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상우 기자
  • 입력 2023.05.16 06:05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 주인공 문동은이 하도영과 바둑을 두고 있는 장면. (사진=넷플릭스 캡처)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 주인공 문동은이 하도영과 바둑을 두고 있는 장면. (사진=넷플릭스 캡처)

"나는 바둑을 빨리 배웠어, 연진아. 목적이 분명했고 상대가 정성껏 지은 집을 빼앗으면 이기는 게임이라니 아름답더라. 근데 연진아. 내가 바둑을 좋아하는 진짜 이유를 말해줄까? 바둑은 침묵 속에서 욕망을 드러내고 매혹하고 매혹당하며 서로를 발가벗겨."

[뉴스웍스=김상우 기자]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의 주인공 문동은(송혜교 분)은 바둑의 매력을 '침묵 속의 욕망'이라 표현했다. 바둑을 잘 아는 이들이라면 탄성을 지를만한 함축적 표현이자, 드라마 주제를 관통하는 대사다. 

더 글로리는 학교 폭력 피해자인 문동은이 성인이 되어 가해자를 찾아 처절한 복수를 벌이는 내용이다. 바둑은 문동은의 심리를 반영하는 매개체로 등장해 폭발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지난 2014년 tvN 드라마 '미생' 이후 오랜만에 살아난 바둑 열기다.

◆바둑, 어렵지 않아…'땅따먹기'만 잘하면 돼

더 글로리에서 문동은의 바둑 실력은 상당할 것으로 추정된다. 상대방의 의중을 물어보는 응수타진부터 모양의 약점을 간파해 상대방 집을 삭감 내지 폭파하는 장면은 수읽기와 형세 판단, 맥점의 개념을 명확히 이해하고 있다.

다만 대학교 입학 때 바둑을 배웠다는 그가 소위 '탑골공원 바둑 고수'들을 쓸어버리고, 기원의 '강1급'마저 농락한다는 설정은 고개를 살짝 갸웃하게 한다. 바둑은 초급부터 중급까지 단기 성장이 가능할지 몰라도, 고급까지 가려면 꽤 많은 공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더 글로리를 보고 바둑에 급관심이 생긴 '바린이'라면 우선 온라인몰에서 2만원짜리 바둑판 세트라도 사보자. 바둑은 어렵다면 정말 어렵지만, 쉽다면 한없이 쉬운 양면성을 가진 게임이다. 바둑판에는 가로 19줄에 세로 19줄 등 총 361개의 교차점이 있다. 이 교차점 위에 흑돌과 백돌을 번갈아 두면 된다. 흑이 먼저 두고 한 수씩만 둘 수 있다.

두다 보면 자신의 집을 짓거나 상대방 집을 깨뜨려야 하는 과정이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이는 상대방 돌을 공격해 잡아버린다든지, 상대방의 공격을 무위로 돌리는 치열한 전투 과정으로 이어진다. 전투 과정이 모두 끝나고 바둑알을 놓을 자리가 한 곳도 없게 되면, 서로의 집이 얼마나 났는지 집 수를 헤아려 집 많은 이가 승리한다. 전투 중 상대방 공격에 '대마(大馬)'가 잡혀 일찌감치 승패가 결정되면, 백기 투항을 의미하는 '불계(不計)'를 선언할 수 있다.

사진출처=픽사베이
사진출처=픽사베이

◆바둑은 예도의 게임…韓中日 주도권 다툼 중  

특히 한판의 바둑을 무리 없이 두려면 자신의 실력과 상관없이 사활과 행마, 정석, 포석 등의 기본 개념을 반드시 익혀야 한다. 당구를 처음 접한 초보자가 상단치기, 하단치기, 밀어치기, 끊어치기 등의 개념도 정립하지 않고 당구봉을 들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또한 수천 년의 역사를 지닌 바둑은 예절이 매우 중시되는 예도(禮道)의 게임이다. 대국 시작 전과 끝날 때 깍듯이 인사를 나누고 단정한 자세를 갖추도록 노력해야 한다. 혼자 하는 게임이라면 벌떡 일어나 고함을 질러도 아무 상관이 없겠지만, 바둑은 상대가 있는 게임이기에 기본적인 예절이 반드시 필요하다. 예컨대 승부가 결정된 상태지만 기권을 하지 않고 계속 두는 행위는 예절에서 심각히 벗어난 행동이다. 상대방에 대한 기본적인 존중은 바둑 입문의 중요 요소임을 명심해야 한다. 

바둑의 실력을 지칭하는 기력은 급(18~1급)과 유단자(초단~7단)로 구분된다. 아마추어 단과 프로의 단은 별개며, 프로가 되려면 한국기원의 입단대회를 정식으로 통과해야 한다. 프로기사는 과거 1년에 4명만 뽑힐 정도로 '바늘구멍'이었지만, 최근에는 연평균 17명까지 입단자를 배출하고 있다. 국내 바둑 인구가 크게 줄어들면서 바둑 활성화 차원에 입단 문호를 크게 넓힌 것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일본과 중국은 각각 8명, 36명의 프로 입단자를 배출했다. 

