면적(㎡), 계약 일자, 금액 등의 거래 사례와 상한가·하한가 등 부동산 테크 시세 정보를 공개한다.

문제는 '고무적인 공시가'가 아니라 '고무줄 같은 공시가'라는 것이다. '같은 층 비슷한 면적'인데 공시가격이 다른 사례도 나와 정부가 공개한 공시가격 기초자료로는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실제 서초구 반포훼밀리아파트 6층에 있는 주택 중 84.63㎡는 9억6700만원인데 다른 동 84.12㎡ 주택은 8억8100만원으로 종합부동산세 부과 대상이 갈렸다. 그런데 주택 특성자료에서 두 주택의 방향은 똑같이 서향으로만 기재가 됐을 뿐이다.

공시가격에 차이가 난 이유는 비교 대상 전용면적을 다르게 뽑은 것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기초자료엔 정작 해당 이유가 빠져 있다. 정부가 공개한 주택특성(향·조망·역세권 등)과 가격 참고자료(주변 실거래가·시세 정보 등)는 인터넷으로 조금만 검색해도 알 수 있게 공개된 일반적 내용이다.

정작 공시가격 산정 근거의 핵심으로 꼽혀왔던 '적정 시세'와 현실화율은 전혀 공개되지 않았다. 정부가 내 집을 얼마로 판단해 공시가를 매겼는지는 알 수 없다.

물론 전국 1450만가구의 산정 근거를 세세히 공개하고 한 치의 오차 없이 공시가격을 산정하는 일은 정말 쉽지 않다. 실제로 대단지 아파트는 거래가 활발해 공시가격 산정 근거를 따질 때 그나마 기준을 세울 수 있다. 반면 거래가 뜸한 연립주택이나 소규모 단지 아파트들은 산정 근거를 따지기가 어려운 현실적 제약이 뒤따른다.

문제는 이 같은 현실적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제도 개선 목소리에 정부는 적절한 대응을 하지 않는데 있다. 현재 공동주택 공시가격 산정은 한국부동산원 직원 500여명이 전국 1450만가구를 관리하고 있다. 500여명 가운데 전문가인 감정평가사는 200여명으로 절반도 안 된다. 국토부는 이런 인력구조가 공시가격 산정 부실을 초래하는 건 아닌지 살펴봐야 할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지자체와 함께 산정업무를 분담하는 것을 제언하고 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제시된 기초자료 예시는 원론적인 수준이어서 깜깜이 공시 논란에 대한 시장의 의구심을 쉽게 해소할 수는 없을 것"이라며 "현재로선 산정 기초자료보다 표준지(근거자료로 삼는 샘플)를 늘리는 것이 더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현장실사나 개별주택을 하나하나 들여다볼 수 있도록 자원을 더 투입하는 것이 시장 상황을 반영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일부 지자체를 대상으로 시범적으로 공시가격 산정 업무를 위탁하는 것도 시도해볼 만하다"며 "아울러 단기에 공시가격을 급격하게 시세와 비슷한 수준으로 올리는 것이 과연 시장에 긍정적인지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매년 반복되는 '고무줄 공시가'에 대한 반발을 줄이기 위해 국토부와 한국부동산원이 독점하던 산정·평가에 전문가단체인 감정평가사협회를 포함시키고 이를 각 지자체가 검증하는 방식 역시 검토할 만하다.

국토부는 지금이라도 들쭉날쭉한 공시가 산정 기준을 자세히 공개하고 오류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 힘이 부친다면 '공시가 지자체 참여 요구'도 바로 수용 못할 이유가 없다.

공시가격 현실화는 부동산 시장 안정에 중요한 과제다. 무엇보다 정부가 신뢰 받을 수 있는 가격 근거를 내놓아야만 국민들은 납득할 수 있다. 그래야만 거듭된 부동산 헛발 정책으로 무너진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폭등하고 있는 집값을 진정시켜 주택시장 정상화의 첫 단추를 끼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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