반외적 요소지만 현대바둑의 흐름을 알고 있는 것도 바둑의 묘미를 더욱 즐길 수 있는 요인이다. 바둑은 고대 중국에서 발명됐다는 설이 유력하다. 고대 중국의 요(堯)·순(舜) 임금이 어리석은 아들을 깨우치기 위해 만들었다는 설이다. 이후 바둑은 중국에서 우리나라, 일본으로 전파됐고, 15세기 일본의 센고쿠시대에 이르면서 현대바둑의 틀을 갖추게 된다.

당시 일본은 바둑을 국기로 두면서 바둑 가문을 양성해 현대바둑을 발전시켰다. 1980년대까지 일본은 바둑의 '메이저리그'로 통할 정도로 압도적 수준을 보여줬다. 그러나 1989년 응씨배 세계바둑대회에서 조훈현 9단이 초대 우승을 차지한 것과 그의 제자 이창호 9단이 등장하면서 현대바둑의 주도권은 순식간에 우리나라로 넘어왔다. 이후 2010년대부터 우리나라와 중국이 팽팽한 힘겨루기를 하며 자웅을 겨루고 있다. 

문동은이 주여정에게 바둑을 배우고 있는 장면. (사진=넷플릭스 캡처)
문동은이 주여정에게 바둑을 배우고 있는 장면. (사진=넷플릭스 캡처)

◆개인레슨부터 전문사이트까지…유튜브 프로 해설도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본격적으로 바둑알을 집어봐야 바둑의 재미를 알 수 있다. 가족 중 누군가 바둑을 둔다거나 주변에 바둑을 두는 친구가 있다면 금상첨화겠지만, 주변에 바둑을 두는 이가 전혀 없더라도 실망하지 말자. 

요즘의 '언택트' 시대에는 스마트폰 하나만으로 훌륭한 바둑 선생님을 쉽게 구할 수 있다. 1대 1 개인레슨을 원한다면 '숨고'와 같은 플랫폼에 들어가 나에게 맞는 선생님을 찾아볼 수 있다. 숨고에서 '바둑 레슨' 등의 키워드를 치면 수백 명에 달하는 선생님이 기다리고 있다.

비용은 강사 경력이나 대회 입상 횟수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보통 5만원 안팎의 레슨비를 지불하면 좋은 선생님을 구할 수 있다. 중급자 이상이라면 대회 입상 경력이 있는 아마추어 고수들에게 레슨을 받는 것이 효과적이지만, 초보자들은 경력에 크게 구애받지 않아도 된다.

개인레슨 비용이 부담스럽다면 국내 양대 바둑 사이트인 '사이버오로'와 '타이젬'에 들어가 직접 온라인 바둑을 둬보자. 바린이들을 얼마든지 만나볼 수 있고, 국내를 넘어 중국과 일본 유저와도 바둑을 둘 수 있다. 바둑을 취미로 하는 이들과 만나보고 싶다면 마음에 드는 동호회에 가입해볼 수 있다. 바둑 강의를 듣거나 프로기보도 감상하는 등 바둑과 관련된 콘텐츠를 24시간 접할 수 있다.

사이버오로 대국실에서는 프로바둑을 생중계로 감상할 수 있다. (사진=사이버오로 대국실 캡처)
사이버오로 대국실에서는 프로바둑을 생중계로 감상할 수 있다. (사진=사이버오로 대국실 캡처)

바둑 입문자 전용 책들도 쉽게 구할 수 있다. 한국기원에서는 바둑 활성화 차원에서 만화로 그린 교습서 등 입문 시리즈를 발간하고 있다. 요즘에는 전자책 출간도 활발해 일반 오프라인 도서보다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

유튜브에서는 프로바둑기사들의 전문적인 해설이 즐비하다. 유튜브 '프로연우'를 운영 중인 프로바둑기사 조연우 2단은 더 글로리의 바둑 내용을 해설하면서 큰 호응을 얻었다. 과거 아마추어 강자로 명성을 떨친 한문덕 아마7단은 바둑 유튜버로 전업하면서 '강남바둑TV'를 운영, 흥미진진한 바둑계 히스토리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초보에서 벗어나 이제 중급을 향해 간다면 바둑TV를 통해 한국바둑리그 등의 프로바둑기전을 즐겨보는 것도 추천한다. 해설을 통해 프로바둑이 이해될 정도의 수준이라면, 이제는 어디 가서 바둑 좀 둔다고 어깨를 으쓱해도 괜찮을 것이다.

지난 2016년 세기의 대국이었던 인공지능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국과 같이 인공지능과 직접 자웅을 겨뤄보는 것도 바둑 실력이 느는 비법이다. 일부 인공지능은 일반인이 접하기 어렵지만, 오픈소스 인공지능인 '카타고'는 웹상에서 누구든지 즐길 수 있다. 최정상권 프로기사도 2점을 접는 막강한 실력을 갖춘 카타고와의 대국은 핸디캡을 9점까지 두고 접바둑을 둘 수 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뉴스웍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